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훈의 학습 원포인트 레슨] 과잉 꼼꼼 vs 과잉 대범
조선에듀
기사입력 2018.08.24 09:06
  • 가만히 학생들을 관찰해보면 몇 가지 유형의 성격이나 성향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과잉 꼼꼼과 과잉 대범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과잉 꼼꼼은 작은 거 하나에 너무 집착해서 숲을 보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영어단어를 외울 때 한 개가 잘 안 외워진다고 낑낑대면서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학생들 상담할 때 교재를 펴보지 않고도 분석하는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책 밑에 손때 뭍는 곳을 먼저 보는 방법이다. 영어단어집을 보면 거의 80프로 이상 그라데이션(gradation)이 그려져 있다. 처음에만 열심히 꼼꼼하게 하다가 제 풀에 지쳐서 나중엔 대충하거나 진도를 빼지 못해서 생기는 흔적이랄까.

    하지만 이런 과잉 꼼꼼은 영어가 아니라 수학에 더 어울린다. 영어 단어는 연애하는 거랑 똑같아서 가는 사람 잡지 말고 오는 사람 막지 말아야 한다. 잊어버리는 것 잘 안 외워지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걸 즐겨야 한다. 앗 또 까먹었네! 그래, 다시 외워야지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여러 번 까먹고 다시 외우는 과정이 영어 단어 암기의 본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영어는 좀 대범하게 공부할 필요가 있다.

    60일 치로 구성된 단어집이 있다면 이것을 60일 동안 꼼꼼하게 외운 학생과 20동안 열심히 외우고 40일을 놀아버린 학생 중에 누가 60일 이후에 더 많이 알고 있을까? 정답은 바로 둘 다 모른다 이다. 어차피 영어단어는 까먹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바른 공부방법은 20일 동안 한번 외우고 또 20일 동안 한번 외우고 또 20동안 한번 외워서 60일 동안 세 번 반복하는 게 최고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거꾸로인 경우가 많다. 영어는 엄청 꼼꼼하게 하는데 엉뚱하게 수학에 가서 엄청 대범하다. 잘 몰라도 넘어가고 별표치고 대강 이해한 다음 문제나 쭉쭉 풀고 그러다 어렵거나 길거나 복잡한 문제는 또 제대로 풀지 않고 답이나 참고하고 얼렁뚱땅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 바로 과잉 대범이다. 수학은 과잉 꼼꼼이 어울리는 과목인데 반대로 하고 있는 경우다. 너무 대범한 나머지, 잘 몰라도 답보고 대충 넘기고 이해 안 되면 과정을 그냥 막 외우고 하는 식의 공부 고등학교 수학에 가면 한계점에 다다르게 된다. 수학 교재는 손때 묻은 곳을 보면 그라데이션이 아니라 바코드가 찍혀 있다. 쉬운 데는 까맣게 열심히 하고 어려운 데는 하얗게 대충 넘어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런 과잉 대범은 수학과 유사성이 있는 탐구계열 과목 (사회/과학)에서도 비슷한 약점을 발생시킨다.

    그러니 좌우지간 기본적으로 개념을 이해하고 문제에 적용하여 최종적으로 응용 및 추론 같은 것을 해야 하는 과목에서는 조금 더 꼼꼼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과잉 대범은 지문을 쭉쭉 읽고 파악해보고 하는 식의 국어나 영어에 어울린다. 너무 나무만 보려고 하지 말고 숲도 보고 당장 눈앞의 것이 잘 안된다고 자책할 필요 없이 뒤엔 뭐가 있나도 살펴보고 그러다 잘 몰랐던 게 깨달아지기도 하고 그러는 것이다.

    정리해보면, 영어는 지금보다 좀 더 대범하게 공부하도록 해야 한다. 눈앞에 있는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전체를 일단 섭렵해보고 다시 해보고 그러다 터득하고 읽어보고 써보고 그러다가 잊어버리거나 답답해서 자책하지 말고 그냥 대범하게 웃고 넘겨야 한다. 다음에 또 보면 새롭게 보일 테니까 말이다. 반대로 수학이나 비슷한 사회 과학 계열 과목은 좀 더 꼼꼼해지도록 해야 한다. 당장 급한 숙제를 처리하기 위해서 정작 중요한 개념을 대충 공부하면 낭패 본다. 또 문제 풀기 바빠서 답보면서 답안지 재연하기 연습만 반복하는 건 의미 없는 작업이다. 순전히 내 힘으로 끙끙 앓아 가면서 고민해보고 생각해봐야 한다. 그래서 모르겠으면 물어보고 찾아보고 이해한 바를 다시 꺼내 보고. 이렇게 공부해서 대범함과 꼼꼼함을 두루 겸비하면 그게 곧 인생을 살아가는 에너지원 즉 성격이나 성향이 되는 것이다.

    영어 단어를 외울 때 각인 효과를 높이는 방법으로 대범한 반복과 함께 단어장을 만드는 것도 좋다. 필수라고 볼 필요는 없지만 아무래도 단어장을 스스로 만들어서 공부하면 각인 효과가 더욱 높아진다. 다만 모르는 단어를 몽땅 적으려고 애쓸 필요는 없고 동의어/유의어가 많거나 명사형/형용사형/부사형이 변화무쌍하거나 한 개의 단어가 여러 개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 등이 나올 때 정리해 두면 요긴하다. 특히 학년이 올라갈수록 이런 것들을 반복적으로 적고 정리하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자주 보게 되어 세트로 외울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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