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말하고, 놀이하는 수학의 재미를 알려주세요"
오푸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8.09.06 15:16

-오병승 서울교대 수학교육과 명예교수의 '수학 육아' 조언

  • 한평생 유ㆍ초등 수학교육을 연구해온 오병승 서울교대 수학교육과 명예교수는
    ▲ 한평생 유ㆍ초등 수학교육을 연구해온 오병승 서울교대 수학교육과 명예교수는 "수학육아로 자녀에게 필요한 지적 능력의 기초를 다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유아 수학교육의 노하우를 담은 저서 '(아이의 수학머리를 키워 주는) 수학육아'를 펴냈다. /이신영 기자

    초ㆍ중ㆍ고교생들에게 수학은 쉽지 않은 과목이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수학을 싫어하다 못해 포기하는 ‘수포자’가 속출한다. 이에 부모들은 일찍부터 자녀에게 수학 공부를 시키고 있다. 내 아이만큼은 ‘수포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한평생 유‧초등 수학교육을 연구해온 오병승(85) 서울교대 수학교육과 명예교수는 "자녀가 일상생활에서 수학적 개념을 쉽게 접하고 그 원리를 경험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며 "주입식 수학 공부에 몰두할 경우, 되레 수학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고 학습 의지까지 꺾일 수 있다"고 밝혔다. 오 교수는 교육부 제3~6차 수학 교육과정 심의위원으로 편수 작업에 참여했으며, 유명 교육기업에서 유‧초등 수학 학습 프로그램 전 단계 총괄 자문을 담당하는 등 그간 유‧초등 수학교육에 힘써왔다. 그는 특히 "취학 전 올바른 수학교육을 통해 지적 능력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다"며 "유아기 자녀를 둔 부모라면 '수학육아'에 나서라"고 조언했다.

    ◇수학 육아의 기본은 ‘말하는 수학’

    부모들은 흔히 유아기 자녀가 숫자를 잘 세면 '수학을 잘한다'고 생각한다. 오 교수는 "실상은 그렇지 않다. 숫자를 외는 일보다 수(數)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는 것부터 바탕이 돼야 한다"며 "아이가 기초적인 수 개념을 모두 이해할 때까지 수를 말로 표현하는 법을 지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그는 본격적인 수학교육에 앞서 고려해야 할 전제 조건으로 아이의 언어 수준을 꼽았다. 오 교수는 "아이가 현재 어느 수준으로 말을 할 수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며 "아이의 언어 발달 상황을 고려해 지도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아이에게 수와 관련된 개념 중 어떤 것을 먼저 가르칠 것인지 우선순위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오 교수는 가장 먼저 양(量)을 나타내는 개념을 인식시켜주는 것이 좋다고 귀띔했다. 그는 "양을 표현할 때 아이가 자신이 가진 물건의 양을 기준으로 직접 비교해보고 이를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예컨대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래 놀이를 통해 모래를 모으거나 뺏으며 '엄마의 모래보다 ○○의 모래가 많네'라는 식으로 양을 비교하면 아이가 쉽게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그다음으로 일대일 대응이나 수사, 순서 및 크기, 수의 가르기와 모으기 등 기초적인 수 개념을 차례로 가르칠 것을 권했다. 그는 "덧셈과 뺄셈 등 연산을 배울 쯤이면 다수의 부모가 아이들에게 '3+2' 같은 수식을 놓고 문제풀이에 집중한다"며 "이보단 '더하다' '모으다' 등 덧셈이 필요한 상황을 묘사하는 말을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그는 자녀가 수학 용어를 확실히 익힐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했다. 오 교수는 "아이가 용어 속 개념을 충분히 익히면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더욱 심화한 개념을 접해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가령 아이가 ‘분수’의 개념을 완벽히 이해했다면 분할 분수, 양의 분수 등 기본 개념에서 파생된 의미를 지닌 다른 개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오병승 서울교대 수학교육과 명예교수/ 이신영 기자
    ▲ 오병승 서울교대 수학교육과 명예교수/ 이신영 기자
    ◇놀이로 경험하는 수학

    수학은 아이들이 학습해야 할 지식이 아니라 특별한 놀이 재료가 될 수도 있다. 오 교수는 아이들에게 주변의 사물이나 규칙을 통해 수학을 하나의 놀이로 인식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아이의 주변에는 언제나 수학이 있다. 전화 다이얼, 시계, 달력 등 사물뿐만 아니라 카드놀이, 블록쌓기 놀이 등에 활용되는 규칙은 모두 훌륭한 수학 놀잇감"이라며 "아이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생활 속 수학적 상황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가족들이 함께 저녁을 먹을 때 식탁 위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의 짝을 맞춰 보는 일을 게임처럼 반복해보세요. 이때 부모가 유의할 점은 '한벌'이라는 정확한 어휘를 표현해 사물이 짝을 이루고 있단 사실을 인지시켜주는 것이죠. 콜라병과 뚜껑, 컵과 빨대 등을 통해서도 일대일 대응을 연습할 수 있어요. 아이가 일대일 대응에 익숙해지면 같은 수의 서로 다른 물건을 놓고 비교하는 심화 학습도 가능합니다."

    이 밖에도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설명해주며 순서에 대한 개념을 심어줄 수 있다. 오 교수는 "아이와 있을 때 매일 달력을 들추며 하루에 하나씩 날짜가 늘어가는 것을 읽게 하거나 아빠가 귀가하는 시간을 기준으로 전과 후에 대한 개념을 일러주는 등 일상적인 일을 순서 개념과 연관지어 가르칠 수 있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무엇보다도 아이에게 수학을 지도할 때 자녀에게 적합한 수준으로 차근차근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녀의 수학적 사고력을 발달시키고 싶다면 아이가 수학적 상황에 대해 직접 보고 말하는 연습을 독려해야 한다”며 "아이가 수 개념을 충분히 이해할 때까지 문제풀이 등을 서두르지 않는 편이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