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상대평가 보완하려 절대평가 부분 도입 움직임…“평가방식 자율화”
오푸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8.11.28 10:59

-학부 성적 교수 자율평가제ㆍ인성기반 절대평가제 등 활발
-전문가 “학생 평가 측면에서 자율성 보장돼야”

  • # 최근 들어 김민진(21·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3)씨는 학업 스트레스가 부쩍 줄었다. 수강 과목 중 절대평가 과목 비율이 늘어 학점 경쟁 부담이 줄었기 때문이다. 김씨가 이번 학기에 수강하는 7개 과목 중 절대평가 과목은 전공 2개, 교양 1개를 비롯해 3개 과목이다. 김씨는 “자율평가제 시행 이전에는 미세한 점수 차이로 서로 다른 등급을 받아 동기나 선후배와 비교하며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교수님이 담당 과목에 대한 성취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충족했는지를 중점적으로 평가하면서 학습 동기 부여가 이전보다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최근 몇몇 대학에서 치열한 학점 경쟁과 같은 상대평가의 부작용을 보완하고자 절대평가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교과목 특성을 반영해 학과 및 단과대학 차원에서 평가방식을 채택할 수 있도록 기존의 상대평가 원칙을 폐기하거나 평가방식을 자율화하는 식이다. 학생들 역시 일부 과목에 대한 절대평가 도입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어 향후 평가제도가 다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 한해 ‘학부 성적 교수 자율평가제’를 시범 운영하고 있는 이화여자대학교의 경우, 담당 교수가 과목별 평가방식을 정한다. 담당 교수 재량에 따라 절대평가, 상대평가 또는 두 평가방식의 절충안 중 하나를 선택하는 식이다. 학내 반응은 뜨겁다. 지난 9월 자율평가제 학내 반응을 취재한 ‘이대학보’에 따르면, 많은 학생들이 자율평가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도한 학점 경쟁에 대한 부담을 덜어 학습 동기 부여가 수월하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학점 부여 기준이 불명확하거나 취업 시장에서 학점 받기 쉬운 학교로 오인받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화여대 측은 “1년간의 시범 운영 기간 이후 제도상 문제점이나 개선방안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연세대학교는 내년부터 상대평가 원칙을 폐기하는 대신 각 학과에서 학사제도위원회를 구성해 자율적으로 성적 평가 방식 내규를 정하기로 했다. 연세대 교육혁신실행위원회 위원인 홍원표 교육학과 교수는 “새로운 원칙은 학과나 단과대학에서 교과목의 특성을 고려해 평가방식을 정하겠다는 것”이라며 “학과나 단과대학 차원에서 이를 논의하는 것은 과목마다 평가방식이 매년 제각기 달라져 학생들이 혼란을 겪는 것을 방지하려는 조치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의과대학 차원에서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평가방식을 전환하는 사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학생들이 우수한 역량을 갖추고 있음에도 극심한 학점 경쟁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등 여러 문제점을 극복하려는 취지에서다. 지난 2014년 연세대 의대에 이어 2016년 인제대학교 의대 역시 절대평가를 도입한 바 있다. 이에 더해 ‘인성’을 주요 평가요소로 반영하는 의대도 생길 전망이다. 이달 초 성균관대학교 의대는 2020년부터 ‘인성기반 절대평가제’를 도입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인성기반 절대평가제는 성균관대 의대 내 5년 이상 누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팀 프로젝트 동료평가는 물론 출석과 학교생활 등을 평가하는 제도다. 이 같은 평가제도를 도입한 이유로 최연호 성균관대 의대학장은 “의사의 기본은 휴머니즘이지만, 그동안 의대 교육에서 교수들은 학생의 인성 평가에 눈을 감아왔다”며 “인성교육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인성기반 절대평가제를 도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생들 역시 일부 과목에 대한 절대평가 도입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상대평가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일부 대학에 대해서는 학생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례로, 서울대학교는 ‘서울대 학업성적 처리 규정 일부개정규정안(개정안)’을 두고 지난 9월부터 고민에 빠져 있다. 개정안에는 상대평가에 적용되는 성적 등급과 비율 산정 기준을 명시하고, 절대평가가 가능한 과목의 조건을 신설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서울대 총학생회 측은  “개정안에서 A, B, C 등급 비율을 각각 의무화하고, 절대평가가 가능한 수업을 매우 협소하게 규정하고 있다”며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대다수 수업에서 상대평가가 강제되고 수업 자율성이 침해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총학생회는 개정안 철회를 요구하며 1600여명의 도움을 받아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대 홍보팀은 “아직 학내 논의 및 심의가 진행 중”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전했다.

    최근 대학가에서 상대평가 중심 평가제도를 보완한 여러 제도가 시도되는 것에 대해 박찬호 계명대 교육학과 교수는 “담당 교수가 전문가로서 학습 목표에 따른 준거를 제시하고 학생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했는지 판단하는 ‘준거참조평가’로 나아가는 것으로 보인다”며 “궁극적으로는 학생 평가에서 과목 담당 교수의 자율성을 보장해 문제점을 스스로 개선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