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초등

[현장 취재] 전통 나무 돛단배 봉황호 항해 체험

목포=장지훈 기자

2018.11.0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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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17m 거대한 돛 펼쳐지자 "우와"
바람 따라 흐르는 돛단배 옛 사공의 숨결을 느끼죠

"우와 진짜 크다. 이게 진짜 움직여요?"

지난달 31일 전남 목포 바닷가에 자리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를 찾은 초등생들이 입을 벌렸다. 학생들 앞에는 길이 20m, 너비 6m의 '봉황호'가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날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는 올해 마지막 봉황호 항해 체험 행사가 열렸다. 봉황호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사라진 전통 나무 돛단배를 옛 방식 그대로 복원한 배로 2010년 건조(배나 건물을 만듦)됐다. 바람의 힘만으로 물살을 가르는 전통 돛단배를 탈 수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옹기 배 재현한 봉황… "사람 대신 그릇 실어날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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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호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즐거워하는 강원춘(맨 왼쪽)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연구사와 학생들의 모습. / 목포=김종연 기자
"하나둘 하나둘, 선생님 줄이 너무 무거워요."

항해는 돛단배의 엔진이라고 할 수 있는 돛을 올리는 것으로 시작됐다. 모두 합쳐 항해 경력만 100년에 달하는 권석주(70)·정금석(68) 사공의 도움을 받아 낑낑대며 밧줄을 당긴 학생들은 누렇고 질긴 돛천이 하늘에 펼쳐지자 환호성을 질렀다.

봉황호에는 뱃머리부터 순서대로 야후돛대·이물돛대·허리돛대의 모두 세 개의 돛이 있다. 가장 큰 허리돛대는 높이가 17m나 된다. 이리저리 돛을 살피던 권 사공은 "돛을 모두 펼친 상태에서 순풍을 만나면 시속이 20㎞까지 나오는데 오늘도 바람이 참 좋아 기대된다"며 "훠이!"하고 출발을 알렸다.

"여러분, 이 배의 원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요?" 봉황호의 돛이 팽팽하게 당겨졌을 무렵 강원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연구사가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사람들을 태웠어요" "고기를 잡았어요" 등 대답이 나오자 강 연구사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람 대신 그릇을 옮겼답니다."

봉황호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전남 강진 지역에서 흔히 쓰였던 '옹기배'를 본떠 만들었다. 예부터 강진은 솜씨 좋은 옹기(찰흙으로 빚고 불에 구워 만든 그릇) 장인이 많기로 유명했다. 옹기를 배에 싣고 다른 지역으로 장사를 다녔던 사공도 많았는데, 1970년대 플라스틱 그릇이 보급되면서 차츰 자취를 감췄다. 인간문화재인 정윤석(76) 옹기장이 만든 500여 개의 옹기가 실린 봉황호는 이제는 볼 수 없게 된 옹기배의 명맥을 잇고 있다.

바람길 외웠던 옛 사공 지혜 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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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호의 돛천은 강한 바람에도 잘 견디는 황포로 만 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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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주 사공의 지도를 받고‘치 잡기' 체험을 하는 학생들. 길쭉한 나무 막대를 좌우로 움직이면 이에 따라 배의 진로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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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으로 움직이는 전통 돛단배‘봉황호궩. 봉황호라는 이름은 옹기 산지로 유명했던 전남 강진의 ‘봉황 마을'에서 따온 것이다. /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학생들은 봉황호에서 '돛 올리기'와 '치(키) 잡기'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원래는 '노 젓기'도 할 수 있지만, 이날은 배를 미는 힘센 바람 덕분에 생략됐다. 치는 배의 방향을 결정하는 방향타로 자동차의 핸들에 해당한다. 배꼬리에 있는 길쭉한 나무 막대(창나무)를 좌우로 조종하면 물속에 잠긴 넓적한 '치분'이 따라 움직이면서 배의 진로가 바뀐다.

치 잡기 체험을 한 최태웅(목포 애향초 1) 군은 "이렇게 커다란 배를 내가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다. 이지원(목포 산정초 2) 양은 "노 젓기를 못 해서 속상하다. 내년에 다시 와서 하고 싶다"고 했다.

항해에 나선지 한 시간쯤 지났을 무렵 강 연구사는 배 옆머리에 붙어 탁 트인 풍경을 즐기던 학생들에게 옛 사공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40년 전 사공들은 배에 옹기를 가득 싣고 멀리 제주도까지 갔어요. 만약 바람이 불지 않는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노를 저어서 가요!" 손관우(광주 각화초 3) 군이 손을 들고 말하자 강 연구사가 손뼉을 쳤다. "작은 배라면 노를 저어서 갈 수 있겠죠. 하지만 이렇게 큰 배는 노만으로는 움직일 수 없어요. 그래서 사공들은 언제 어느 곳에서 바람이 많이 부는지를 외우고 다녔다고 해요. 표지판도 없는 바다에서 '바람길'을 찾아다녔다는 게 신기하죠?"

돛단배 항해도 즐기고 사라진 옛 전통문화도 배울 수 있는 봉황호 항해 체험은 매년 5~10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 진행된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누리집(seamuse.go.kr)에서 누구나 신청할 수 있지만, 회당 선착순 12명만 배에 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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