중·고등 입시

교육학자가 말하는 ‘대입제도 공정할 수 없는 이유’

최예지 조선에듀 기자

2018.12.24 11:00

해당기사 크게보기 해당기사 작게보기 이메일발송 해당기사 프린트
페이스북 트위터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前 총장) 인터뷰

기사 이미지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최근 펴낸 '실력의 배신(쌤앤파커스)'에서 교육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실력주의를 짚었다. / 양수열 기자

“대입제도는 결코 공정해질 수 없습니다.”

최근 시험지 유출이나 학생부 조작 사건을 향한 대중의 분노가 말해주듯, 그 어느 때보다 대입제도 공정성에 관심이 높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교육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데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을 정도. 대입제도의 공정성에 대한 요구가 큰 지금, ‘대입제도는 결코 공정할 수 없다’고 단언한 인물이 있다. 미래 교원을 육성하는 교육학자인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가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박 교수는 “대입제도를 공정하게 만들자는 주장은 ‘모두가 각자의 실력대로 대학에 입학하자’는 실력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며 “그런데 우리 사회가 믿는 실력주의는 환상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그는 직접 만든 ‘성공공식’과 ‘실력공식’을 들었다. 성공공식에 따르면, 성공은 실력뿐만 아니라 비실력적 요인(개인의 특성, 가정환경, 운 등)을 종합해 만들어진다. 성공에는 실력 아닌 요인이 다분히 작용한다는 얘기다. 실력도 마찬가지다. 실력에는 노력뿐 아니라 교육, 가정배경, 운, 타고난 능력이 개입한다. 그는 “공정성은 인간이 추구하려고 노력하는 것일뿐, 결코 완벽한 공정성은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실력주의 사회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공정성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 “실력주의를 지탱하는 건 ‘기회의 균등’과 ‘과정의 공정성’입니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가 점점 취약해지기 마련이죠. 실력주의 초반의 세대는 자신의 실력에 걸맞은 결과를 받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들이 자녀에게 자신이 획득한 부와 사회적 지위를 어떻게든 물려주려고 하기에, 실력주의 사회가 심화할수록 기회가 평등하거나 과정이 공정하지 않아요. 실력주의 사회에서는 갈수록 그 기반이 흔들리는 ‘실력주의 패러독스’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어요.”

대입제도 역시 공정성을 찾고자 애써도, 이뤄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수저 대입전형이라는 말이 회자하는데, 어떤 전형이라도 금수저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모두에게 동등한 대입전형을 만들어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부와 사회적 지위를 지닌 사람이 적응하는 식”이라며 “불공정한 대입제도는 실력주의를 해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실력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비롯된 부산물이자 그림자”라고 강조했다.


기사 이미지
/ 양수열 기자
그렇다면 불공정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이에 그는 “그림자를 옅게 할 수는 있다”며 “실력주의는 유지하되,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력주의가 부작용이 많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원동력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사회 구성원들은 일합니다. 다만 보상은 노력이나 실력 외에 운이나 여러 요소가 개입하므로, 개인의 보상을 사회가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러한 근로의욕 고취형 복지사회를 ‘신(新)실력주의 사회’라고 부릅니다.”

개인의 몫을 사회와 나누는 일, 쉽지 않게 들렸다. 그 또한 “상위 계층을 설득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일례로 시사토론 프로그램에서 ‘교육의 문제를 해결할 신실력주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당신이 번 소득의 7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고 하니 그곳에 자리한 의사와 변호사를 비롯한 전문가 패널은 ‘(문제가 많아도) 지금처럼 살겠다’고 했죠. 대신 미래의 상위 계층에게 신실력주의 사회에 대한 공감대를 넓힐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 앞으로 부와 명예가 주어진다면, 실력만이 아니라 운을 비롯한 여러 조건이 따른 것임을 이해하도록 교육하는 것입니다.”

이에 더해 폭주하는 실력주의를 멈춰 세울 방안으로 ‘학벌 제한 제도’와 ‘범위형 대입 제도’를 꼽았다. 학벌 제한 제도는 공무원 등 사회 수요가 높은 직업에 대해 학교별 상한을 거는 방식이다. 가령 5급 공무원 중 5%만 한 대학의 졸업생일 수 있다고 제한한다. 범위형 대입 제도는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가 고안한 것으로, 성적으로 수학능력기준을 제시하고 면접에서 성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자질을 확인하는 것까지는 기존의 대입제도와 비슷하지만 마지막에 학생을 추첨으로 선발한다. “두 제도 모두 실력주의를 옅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학생은 무의미한 반복 학습 대신에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탐구할 여유가 생기고, 부모도 아이를 치열한 입시경쟁으로 밀어 넣지 않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정책적 논의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박 교수는 “보통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하지만 지금은 아주 빠르게 바뀌는 수준이니, 10년 만이라도 전에 계획해 유지하면 좋겠다”며 “단기적인 정책을 세우면 학부모는 자녀의 이해관계 때문에 이기적으로 반응하기 쉽지만, 10년 멀리 내다보면 공익을 중심으로 정책을 지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메일발송 해당기사 프린트 페이스북 트위터

목록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