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나는 쓸모없어”…‘죽음 암시’ 장난하는 초등생들
최예지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8.07.12 15:12
  • 초등생들이 죽음을 암시하는 노래를 '가사 프랭크'라는 놀이로 소비하고 있다. 유행처럼 번지며 해당 곡을 재생산한 영상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사진은 관련 유튜브 동영상 중 일부 캡처본.
    ▲ 초등생들이 죽음을 암시하는 노래를 '가사 프랭크'라는 놀이로 소비하고 있다. 유행처럼 번지며 해당 곡을 재생산한 영상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사진은 관련 유튜브 동영상 중 일부 캡처본.

    #곽민재(가명)씨는 초등학생 딸아이가 친구와 주고받은 메신저를 흘깃 보다가 깜짝 놀랐다. 딸이 친구에게 ‘대가리 박고 자살하자’라는 문장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내서다. 화들짝 놀라 ‘이게 무슨 이야기냐’며 아이를 붙잡고 물었더니, 아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요즘 유행하는 노래 가사를 장난으로 보낸 것”이라고 대답했다. 곽씨는 아무리 장난이라도 쉽게 입에 담을 말은 아닌 것 같아 우려스러웠다.

    초등생들의 입에 죽음을 암시하는 노랫말이 오르내리고 있다. 어른이 듣기에도 무서운 가사를 아이들은 놀잇감으로 여기며 유행처럼 흥얼거리는 것이다. 자조적인 가사에 일부 아이들은 자기 이야기 같다고도 반응한다.

    그중 초등생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노래는 단연 ‘대박자송’이다. 이때 ‘대박자’는 ‘대가리 박고 자살하자’의 준말이다. 이는 노래의 제목이자 후렴구로 곡 전반에 걸쳐 반복돼, 곡에 ‘자살’이라는 말만 총 13번 나온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집 강아지도 나보다는 길을 잘 찾아’‘나무야 미안해 나는 똥 만드는 기계일 뿐’ 등 자신을 비하하는 가사도 많다. 이 곡은 자극적인 가사와 대조적으로 경쾌하고 발랄한 멜로디로 인기를 끌어, 현재(11일 기준) 유튜브 조회 수가 142만 건을 넘었다.

    대박자송이 유행하게 된 데에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가사 프랭크’라는 놀이가 한몫했다. 가사 프랭크는 노랫말이라고 알리지 않고 메신저로 가사를 연달아 보내 상대방의 반응을 떠보는 형태의 놀이다. 예를 들어, ‘이제 내 차례는 끝났으니 사요나라’와 같이 죽음을 암시하는 가사를 친구에게 보내 어떤 반응을 하는지 살피는 식이다. 현재 유튜브에 대박자송 가사 프랭크 영상은 수백 건에 달할 만큼 인기가 높다. 죽음을 암시하는 말에 친구가 당황할수록 영상에는 ‘재밌다’‘웃기다’와 같은 호응 댓글이 쏟아진다. 해당 영상을 만든 최모(11)양은 “친구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재밌어 영상까지 만들었다”며 “영상을 본 다른 친구들도 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 했다.

    하지만 이를 곁에서 보는 학부모는 걱정스럽다. 자조적인 태도를 배우거나 나쁜 생각으로 이어질까 봐서다.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인 아이를 둔 최모(46)씨는 “이렇게 무서운 가사를 어린아이들이 따라 한다는 것부터 충격이지만, 혹여 어떤 아이는 이 노래로 잘못된 생각을 할까 봐 더 걱정된다”고 말했다. 주부 정모(39)씨는 "아이들이 자기비하적인 가사에 공감하는 현실이 마음 아프다"며 "이런 정서에 물들어 자신이 쓸모없다고 생각하면 어떡하느냐"고 토로했다.

    전문가들 역시 이를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최지영 인하대 아동심리학과 교수는 “노래가 아이들의 마음을 대변했기에 놀이로 소비되는 것”이라고 봤다. 그는 “아이들조차도 (좋은 성적을 얻어야 하는 등)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이런 노래에 공감할 수 있다”며 “자학하며 이러한 심리를 표출하려는 것”이라 말했다. 실제로 대박자송 관련 영상에는 ‘가사가 내 이야기 같다’는 댓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또한 전문가들은 이러한 유행이 자살을 조장할 수 있음을 걱정한다. 현명호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살이라는 단어를 반복하는 후렴구는 점화 효과(priming effect)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노래와 같은 계기로) 마음속에 작게 품고 있던 자살 생각이 강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홍현주 한림대 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자살과 학생정신건강연구소장)는 “자살은 극단적이며 되돌릴 수 없는 일임에도, 아이들은 자살을 문제해결 방법으로 가벼이 떠올릴 수 있다”며 “특히 생활이 힘들어 죽음을 생각하는 등 취약성이 있는 아이들은 실제 행동으로 옮길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미 아이들에게 해당 곡이 유행했다는 건 심의가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라며 자살을 명시한 콘텐츠로부터 청소년을 엄격히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작년 6월에 발매된 대박자송을 지난달 19일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뒤늦게 지정한 바 있다. 그럼에도 대박자송이 배경음악으로 깔린 가사 프랭크 영상은 성인 인증 없이도 접할 수 있어, 여전히 청소년들은 대박자송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 현재 유튜브에 대박자송 가사 프랭크 영상은 수백 건에 달한다./ 유튜브 캡쳐
    ▲ 현재 유튜브에 대박자송 가사 프랭크 영상은 수백 건에 달한다./ 유튜브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