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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학년도 수능 분석 기사를 작성하다가, 국어영역이 얼마나 어렵게 출제됐는지 확인하려 ‘우주론’ 지문을 읽었다. 올해 수능 최고의 킬러문항이라는 ‘31번’을 보고는 선뜻 문제를 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만약 올해 수능을 치렀다면, 졸업한 대학에 정시로 입학하지 못했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학창시절에 국어 실력이 약했기 때문에, 국어영역이 어렵게 출제되면 정시전형의 표준점수 경쟁에서 불리해서다.
표준점수는 시험이 어려울수록 높아지고, 쉬울수록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정시로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게도 잘하는 과목은 어렵고 못하는 과목은 쉽게 출제돼서다. 그해 수능에서 국어영역(구 언어영역)이 ‘물언어’라 불릴 만큼 쉬워서, 표준점수 최고점이 127점에 그쳤다. 반면 수학영역과 당시 상대평가이던 영어영역이 어렵게 출제돼, 만점자 기준으로 표준점수가 각각 142점과 141점으로 높게 형성됐다. 정시에서 영어와 수학 점수로 국어에서의 실수를 충분히 만회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올해 정시를 노리는 수험생 중 승자는 단연 ‘국어영역 고득점자’다. ‘국어로또’ 수능이라고 불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어영역은 1등급 커트라인 점수가 80점대로 예상될 만큼 몹시 어려웠으니, 정시에 반영되는 표준점수가 높게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입시전문가들 역시 이를 지적하고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이사는 “다른 과목을 다 잘봤어도 국어를 못 봤으면 정시에서 치명적으로 불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남윤곤 메가스터디 입시전략연구소장은 “한마디로 국어를 잘 본 아이들이 정시에서 갑”이라고 했다.
이렇게 정시에서는 승자가 ‘영역별 난이도’에 따라 갈리는 경우가 잦다.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해에는 특히 그렇다. ‘물수능’으로 여겨진 2015학년도 수능이 대표적이다. 자연계 학생의 경우 국어 A형, 수학 B형, 영어영역이 모두 쉬워 표준점수가 낮은 수준에서 형성되는 바람에, 과학탐구영역의 변별력이 상대적으로 올랐다. 인문계 학생의 경우 국어 B형만 어렵게 출제돼, 국어영역이 정시에 미치는 영향력이 컸다. 이처럼 매번 영역별 난이도가 다르면, 상당수의 학생이 영역별 난이도 지형에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영역별 난이도를 조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능을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의 능력에 의문이 생긴다. 비단 올해만 놓고 보더라도 수능 국어영역뿐 아니라 영어영역도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가원은 매년 이런 문제제기에 “예년과 같이 고교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학생이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으로 출제하고자 노력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리고 올해 국어영역에 대한 비판이 이어진 이후에도 수능 검토위원장은 “이 정도까지 어려워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수능의 영역별 난이도가 해마다 같을 수는 없더라도 정시가 공정하려면 비교적 일정해야 한다. 적어도 수능이 어느 해에는 ‘수학로또’, ‘영어로또’, ‘탐구로또’가 되고, 정시 입학 여부가 과목을 타서는 곤란하다. 수험생의 정시 합격이 이들이 노력한다고 결정할 수 없는 영역별 난도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면, ‘공정한 수능’이 아니라 ‘복불복 수능’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며칠 전 반부패 정책협의회에서 “수능이 가장 공정하다는 국민들의 여론이 압도적인 상황”이라고 했지만, 이처럼 ‘불수능’, ‘물수능’으로 대표되는 난도 논란이 반복된다면 국민들 사이에서 정시가 공정하다는 믿음이 사라질 지 모른다.
[조선에듀 오피니언] 올해도 이어진 ‘00(과목)로또’…수능이 공정한 시험이 되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