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듀 오피니언] 학교폭력 실태조사 실효성 높이려면…목적 명확히 해야
오푸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8.06.20 10:00
  • “학교폭력 실태조사로 실태 파악과 사안 해결,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둘 다 놓치는 어리석은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18일 열린 ‘학교폭력 실태조사 개편 관련 공청회’ 中)

    지난 5월 한달 간 올해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가 온라인을 통해 실시됐다. 이에 더 나아가 하반기에 실시되는 2차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는 표본조사가 최초로 도입될 예정이다. 표본조사는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원인과 과정, 결과에 나타나는 보호요인과 악화요인 등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마련됐다. 해가 갈수록 학교폭력의 양상이 다양해지고 심각해지면서 양적 관리에서 질적 관리로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앞서 지난 2012년부터 13차례에 걸쳐 학교폭력 실태를 연 2회 전수조사했지만, 2015년 이후 1차와 2차 조사결과의 차이가 거의 없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일례로 지난해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 1차 피해율 조사결과(0.9%)와 2차 피해율 조사결과(0.8%)의 차이가 0.1%p에 불과했다.

    하지만 표본조사를 새롭게 도입한다고 해서 학교폭력 실태조사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시행 목적이 불분명한 탓이다. 실태조사의 본 목적은 학교폭력의 실태와 인식을 조사해 향후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그 대응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실태조사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솔직한’ 응답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실태조사에 ‘진솔하게’ 응답하지 않으면서 실태조사 결과는 실제 현장과 차이가 크게 나타나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전직 교사는 “학교폭력 책임교사로 일할 당시 실태조사에서는 발생률이 0.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교내 실태조사에서는 집단 또래 괴롭힘이 발견되는 등 학교에서의 실제 발생과 조사 간의 차이가 나타나는 모습을 보였다”고 밝혔다.

    이처럼 학생들이 실태조사에 피해 경험이나 목격담 등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 학교폭력 피해를 겪은 이들을 만나보면 현재 시행되는 실태조사 체제에서 ‘솔직한’ 응답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호소한다. 학생들이 실태조사 응답에 대한 비밀 보장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태조사 결과가 학교별로 공개되면 학교폭력 담당교사들은 교육부의 매뉴얼에 따라 후속 처리 과정을 밟는다. 이 과정에서 비밀 보장이 지켜지기 어려운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실태조사에 피해ㆍ가해 사실이 나타나 담당교사들이 이를 조사해 학교폭력자치위원회를 열어 징계하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그 예다. 게다가 담당교사 역시 후속 처리와 관련해 서류 업무가 과도하게 늘어나면서 고충을 겪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남 목포의 한 현직 교사는 “실태조사로 벌집을 쑤셔놓고 교육부가 뒷짐만 지고 있으니, 학교 현장에서 모든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학생들이 진정성을 가지고 실태조사에 임할 수 있도록 하려면 자신이 응답한 내용이 담임교사 등 학교 관계자에게 알려지지 않는 등 비밀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신뢰가 먼저 확보돼야 한다. 이를 위해 실태조사의 목적을 보다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실태조사를 통해 학교폭력의 실태 및 발생 구조를 파악하고 이에 대해 적절한 예방책을 수립하는 것이 본 목적이라면 그에 충실해야 한다. 조사 시행과 함께 학생들에게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고 신고를 유도하는 등 사전예방교육을 진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태 파악과 예방책을 수립하는 단계를 넘어 실태조사를 통해 사안 해결까지 욕심낸다면 학교폭력은 되레 음지로 숨어들 가능성이 크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학교폭력 실태조사의 목적을 분명히 밝혀 정부 차원에서 효과적인 예방책을 수립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