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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듀 오피니언] 길 잃은 ‘정책숙려제’…사안 선정부터 신중해야

오푸름 조선에듀 기자

2018.10.10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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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방과후 영어 과정을 허용하는 것으로 교육부에서 입장을 정리했습니다.”(4일 국회 대정부질문 中)

올해 초 결정을 유예해 논란이 일었던 유치원 방과후 영어과정 금지 조치가 결국 철회됐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 같은 내용을 깜짝 발표했다. 올 하반기 국민참여 정책숙려제(이하 정책숙려제)로 논의키로 한 사안이 갑작스럽게 결론나자 정책숙려제가 앞으로 지속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수능 절대평가 도입, 고교학점제 등 문재인 정부의 교육 공약이 연일 후퇴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책 추진 속도보다 소통을 강조해왔지만 이마저도 난관에 부딪힌 셈이다.

유 장관은 유치원 방과후 영어과정 금지 조치 철회와 관련해 “내년도 원생 모집이 10월 중 완료돼 더는 결정을 늦출 수 없어 입장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유치원 방과후 개선방안은 올 하반기 정책숙려제 2호 안건으로 예정됐지만, 유 장관의 발표로 한순간에 없던 일이 됐다. 이후 교육부는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유치원 방과후 영어교육 금지 조치 철회를 공식화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유치원 방과후 개선방안에 대한 정책숙려제를 더는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신 교육부는 정책숙려제를 지속적으로 보완해 국민의 의견을 보다 효과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방식을 고안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교육 정책 공론화를 바라보는 대중의 불신은 이미 커질 대로 커진 상황이다. 지난 8월 말, 정책숙려제 1호 안건이었던 ‘학교생활기록부 신뢰도 제고방안’ 발표를 두고 이해관계자‧전문가 자문위원회로 참여한 실천교육교사모임 등 21개 시민단체는 정책숙려제 거부를 공식 선언했다. 이들은 교육부가 학생부 신뢰도 제고 방안 정책숙려제 진행에 앞서 발표한 시안에 맞게끔 공론화를 추진했다는 주장을 담은 공동입장문을 발표한 바 있다. 앞서 4개월에 걸친 공론화를 통해 마련한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을 바라보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신 역시 극에 달한 상태다.

정책숙려제를 둘러싼 불신을 해소하고 당초 취지를 달성하려면 사안의 적합성을 따져 안건을 선정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실제로 지난 6월 학생부 신뢰도 제고 방안 마련을 위한 정책숙려제 2차 열린토론회에서 시민들은 이 같은 공론화 방식으로는 학생부의 근본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할 수 없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다양하고 복잡한 대입제도 특성상 공론화로 결정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됐다.

이 때문에 앞으로의 정책숙려제 사안 선정 과정은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선정 기준부터 재정비해야 한다. 지난 3월 정책숙려제 도입 발표 당시, 교육부는 ‘온-교육’사이트 토론광장에서 30일 내 댓글과 공감 등이 2만건을 초과한 게시물과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30일 내 동의 10만 건을 초과한 글을 중심으로 안건을 발굴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10일 오전 기준) 온-교육 홈페이지 내 토론광장에 올라온 게시물 중 이 조건을 만족하는 안건은 ‘0건’이다. 청와대 청원 중 육아와 교육 카테고리로 분류된 청원에서 10만 건 이상의 동의를 받은 청원은 아동학대 처벌 강화 및 관련 범죄자 어린이집 재취업 금지, 교원 성과급 폐지 등에 관한 청원뿐이다. 그러나 정책숙려제 선정위원회의 안건 심의 기준으로 제시된 이해관계 조정 필요성과 국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한다면 해당 안건들이 상정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교육부 관계자는 조만간 정책숙려제 선정위원회를 통해 내년도에 공론화를 진행할 안건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때 의견수렴 과정뿐만 아니라 앞으로 공론화할 사안을 선정하는 과정 자체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유치원 방과후 영어과정 금지 조치와 같이 현장의 혼란을 가중할 위험이 있는 사안은 심의 단계에서 충분히 걸러져야 한다. 길 잃은 정책숙려제가 제 역할을 하는 정책 소통창구로 유지되려면 공론화에 적합한 사안부터 선정할 수 있도록 보다 세부적인 심의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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