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숙의 엄마 영어 학교] 어린이의 영어책 읽기, 과연 최선일까?
조선에듀
기사입력 2018.10.12 11:21
  • ‘자발적 읽기만이 유일한 언어 습득법이다.’

    미국의 저명한 언어학자 스티븐 크라센은 ‘읽기 혁명’이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자발적 읽기란 스스로 원해서 책을 읽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요즘 엄마 중엔 영유아기 또는 미취학 자녀에게 영어책을 읽어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좀 더 이른 시기부터 영어에 노출시켜 아이가 영어로 유창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엄마의 소망이 담겨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영어책을 읽고 있지만 아이가 오히려 영어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엄마는 답답하고 조바심이 날 것이다.

    최근 필자의 강연에 참석했던 어떤 엄마가 상담을 요청했다. 유아기부터 유명 전집을 거쳐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지금은 흘려듣기와 집중듣기를 하고 있는데 아이가 입을 열지 않아 걱정이라는 것이다. 다른 엄마들의 고민도 다르지 않다. 많은 시간을 영어책 읽기에 노출해왔는데 아이가 영어를 거부하거나 이미 고학년이 된 아이가 문법을 어려워해 학교에서 배우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영어를 거부하는 이유는 접근 방법의 오류에서 기인한다. 접근 방법이 잘못됐는데 중간에 수정할 기회를 놓치고 계속 진행하다 보니 아이 마음속에는 영어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기고 영어를 거부하기에 이른 것이다. 책을 읽어주는데 어떤 오류가 있을 수 있을까?

    먼저, 아이에게 영어가 낯선 언어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 누구나 낯선 것을 보면 낯가림을 한다. 심한 경우에는 긴장과 두려움을 느낀다. 인지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영유아기의 아이들에게 영어는 낯설다. 게다가 잘하게 해야겠다는 엄마의 욕심도 문제다. 아이는 영어라는 낯선 대상 앞에서 강압적인 엄마의 분위기를 직감한다. 겉으로는 읽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의 뇌는 실은 이때부터 영어를 거부한다.

    언어 습득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엄마와의 상호 교감도 차단돼 있다. 아이의 언어 습득은 놀이(play)와 양육자와의 상호작용(interaction)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책을 읽어줄 때도 마찬가지다. 그림을 가리키며 무엇인지 말해주고 아이가 따라서 말할 때 감탄해주고 아이의 마음을 살피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과정에서 언어의 모방과 습득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영어책을 읽을 때만큼은 엄마의 입이 열리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 혼자 책에 딸려 있는 오디오 음원을 듣고 따라 해야 한다. 아이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낯선 소리를 그림과 연결하는 고된 노동을 혼자 해야 한다. 흥미가 있을 리 없다.

    마지막으로 영어의 본질에 대한 엄마의 기본 지식이 부족하다. 엄마가 영어에 흥미가 없거나 흥미가 있다고 해도 배운 지 오래된 실력을 들추어 아이를 이끄는 일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영어책 읽을 땐 아이와의 상호작용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영어책을 읽는 아이에게 엄마는 가족도 교사도 아닌 감독자가 되고 만다. 아이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감독자인 엄마가 짜놓은 스케줄에 따를 수밖에 없다. 자발적 읽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책읽기를 통해 영어 습득 효과를 얻고 싶다면 영어책을 읽기 전에 먼저 자발적 읽기가 가능하도록 아이의 영어 기본기를 다져줘야 한다. 엄마와 함께 생활 속에서 명사, 동사 줍기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본 문장 이어 말하기를 연습하며 영어 뇌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할까 말까라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영어 습득 시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과정이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는 아이들이 독립적인 책읽기가 가능한 나이를 7~8세로 본다. 그 이전에는 엄마가 끊임없이 말을 걸고, 단어 카드를 읽어주고, 숫자놀이나 도형 놀이도 한다. 우리가 가나다라를 한 글자씩 짚어가며 읽어주는 것처럼 알파벳을 짚어가며 읽어주기도 하고 비뚤 빼뚤 자기 이름을 써보게도 한다. 아이는 좋아하는 책을 가져다가 책장만 넘기면서 읽는 척도 하고, 책 제목을 가리키며 글자를 읽는 척도 한다. 그러다 어느 때부터인가 책 속에서 아는 단어를 찾아내 더듬더듬 읽기 시작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친 후에라야 혼자 읽기가 가능하다. 스티븐 크라센의 자발적 읽기의 피실험자들 또한 대부분 초등학생 이상이며 교사와의 상호작용이 바탕에 깔렸다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기본기(모국어 기준 만 4세 이전의 언어 능력)가 없는 영어책 읽기는 아이 뇌에 날마다 혼란을 쌓는 과정이 될 뿐이다.

    아이들은 부모 덕분에 모국어를 습득한다. 하지만 영어는 부모가 아이 학습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 現)한국항공전문학교 교수 (‘엄마 영어 학교’ 저자)
    前)스탠포드어학원 강사
    前)두란노교육 이사 및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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