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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인터뷰] 젓가락으로 작업하는 모래 조각가 김길만씨

부산=하지수 기자

2018.07.1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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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사장은 나만의 화실… 젓가락 하나로 조각해요"

지난 7일 오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드넓은 백사장에서 유독 관광객으로 북적거리는 장소가 있었다. 모래로 만든 2m 길이의 인어 공주 조각이 전시된 곳이다. 작품에는 인어 공주의 흩날리는 머릿결, 꼬리지느러미 잔주름까지 실감 나게 표현돼 있었다. 사람들은 모래 조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오전 7시부터 8시간 동안 공들인 보람이 있네요. 주말마다 백사장을 화실 삼아 모래를 조각하는데, 오늘은 생각보다 더 멋진 작품이 완성됐어요. 점수를 매기면 100점 만점에 95점 정도? 두고 가기 정말 아쉬워요(웃음)." 모래 조각가 김길만(58)씨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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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조각가 김길만씨가 지난 7일 자신이 완성한 작품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다. 그는 “현재 평일에는 제조업 분야에서 일하고 주말에만 취미로 모래 조각을 하고 있다”며 “내년에 퇴직하고 나면 조각에만 집중할 계획”이라고 했다. / 부산=임영근 기자

불법 모래 채취자로 의심받아 경찰서 가

김씨는 국내 모래 조각가 1세대다. 지금까지 선보인 작품만 해도 1000개 이상. 이중 일부는 초·중·고교 미술 교과서에 실렸다. 2000년 미국 시카고 몬트로스 해변에서 제작한 용 조각은 지역 매체 '선 타임스' 1면에 소개되기도 했다.

순전히 독학으로 이뤄낸 결실이다. 김씨는 1987년 친구와 해운대해수욕장을 찾았다가 모래 조각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그는 "그날따라 모래의 감촉이 남달랐다"며 "장난 삼아 모래로 인어 공주 모양을 만들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재밌었다"고 했다.

"어릴 적에 미술가를 꿈꿨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포기했어요. 그런데 모래를 이용하면 돈 들이지 않고 원하는 예술 작품을 마음껏 만들 수 있겠더라고요. 모래 조각을 하며 여가를 보내고, 못다 한 꿈도 이루기로 마음먹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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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조각을 만드는 김씨의 모습. 완성된 조각 위에는 물에 녹는 친환경 성분의 물풀을 뿌려 형태를 유지한다.
이후 틈만 나면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모래와 바닷물을 1대1 비율로 섞어 질펀하게 만든 뒤 두 손으로 주무르고 두드려 작품을 빚었다. 생소한 분야에 뛰어들다 보니 우여곡절도 많았다. 하루는 모래 불법 채취자로 오해를 받아 경찰서에 끌려갔다. 장사에 방해된다며 주변 상인이 김씨의 신발을 숨긴 적도 있다. "맨발로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데, 오기가 생기더군요. 그날 이후로 비 오는 날에도 우비를 입고 백사장에 나가 연습했어요."

100여 시간 투자해 한 작품 완성하기도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조각 실력은 나날이 발전했다. 좀 더 정교한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어떤 도구로 재료를 다듬을까' 고민하던 찰나, 눈앞에 떨어진 쓰레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지나가던 꼬마가 다 먹고 남은 핫도그의 막대를 운명처럼 딱 제 앞에 버린 거예요. 써보니 선을 그릴 때 유용했어요. 이때부터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칼처럼 다듬어 갖고 다니기 시작했죠."

나무젓가락은 김씨만의 특별한 미술 도구가 됐다. 국내외 통틀어 나무젓가락을 쓰는 모래 조각가는 자신뿐이라는 게 김씨의 얘기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조각용 금속 막대기를 쓴다고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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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만씨의작품들. / 김길만씨 제공

김씨가 나무젓가락으로 조각을 만들 때 걸리는 시간은 작품 크기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짧게는 5시간, 길게는 100여 시간을 투자한다. 지난해 '해운대 모래축제'에서 선보인 가로 15m, 세로 8m 크기의 작품은 하루 10시간씩 11일에 걸쳐 완성했다.

김씨는 "모래를 조각하면서 인내심이 많이 늘었다"며 "백사장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니 내성적이었던 성격도 외향적으로 변했다"고 했다. "사람들이 '곧 사라질 모래 조각을 왜 만드느냐'고 물어봐요. 제 대답은 하나예요. 좋으니까요.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의 희열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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