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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신반리…. 이 작은 시골마을에는 특별한 약국이 있다. 낮에는 평범한 동네 약국이지만, 저녁이 되면 책가방을 멘 동네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잠시 후 약국에 딸린 작은 방 안에서는 아이들의 영어 읊는 소리가 힘차게 들린다. 지난 2008년 겨울부터 동네 아이들의 도서관이자 공부방 역할을 톡톡히 해낸 이 약국은 수업료나 교재비 등 일절 없이 그저 공부하고자 하는 열정만 있다면 누구나 올 수 있다. 그간 이곳을 잠시라도 거쳐 간 학생들만 100여 명에 달한다. 과연 이 특별한 약국엔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을까.
그동안 이 은밀한 영어 공부방을 꾸려온 주인공인 김형국(64·사진) 약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나는 정신을 가지라는 뜻에서 ‘오뚝이 영어 공부방’이라고 이름 짓고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는 “캐나다 이민생활에서 돌아와 조그만 시골약국에서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느낀 점은 바로 ‘열악한 교육환경’”이라며 “도시와 달리 변변한 학원 하나 없이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돼주고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공부방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 시골 약사에서 ‘영어 선생님’ 되다
오뚝이 영어 공부방의 역사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불혹이 넘어 캐나다 이민을 떠난 김 약사는 구순(九旬)의 노모를 향한 그리움으로 10년 만에 한국행을 택했다. 귀국 후 경남 마산 어머니댁에서 근거리에 있는 의령에 작은 약국을 열었다. 처음 약국 문을 열었을 땐 한적하고 평화로운 농촌 생활에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마음에 걸리는 게 생겼다. 바로 약국을 오가는 ‘동네 아이들’이었다.
“교육 시설이나 문화 기반들이 턱없이 부족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볼 때면,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저 역시 시골에서 자랐지만, 교육열이 대단하신 아버님의 영향으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까지 서울에서 공부했거든요. 당시 시골에서 제대로 공부하기란 쉽지 않았는데, 50년이 지난 지금도 변치 않았더군요. 그간 이민 생활을 통해 스스로 터득한 영어를 함께 나누고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길러주자는 취지에서 공부방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김 약사는 약국에 딸린 작은 서재에 책상과 의자, 칠판 등을 두고 무료 공부방을 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학생을 모집하기가 쉽지 않았다. 학생 대부분이 방과 후 공부하기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데 더 익숙했기 때문이다. 이에 김 약사는 그간 편찮으신 아버지 약 심부름을 위해 약국을 자주 찾는 당시 중학교 1학년 김홍식군부터 섭외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함께 공부하자’는 김 약사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던 김군은 집요한 설득 끝에 결국 첫 제자가 됐다. 이후 김군의 영어 실력이 월등히 오르자,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뚝이 영어 공부방’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 ‘단계별 학습’·‘의성어식 공부법’ 등 그만의 비결로 영어 학습 도와
김 약사는 그동안 학교나 학원에선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학습법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대표적으로 ‘단계별 학습법’이다. 오뚝이 공부방은 나이·학년이 아닌 어휘량에 따라 1·2·3단계로 나눠 학습한다. ▲1단계(영어 동사 1000개) ▲2단계(중학교 과정 어휘) ▲3단계(수능형 어휘)다. 예컨대, 고교 1학년생이 중등 과정 단어까지 외우면 2단계지만, 중등 1학년생이 수능형 단어까지 전부 외우면 3단계 학습이 가능하다. 단계별로 과제량도 다르다. 대개 1단계 아이들은 쉬운 문장 하나를 확실히 이해할 때까지 매일 20번씩 쓰고 읽는다. 반면, 2단계 아이들은 이와 더불어 기본시제·진행시제 등 기본 6시제를 응용해 쓰고 읽고, 3단계 아이들은 여기에 완료시제·완료진행시제 등까지 총 12시제를 연습한다. 김 약사는 “가끔 3단계 아이들은 바쁜 저를 위해 보조교사가 되기도 한다”며 “1·2단계 아이들의 숙제 검사뿐 아니라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을 위해 지식을 나눠주는 등 사다리식 학습법을 지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화 수업도 독특하다. 오뚝이 공부방은 김 약사가 유학시절부터 연구해 탄생한 ‘의성어식 공부법’으로 진행된다. 의성어식 공부법은 문장의 단어마다 악센트를 넣어서 복식호흡으로 소리 내는 학습으로, 학생들은 수업마다 마치 기합 소리를 내듯 영어 단어 하나하나 힘줘 읽는다. 김 약사는 “의성어식 발성법이 몸에 배면 회화뿐 아니라 듣기에도 효과가 있다”며 “처음에는 친숙한 단어만 들리지만, 훈련을 거듭할수록 영어 소리를 정확히 듣고 그 뜻을 인지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김 약사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바로 ‘오뚝이 정신’이다. 김 약사는 아이들의 영어 실력뿐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의지를 심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어디에 살든 좌절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서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아이들에게 키워주기 위해서다. 예컨대, 시험 성적이 형편없어도 꾸중 대신 ‘우리는 오뚝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자’ ‘유명하기보단 유익한 사람이 되자’고 외치게 한다.
“시험 결과가 어떠하든 야단치지 않습니다. 채점도 아이들이 스스로 하고, 경쟁도 없기 때문에 커닝과 같은 그 어떤 속임수도 없어요. 다만, 숙제가 밀리거나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면, 이틀간 공부방에 오지 못하고 근신토록 합니다. 하루만 나오지 않아도 수업에 따라오기 어렵기 때문에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벌이기 때문이지요. 이런 공부방에서의 생활 태도가 아이들의 미래에 큰 자산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 대학원 진학 등 아이들 가르치려 공부…“계속 도움 주고파”
이후 오뚝이 공부방을 거쳐 간 아이들은 대개 성적이 가파르게 올랐다. 공부방을 찾는 아이들이 지역 고등학교 전교 1등에서 5등까지를 도맡아 했을 정도다. 군 지역 인문계 고교에서는 나오기 어려운 영어 모의고사 1등급도 수차례 받았다. 특히 첫 제자인 김군은 성적이 조금씩 오르더니 고교시절 내내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다. 고2 땐 KBS 꿈의 기업 입사 프로젝트 ‘스카우트’에서 최종 우승해 일찍이 여행사 취업에도 성공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만큼이나 김 약사도 쉼 없이 공부했다. 아이들을 더욱 올바르게 가르치려면 제대로 교육학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경남대 교육대학원 영어과에 입학해 박사 과정까지 마쳤다. 최근엔 그간 아이들을 가르치며 겪은 내용과 그만의 영어공부법을 담아 ‘나는 영어를 가르치는 시골 약사입니다(토네이도)’ 신간을 펴내기도 했다. 그는 “오뚝이 공부방을 거쳐 간 아이들이 유명한 사람들이 되려 하기보다 유익한 사람으로, 남을 돕는 기쁨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다면 계속해서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현재 가르치는 아이들이 고교를 졸업할 때면, 제가 70세가 됩니다. 아마 그땐 공식적인 영어공부방은 접어야겠지요?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제 상황에 맞게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기꺼이 도울 계획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영어를 통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의지만 있다면, 저는 언제든 함께할 생각입니다.”
시골 아이들이 영어 우등생이 된 비결…해답은 ‘약국’에 있다
-‘나는 영어를 가르치는 시골 약사입니다’ 저자, 김형국 약사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