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에 갇힌 교실, 에듀테크로 변화될까
최예지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8.08.22 17:00

-에듀테크 전문가 3인 인터뷰
-“지식 교육은 AI가…교사는 새 역량에 집중”
-“교육 데이터 설계·수집 필요해…에듀테크 활용하려면 교육철학 있어야”

  • 왼쪽부터 박정철 구글 이노베이터(단국대 교수), 김민우 키드앱티브아시아 대표, 홍정민 휴넷 에듀테크연구소장/이신영 기자, 최항석 객원기자
    ▲ 왼쪽부터 박정철 구글 이노베이터(단국대 교수), 김민우 키드앱티브아시아 대표, 홍정민 휴넷 에듀테크연구소장/이신영 기자, 최항석 객원기자
    #2025년 서울의 한 고등학교. 아이들이 수학 시험을 마치자마자, 담당 과목교사는 아이들의 성적을 받는다. 태블릿PC로 시험을 보면 채점이 자동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가장 어려운 문항을 찍어서 맞힌 학생도 알 수 있다. 아이들이 해당 문항을 푸는데 걸린 평균 시간에 비해 월등히 짧은 시간에 답을 작성한 경우를 판별하는 식이다.

    #전자책 형태의 과학교과서를 읽다가 80쪽에서 멈춘 민아와 시우(가명·17). 두 학생은 같은 지점에서 독서를 중단했지만, 그 이유는 서로 다르다는 걸 담임교사는 알 수 있다. 민아의 독서 속도는 느려지다가 멈춘 반면, 시우는 비교적 균일한 속도로 책을 읽다가 75쪽에서 80쪽까지 반복해서 읽고는 멈췄기 때문이다. ‘독서 시간 데이터’를 바탕으로 민아는 ‘책이 지루해서’, 시우는 ‘해당 구간이 어려워서’ 책을 그만 읽었다는 걸 추론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교육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각종 기술이 ‘에듀테크(Edu Tech)’라는 이름으로 교육현장에 들어오면서다. 해외 사례에 이끌려 맹목적으로 도입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부터, 교육자라면 모두가 꿈꾸던 완전학습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기대까지 에듀테크를 둘러싼 다양한 시선이 공존한다. 이에 에듀테크로 교육은 어떻게 변할지 전문가 3인에게 물었다. 

    ◇지식 교육의 종말…AI가 맞춤형 학습 제공

    칠판 앞에 서 있는 교사, 칠판을 바라보고 앉아있는 수십 명의 학생. 교실 하면 떠오르는 풍경이다. 하지만 미래에 이런 교실은 없을지 모른다. 앞으로 지식을 가장 잘 가르치는 건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AI)라는 게 에듀테크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AI는 지식을 반복적으로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혁신적인 교수법으로 국내 유일의 구글 이노베이터로 선정된 박정철 단국대 치과대학 교수는 단언했다. 그는 “실제로 미국에서는 인공지능 스피커를 보조교사로 둬, 학생이 모르는 게 있으면 인공지능을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AI를 활용하면 맞춤형 교육이 이뤄질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홍정민 휴넷 에듀테크연구소장은 “학생별 학습 수준에 따라 AI가 콘텐츠를 제공하니,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일대일 학습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수학을 예로 들며 “인수분해-소인수분해-미분-적분 등 여러 개념이 연결되는데, 현재는 앞선 개념을 모르는 학생이 있더라도 모든 학급에서 진도는 동일하게 나간다. 그러니 수학 공부는 어디서 포기하느냐의 게임이 되고 만다”며 “하지만 AI를 활용하면 인수분해를 몰라 미분을 할 수 없는 학생에게 인수분해를 반복 학습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맞춤형 학습을 가능케 하는 동력은 ‘빅데이터’다. 김민우 키드앱티브아시아 총괄대표는 “맞춤형 교육이라는 ‘처방’을 내리려면, 학습자 성향 ‘진단’이 선행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교육 데이터가 축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교육현장에서 어떤 데이터를 모을지 구체적으로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면, 앞선 사례처럼 속도에 따라 독서 중단 이유를 밝혀내려면, 학습 시간을 학습을 마칠 때가 아니라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데이터를 수집해야 한다. “설계 없이 무분별하게 모은 데이터는 활용 가치가 없습니다. 공교육에 도입하는 디지털 교과서도 단순히 교과서를 태블릿으로 옮기는 것보다, 데이터를 상세히 모으는 태도로 개발해야 합니다.” 

    ◇AI 시대, 교사는 ‘새로운 역량’ 집중해야

    전문가들은 교사가 에듀테크의 덕을 톡톡히 볼 수 있을 거라 전망한다. 김 대표는 “현재 교사가 개별 학생이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앞으로는 학습자 특성 분석 서비스를 통해 학생의 이해도나 성향을 속속들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박 교수는 다양한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진행해 효율성을 체감하고 있다. “본교 치과대학 재학생들은 스마트폰과 평가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시험을 치러 교수는 따로 채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외에도 행정 업무가 많이 줄었어요. 그러니 수업의 질을 높이는 노력을 할 여유가 생겼습니다.” 

    대신 교사는 AI가 할 수 없는 교육에 집중한다. 홍 소장은 “교사는 학생이 인간만의 능력인 창의성, 협업, 감성을 함양하도록 교육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 교수는 한 가지 방식으로 플립러닝(Flipped Learning)을 들었다. 플립러닝은 온라인으로 지식 중심 강의를 먼저 수강하고, 오프라인으로 토론·문제해결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는 교수방법이다. 그는 “이미 하버드 의대에서는 모든 수업을 플립러닝으로 바꿨다”며 “강의를 이미 듣고 오니 교실에서는 왜 문제가 일어나는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지 토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에 따라 미래의 학교 형태는 현재와 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고등교육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대학이 각광받고 있다. 고정된 캠퍼스가 없는 미네르바 스쿨, 졸업장이 없는 에꼴42가 대표적이다. 홍 소장은 “ICT 기술이 발달했는데 캠퍼스가 굳이 있어야 하는지, 지식은 빠르게 변하는데 대학이 꼭 4년제여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다 보면 이런 형태의 학교를 고려해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에듀테크는 도구일 뿐…중요한 건 ‘교육 철학’

    3인의 전문가는 에듀테크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했지만, 한편으로는 에듀테크도 결국은 ‘도구’ 라고 입을 모았다. 박 교수는 “기술을 현명하게 쓰는 건 사람의 몫”이라며 “에듀테크를 부정적으로 보기보다는 기술을 어떻게 잘 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에듀테크라는 도구를 잘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건 교육철학”이라고 강조했다.

    교육철학이 부족해 제대로 운영되지 않은 에듀테크 사례도 나왔다. 마크 저커버그 등 실리콘밸리 유명인사가 투자한 알트 스쿨이 맞춤형 학습을 제공할 것이라 기대됐던 것과 달리 최근 다수의 캠퍼스를 닫은 게 대표적이다. 홍 소장은 “교육 철학이 부재한 알트 스쿨은 투자 등 상업적 이익에 집중했고, 학습자를 실험용 쥐로 다룬다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라 설명하며 “하지만 또 다른 맞춤형 학습 교육 기관인 칸랩 스쿨은 교육의 대중화, 학생 낙오 방지 등의 철학으로 순항 중이다. 에듀테크는 자본에 휘둘리지 않도록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 이해관계자가 각자의 역할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미래사회에 필요한 인재상과 역량을 공유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김 대표는 “학부모, 교사, 저와 같은 에듀테크 관계자 등 이해관계자가 자신의 역할과 책무를 규정해 학습자를 중심으로 최상의 에코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각자 본인들의 입장에서만 논의를 이끌다보면, 모든 분야가 AI 때문에 발전해도 교육은 그대로일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훌륭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에듀테크를 도입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