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NOW] ‘대충 살자’는 20대, “우리가 왜 치열하게 살아야 하죠?”

하지수 조선에듀 기자

2018.11.21 10:46

해당기사 크게보기 해당기사 작게보기 이메일발송 해당기사 프린트
페이스북 트위터

-‘대충 살자’ 시리즈 SNS에서 활발하게 공유돼
-불확실한 미래 위해 현재를 희생할 필요성 못 느껴
-자기 기준에서 가치 없는 일에 열정을 쏟지 않겠다는 의미도 담겨

기사 이미지
온라인에서 인기인 ‘대충 살자’ 시리즈./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 취업준비생 김윤진(가명·23)씨는 요즘 온라인 메신저에서 ‘대충 살자’ 시리즈를 즐겨 쓴다. ‘대충 살자’ 시리즈에는 ‘대충 살자, ○○하는 ○○처럼’이라는 문구와 함께 관련 사진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엎드린 채 눈 덮인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북극곰 사진에 ‘대충 살자, 걷기 귀찮아서 미끄러져 내려가는 북극곰처럼’이라는 글을 덧붙이는 식이다. ‘대충 살자, 숨기도 귀찮아서 코앞에서 음성 변조하는 코난처럼’ ‘대충 살자, 평양에서 조는 최현우처럼’도 시리즈 일부다.

김씨는 밤낮 가리지 않고 기계적으로 일하거나 취업 문턱을 넘으려 고군분투하는 친구들과 주로 이 사진을 주고받는다. 그는 “처음 봤을 땐 재밌었지만, 마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었다”며 “그간 무엇을 위해 치열하게 살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대 사이에 ‘대충 살자’는 가치관이 퍼지고 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활발하게 공유되는 ‘대충 살자’ 시리즈가 이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페이스북에 관련 게시물이 올라오면 많게는 4000여개씩 댓글이 달린다. 지인을 태그해 ‘우리도 이렇게 살자’고 권하는 글이 대다수다. ‘대충 살자, 아르바이트해도 늘 돈 없는 나처럼’같이 본인이나 지인의 이름을 넣어 새로운 문구를 만들기도 한다.

서점에서도 지나치게 치열한 삶을 거부하는 내용을 담은 책들이 독자들의 발걸음을 잡아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웅진지식하우스)와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부크럼) 등이다. 이중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는 에세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지난 4월 출간돼 11월 19일까지 10만 부 이상 판매될 만큼 인기다. 저자 하완은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열정도 닳는다. 함부로 쓰다 보면 정말 써야 할 때 쓰지 못하게 된다. 언젠가는 열정을 쏟을 일이 찾아올 테고 그때를 위해서 열정을 아껴야 한다. 그러니까 억지로 열정을 가지려 애쓰지 말자.’

‘대충 살자’는 정서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소확행’과 궤를 같이한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 20대는 50대 이상의 기성세대와 달리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지금 이 순간을 희생하고 견디기보다는 지금 당장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행복에 투자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세대 간 사고방식이 다른 이유는 사회, 경제적 변화 때문이다. 기성세대는 경제 성장기에 청춘을 보냈다. 노력하면 소위 ‘성공’의 척도가 되는 취업, 승진, 주택 장만 등을 이룰 수 있었던 시기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참는 일이 가치 있다고 여겨졌다.

오늘날의 20대는 다르다. ‘N포세대(사회·경제적 어려움으로 연애와 결혼, 주택 마련, 인간관계, 출산 등 여러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세대)’라고 불릴 만큼 힘든 생활을 이어나간다. 열심히 노력해도 보상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없으니,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또 윤 교수는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무기력하고 소심하게 보일지 모르나 젊은이들이 처한 상황에서는 당연한 선택일 수 있다”며 “어느 한 세대의 사고방식을 두고 다른 세대가 옮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왜 이렇게 생각하게 됐는지 이해하려는 태도를 갖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충 살자’는 건 모든 일을 대충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에 나왔듯 남들이 한다고 무작정 따라 하거나 자기 기준에서 가치 없는 일을 열심히 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이메일발송 해당기사 프린트 페이스북 트위터

목록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