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매일 화내고 후회한다면…“‘감정 관찰 일기’ 써보세요”
오선영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8.06.22 10:03

-세 아이 엄마 최현정 소장이 말하는 ‘감정 조절 육아법’
-언제, 왜 ‘욱’하는지, 자신 들여다봐야 감정 다스릴 수 있어
-나쁜 감정 억누르지 말고, 솔직하게 표현하게 해야

  • 최근 ‘감정조절 육아법’이란 책을 펴낸 최현정 한국감정조절연구소장은 “저처럼 어린 시절 상처가 많은 사람도 이를 극복하고 자기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는 점을 다른 엄마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며 “감정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면, 자신이 어떤 상황에 왜 화가 나는지부터 잘 관찰해 보라”고 조언했다. / 김종연 기자
    ▲ 최근 ‘감정조절 육아법’이란 책을 펴낸 최현정 한국감정조절연구소장은 “저처럼 어린 시절 상처가 많은 사람도 이를 극복하고 자기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는 점을 다른 엄마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며 “감정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면, 자신이 어떤 상황에 왜 화가 나는지부터 잘 관찰해 보라”고 조언했다. / 김종연 기자

    “제가 결혼해서 ‘엄마’가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어요. 남편과 연애하다가 결혼 얘기가 나왔을 때 도망쳤을 정도예요.”

    올해 여덟 살, 다섯 살, 세 살 난 세 아이 엄마의 얘기치고는 다소 의외였다. 최현정(35) 한국감정조절연구소장은 실제로 남편을 만나기 전까진 결혼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릴 때 가정에서 받은 상처가 너무 깊어서다. 친부는 그가 세 살 때 집을 나갔고, 계부에게선 가정폭력을 당했다. 어머니는 밤낮으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쳐 아이들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학창시절 공부를 제법 잘했지만, ‘여자는 기술 배워 취직하는 게 최선’이라는 계부의 강요에 상업계고를 갔다. 대학 진학은 꿈도 못 꿨다. 고교 졸업반이던 열여덟 살의 어느 날, 계부에게 화분으로 머리를 얻어맞고 그 길로 집을 나왔다. 그는 “취업이 결정된 상황이었기에 다시는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이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결혼이나 출산은 떠올려 본 적이 없다. 행복한 가정이 무엇인지 머릿속에서조차 그려지지 않았다. 대학에 가지 못한 게 한(恨)이 돼 스물일곱 살에 한국방송대 관광학과에 진학했는데, 그곳에서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이뤘다. “결혼하자마자 첫째아이를 임신해 낳았어요. 제 아이가 정말 사랑스럽고 무엇보다 귀했지만, ‘엄마’가 될 준비는 안 돼 있었죠. 설상가상 아이가 몸이 약해 태어나자마자 병원에 입원했고, 성격도 예민했어요. 저는 제가 어린 시절 겪은 일을 아이에게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내가 못 받은 사랑을 아이에게 다 주자. 아이에게만 헌신하는 엄마가 되자’고 결심했죠. ‘좋은 엄마’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아이에게 집착했습니다. 책 등에서 공부한 육아법을 전부 적용하고 뜻대로 안 되면 화를 냈죠. 아이를 키우면서 저 자신을 잃고 있었어요.”

    그 무렵 둘째를 낳으면서 최 소장은 생각을 바꿨다. ‘엄마’라는 무거운 책임감을 조금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보기로 했다. 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한국방송대에 재입학해 청소년교육을 전공한 것이다. 그는 “엄마가 자신을 돌보기 시작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이는 곧 엄마의 ‘자존감’으로 이어진다”며 “쉽게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힘’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소장이 사람의 ‘감정’에 더 관심 갖고 공부하게 된 것도 이때였다. 셋째를 낳고 나서는 더욱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는 데 집중했다. “아이가 셋이 되니 완벽하게 아이를 돌보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했어요. 제가 완벽한 엄마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저절로 깨닫게 됐죠. 사실 아이들의 내면에는 스스로 자라는 힘이 있어요. ‘뭐든 내가 나서서 해줘야 한다’는 엄마의 책임감이 오히려 아이의 성장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을 버리고 ‘내가 없어도 아이들은 괜찮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감정 관찰 일기’로 마음을 들여다보다

    그럼에도 ‘감정 조절’은 쉽지 않았다. 첫째를 낳았을 땐 시부모와 같이 살며 도움을 받아 육아가 비교적 수월했다. 하지만 셋째가 태어났을 땐 분가한 상태여서 도움받을 곳이 없었다. “제가 잠이 부족하고 피곤하면 부쩍 예민해지고 감정 조절이 잘 안 됐어요. 어린 시절 언제 아버지에게 맞을지 몰라 자면서도 늘 긴장 상태였는데, 그게 죽 이어져 어른이 돼서도 잠을 깊이 못 잤거든요. 작은 소리에도 금방 깨고요. 너무 바빠 몸이 힘든 날엔 짜증이 몰려왔고, 이를 주체할 수가 없었죠.”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최 소장은 남편에게 충격적인 얘길 들었다. 밤에 자던 중 아이(셋째)가 칭얼거렸는데, 최 소장이 잠결에 욕설 섞인 말로 화를 내며 아이 엉덩이를 때렸다는 것이다. 이 일은 그를 크게 반성하게 했다.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다스릴까 고민하던 그는 ‘감정 관찰 일기’를 쓰기로 했다. 몇 년 전부터 써온 ‘감사 일기’를 응용한 것이다. ▲자신이 겪은 상황과 느낀 감정을 쓰고 ▲감정에 따른 자신의 행동을 기록한 뒤 ▲그 날의 생각을 적고 ▲관찰자의 입장으로 피드백하는 방식이다. 피드백은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어야 하는지,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적는다. 이때 기록을 미루지 말고 기억과 감정이 생생한 당일에 적는 것, 자신의 감정을 속이지 말고 솔직하게 적는 것이 중요하다.

    “감정 관찰 일기를 쓰면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를 알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저는 아이들이 집안을 어지럽힐 때 유독 화를 많이 냈더라고요. ‘정리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어요. 왜 화가 날까 생각해 보니, 이것도 제 어린 시절과 관련 있더군요. 아버지가 결벽증이 있어서 집안이 조금만 더러워도 야단맞았거든요. 이렇게 화가 나는 상황과 이유를 알면 대처 방법도 알게 돼요. 지켜보니 보통 세 아이가 각자 다른 놀이를 하느라 장난감을 이것저것 꺼내면서 집안을 어지르더라고요. 아이들이 놀 때 제가 그 안에 잠깐 끼어서 셋이 같이 놀 수 있게 도와주기만 해도 그런 일이 한결 줄더군요.”

    최 소장 가족은 잠자기 전 감정 해소의 시간을 갖는다. 그날 생긴 안 좋은 감정을 풀어내는 시간이다. 최 소장과 남편이 아이들을 나눠 맡아 그날 있었던 일, 서운하고 화났던 마음을 들어준다. 물론 기쁘고 행복했던 얘기도 나눈다. 최 소장은 “나쁜 감정을 다음 날까지 가져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 최현정 소장 / 김종연 기자
    ▲ 최현정 소장 / 김종연 기자

    ◇감정 조절은 나쁜 감정을 ‘안전하게’ 표출하는 법 배우는 것

    최 소장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폭력이 대물림된다’는 말의 뜻을 알게 됐다. 그렇게 자신을 다독였음에도 ‘욱’하고 화가 치밀 땐, 자기도 모르게 손찌검을 하려고 하거나 아버지에게 들었던 폭언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하는 상황을 가끔 경험해서다. 실제로 그렇게 행동한 적은 없지만,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면 가슴이 철렁했다. 최 소장은 “남편에게 혹시 내가 그런 모습을 보일 땐 ‘현정아’라고 이름을 한 번 불러서 멈추게 해달라고 부탁했다”며 “이 문제를 극복하고자 스스로 많이 노력했다”고 말했다.

    “저는 말을 하지 않는 연습도 했어요. 화가 날 때는 더 그랬죠. 아이에게 ‘엄마는 잠깐 방에 들어가 있을게. 다연이도 지금 한 행동에 대해 혼자서 생각하고 있어 봐’라고 말하고, 그 자리를 피했어요. 몇 분만 지나도 감정이 가라앉거든요. 그러면 주체 못할 화를 폭발시켜 아이에게 상처주는 일을 막을 수 있어요. 부부간이든, 부모·자식간이든 감정이 대립할 땐 신호를 보내고 잠깐 각자 시간을 보낸 뒤 다시 얘기하는 게 좋아요.”

    ‘나 전달법’으로 아이에게 엄마의 상황과 감정을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 ‘너(아이)’의 잘못을 지적하고 꾸짖는 게 아니라 ‘나(엄마)’를 주체로 해 상황과 느낌을 얘기하는 방식이다. ‘나 전달법’에는 상대의 행동에 대한 비난이나 비평이 담기지 않는다. “넌 왜 정리를 안 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네!”라고 말하는 대신, “엄마는 다연이가 물건을 정리하지 않아서 움직이는 게 불편해. 조금 정리하고 놀까?”라고 말하는 식이다.

    또 감정과 말, 행동을 일치시켜 설명하는 게 좋다. 많은 엄마가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 참고 말을 하지 않는다. 아이가 엄마 얼굴을 보고 “엄마, 화났어?”라고 물어도 “화 안 났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엄마의 표정과 말이 모순된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에 아이가 뜻을 이해할 수 없고, 결국 아이는 엄마 눈치를 보게 된다. 최 소장은 “그럴 땐 ‘엄마가 회사에서 어려운 일을 맡아서 마음이 조금 힘들어. 너 때문에 화난 게 아니야. 조금 기다려주면 괜찮을 거야’라는 식으로 아이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감정 조절은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안전하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거예요. 저뿐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 감정 조절하는 법을 연습하면서 가정 모습이 달라졌죠. 제가 ‘어제 잠을 설쳤더니 신경이 날카롭네. 자꾸 짜증이 나’라고 말하면 그날은 가족들이 제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해 줘요. 저도 말함으로써 제 상태를 다시금 깨닫고 주의하게 되고요. 남편도 화가 나는 상황에서는 크게 심호흡하고 천천히 감정을 얘기합니다. ‘얘들아, 이런 상황이 계속 되면 아빠가 화날 것 같아. 잠깐 멈춰줄래?’라고 하면, 아이들은 아빠의 감정 표현을 귀담아들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감정 다스리는 법을 배웠죠.”

    최 소장은 감정 조절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즉, 엄마가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엄마가 ‘나’를 잃어버릴수록 아이에게 집착하게 되고, 결국 육아가 더 힘들어진다”고 했다. “나한테만 생각과 관심을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꿈을 가졌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등을 생각해 보는 거예요. 그리고 가능하면 주위 엄마들과 ‘육아 공동체’를 만들고, 모여서 이런 내용으로 ‘꿈 수다’를 떨어 보세요. 엄마가 자존감을 가지고 행복해야 아이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키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