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듀 오피니언]정부 의존성 보이는 ‘청원 제도’… 문제해결력 키우는 방향 모색해야
최예지 조선에듀 기자 edu.chosun.com
기사입력 2018.10.26 10:00
  • # A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입니다. 급식시간 시작 후 음식량이 유난히 줄어들더니, 제가 배식받을 때에는 밥과 국이 없다고 해 반찬만 잔뜩 받았습니다. 이런 문제 좀 해결해주세요.

    # B 초등학교에 아이들을 데리고 운동장을 이용하러 갔습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축구시합을 하니 어린 아이들은 운동장을 사용하지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C 고등학교가 운동장을 개방하지 않아 B 초등학교에서 축구시합을 한다고 하더군요. C 고등학교가 즉시 운동장을 개방하도록 조치해 주세요.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8월, 청와대 국민청원을 모델로 한 ‘시민ㆍ학생 청원사이트’를 열었다. 청원 등록일로부터 시민 1만명 또는 학생 1000명 이상의 동의를 받으면 교육감이 직접 답변하는 제도로, 교육감과 시민ㆍ학생이 쉽게 소통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현재까지 올라온 청원은 총 190여건. 이중 교육감이 답변한 청원은 대성고 자사고 폐지와 관련한 학생 청원 한 건이다.

    그 외에는 위 사례처럼 학교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문제를 제기하는 민원성 청원이 대부분이다. 학교 급식에서 벌레가 나온다거나, 원치 않은 수행평가 비용을 내야 하는 상황 등 ‘학교에서 이러한 문제가 일어났으니 교육청이 해결해달라’는 취지다. 물론 정부 기관이 나선다면 해결이 쉬울 것이다. 하지만 좀 더 고민해보면 학교 내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고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위 기간에 문제해결을 의존하는 양상만 빈번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전반적인 제도나 구조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 특정 학교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라면 학교에서 충분히 고민할 수 있다. 문제 제기, 대화, 타협 등 일련의 소통 과정을 거치며 말이다. 예컨대 영양사나 담당 교사에게 건의하거나, 학급 회의를 통해 안건을 상정할 수 있고, 전교생 차원의 여론 조성이 필요한 문제라면 학생회 차원에서 논의를 주도해볼 수도 있다. 학생이나 학교 구성원이 주도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이런 고민을 해본 것과 그렇지 않은 상황은 차이가 크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이러한 경험은 정부 기관이 나서서 해결하는 하향식 문제해결 방식보다 교육적이다.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을 때 누구와 대화하고 제도를 어떻게 활용할지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어서다. ‘문제해결력’이 새로운 역량으로 대두되고 있는 이 시점에 미래 역량을 기르기 위해서는 교과 내에서 프로젝트 수업을 장려하는 것뿐만 아니라, 학급 회의를 비롯한 학생자치 기구를 살릴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학급 회의로 대표되는 학생 자치의 내실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부산시교육청이 2016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학생 자치활동으로 학교 운영에 참여한다고 답한 학생의 비율은 중학교 69.6%, 고등학교 66.9%로 높은 비율로 나타났지만, 실제 학생의 의견이 학교 운영에 반영되느냐는 질문에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은 ‘잘 모르겠다’(중학교 54.1%, 고등학교 42.2%)였다. 학교 운영에 참여할 방법은 있지만, 실제 효과는 의문이라는 거다.

    더욱이 학생 자치를 활성화할 교육은 충분하지 못한 실정이다. 교육부는 이러한 방향성을 담은 ‘민주시민교육 활성화 종합계획’을 늦어도 올해 8월 말까지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현재까지 발표된 바는 없다. 이에 대해 교육부 민주시민교육과는 관계자는 “일정이 미뤄졌다. 내부적으로 검토ㆍ수정 중이며 향후 발표 시기는 정해진 바 없다”고 밝혔다. 2019년도 관련 예산도 기재부에서 전액 삭감됐다.

    모든 문제를 청원제도로 해결할 수는 없다. 이는 서울시교육청이 다루는 교육 문제뿐 아니라, 청와대 청원이 포괄하는 사회문제도 마찬가지다. 청원제도로 문제를 제기하는 연습을 했다면 이제는 문제해결력을 기르는 교육에 무게를 실어야 한다. 이름뿐인 과목, 유명무실한 자치제도에 머물지 않고 실제로 교실과 학교에서 학생의 문제해결력을 높일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