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모델 혁신학교 10년, 매년 확대 괜찮나
손현경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8.12.07 11:18

- 경기서 시작해 전국 확산…내년 1765개, 10년 사이 136배 늘어나
- 계속되는 교육효과 물음표… 일부 교사는 조희연 교육감 상대로 소송까지

  • 내년 3월 개교를 앞둔 서울 해누리초·중의 예비학부모들이 지난 30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부모 동의 없이 혁신학교 지정을 추진하는 서울시교육청을 규탄하고 있다. 이한솔 기자
    ▲ 내년 3월 개교를 앞둔 서울 해누리초·중의 예비학부모들이 지난 30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부모 동의 없이 혁신학교 지정을 추진하는 서울시교육청을 규탄하고 있다. 이한솔 기자
    내년 3월 혁신학교가 전국 1765개로 대폭 늘어난다. 2009년 13개교로 출발한 혁신학교가 10년 사이 약 136배로 확산된 셈이다. 지난 4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현 정부 국정과제인 혁신학교 확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혁신학교를 보는 시선은 극과 극이다. 혁신학교가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토론 등 참여 수업을 통해 창의성을 길러준다는 면에서 이를 늘려야 한다는 쪽과, 대학 입시가 절대 목표인 국내 현실이 바뀌지 않고서야 달라질 것이 없다는 회의론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내 아이를 혁신학교에 보내도 될까’ 등 학부모들의 지속적인 고민은 혁신학교 교육 효과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교육 당국이 혁신학교 확대에 가속도를 내는 가운데 학부모와 학생, 교사에게 혁신학교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낙태법 폐지’ 등 다양한 주제 논하는 혁신학교 수업 현장

    지난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청교육연수원. 서울지역 혁신고 14개교에서 750여명의 교사와 학생이 각 학교의 수업 및 과목 노하우 등을 16개 분과로 나눠 공유하는 ‘혁신학교 한마당’을 진행했다. 1분과인 ‘수업 및 평가혁신(국어과)’ 교실에서 김효선 서울 인헌고 교사는 이번 학기 진행했던 ‘모둠별 자유 주제 발표하기’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소년법 페미니즘 낙태법 폐지 베이비 박스 등 최근 논란이 된 다양한 주제가 등장했다. 김 교사는 “’국어 교과를 어떻게 흥미있게 가르쳐야 하는가’를 고민하다 학생들이 자신 있는 주제로 모둠을 구성하고 나서 자유 토의ㆍ토론하는 방식을 생각했다”고 해당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이날 학생들은 혁신학교 수업시간에 느꼈던 점을 자율적으로 발표했다. 김기만(서울 휘봉고 2)군은 “기존 수업과 다른 형태의 양한 교육을 한다”며 “예컨대, ‘4교시가 끝나고 출석하면 지각 또는 결석으로 해야할지’, ‘치마 길이, 바지 통은 어느 정도 맞춰야 하는지’ 등 세세한 결정도 투표나 설문조사로 정한다“고 설명했다. 박예림(서울 금호고 2)양은 “혁신학교는 지필고사보다는 참여 수업과 다양한 토론 등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학생을 점수로 줄 세워 평가하지 않는다”며 “무엇보다 선생님은 교단에서 일방적으로 얘기하고, 학생은 공책에 옮기기만 하는 따분한 교실과는 다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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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혁신학교 교사 700여명이 서울시교육청교육연수원에 모여 수업 노하우 등을 공유하며 혁신학교를 확산하는데 팔을 걷었다. 김종연 기자
    ▲ 최근 혁신학교 교사 700여명이 서울시교육청교육연수원에 모여 수업 노하우 등을 공유하며 혁신학교를 확산하는데 팔을 걷었다. 김종연 기자
    혁신학교는 김상곤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경기교육감 시절 도입한 공교육 혁신 모델이다. 지역별로 혁신학교(서울ㆍ경기), 행복배움학교(인천), 행복공감학교(충남), 무지개학교(전남), 다행복학교(부산) 등 다양한 이름으로 현재 전국 1525개의 혁신 초ㆍ중ㆍ고교가 운영 중이다. 정부가 짠 교육과정을 그대로 전달하지 않고 학생 수준이나 지역 상황에 맞춰 수업 내용 등을 재구성해 가르친다는 점에서 일반학교와 다르다. 또, 교사에게 교육과정 자율권을 주고, 학생들에게 다양한 활동 및 토론 중심 수업을 제공한다.

    ◇신설학교는 교육감이 임의지정해 갈등 빚기도

    혁신학교는 매년 17개 시ㆍ도교육청이 선정ㆍ지정한다. 시ㆍ도교육청은 주로 일반학교서 희망을 받아 심사 후 선정을 한다. 심사항목은 대개 지역적 특성 기초생활수급자 수  다문화학생 비율 학급당학생 수 등으로 나뉜다. 구성원의 혁신학교 이행 동의율도 따진다. 일반학교 전체 교원 중 50% 이상 또는 전체 학부모 가운데 절반 이상이 동의해야 학교운영위원회에 상정 가능하다. 이 가운데 신설학교 등은 교육감이 임의로 지정하기도 한다. 실제로 서울시교육청은 내년 3월 서울 송파구에 개교하는 헬리오시티 단지 내 신설학교(해누리초ㆍ중)에 대해 혁신학교 지정을 임의로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임의지정 방식은 학부모와의 갈등을 빚기도 한다. 지난달 30일 단지 내 입주자협의회 300여명의 주민은 교육청 앞에서 “신설학교라는 이유로 자녀가 입학할 예정인 예비 학부모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교육청이 임의대로 혁신학교를 지정했다”며 교육청의 혁신학교 임의 지정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혁신학교 지정 반대 기자회견.  예비학부모들은
    ▲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혁신학교 지정 반대 기자회견. 예비학부모들은 "혁신학교가 기초학력을 저하시킨다"고 주장했다. 이한솔 기자
    이들이 혁신학교를 반대하는 이유는 또 있다. 혁신학교가 ‘학력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미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2016년 혁신학교 고교생의 ‘기초 학력 미달’ 비율(11.9%)이 전국 고등학교 평균(4.5%)보다 세 배 가까이 높다는 자료도 발표된 바 있다. 이한영(45ㆍ가명) 헬리오시티 입주자협의회 교육분과장은 “혁신학교가 토론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해 학생부종합전형 등 수시모집에 유리하다지만, 아직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가 대학 진학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아이가 혁신학교에 진학해 혹여나 기초 학력 등이 떨어질까 우려된다”고 했다.

    ◇교사 간 교육 철학 갈등도…과거 조희연 교육감 상대로 소송

    혁신학교가 모든 교사로부터 적극적 지지를 얻는 것 또한 아니다.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혁신학교로 전보된 교사가 종종 혁신학교 철학에 반대하는 일이 생겨 이들 간 마찰이 생기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2013년 서울의 한 혁신고로 전보된 교사가 지난 2월까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상대로 관련 소송을 진행한 바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교육 당국이 양적 목표에 치중해 혁신학교 확대와 지원을 섣부르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박소영 교육바로세우기운동본부 대표는 “전면 확대보다는 혁신학교의 성과와 한계를 정확히 분석하는 등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혁신학교 수를 늘리기보다는 혁신학교 내실화를 강하게 다지는 것부터 우선해야 한다”며 “양적 확대를 지원하기 보다는 질적으로 우수한 혁신학교가 되도록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육부는 내년에 혁신학교를 지원하기 위한 특별교부금 예산으로 전국 시도교육청에 85억원을 지원한다. 전년(72억) 대비 18% 늘어난 금액이다. 교육부 학교혁신정책과 관계자는 “학부모와 현장 의견수렴을 반영한 혁신학교 지원 방향을 각 시ㆍ도교육청과 협의해 수립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