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육 내실화 위한 평가 시스템 필요…“NEAT 재도입” 주장도 나와
오푸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8.06.01 15:42

-“영어 말하기·쓰기 평가도구나 방식 마련돼야”
-“평가방식보다 의사소통 기능 강화한 커리큘럼 도입 우선”

  •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 문제집. 2012년부터 시행된 NEAT는 연간 응시생이 5000여명에 불과해 시행 4년 만에 폐지됐다. / 조선일보 DB
    ▲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 문제집. 2012년부터 시행된 NEAT는 연간 응시생이 5000여명에 불과해 시행 4년 만에 폐지됐다. / 조선일보 DB
    최근 2015 개정교육과정 도입에 따라 문법과 독해 중심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영어 체제에서 벗어나 실질적 의사소통 위주의 영어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평가방식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은 지난 17일 열린 ‘학교 영어교육 내실화’를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 2월 영어 교수학습·평가 개선 방안을 포함한 ‘학교 영어교육 내실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자문단을 설치하고, 지난 2월과 4월 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현 수능 영어로 의사소통 실력 측정 불가능“말하기·쓰기 평가 시스템 부재”

    전문가들은 지금의 수능 체제로는 영어 의사소통능력을 제대로 측정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박준언 숭실대 영어영문학과 교수(한국외국어교육학회장)는 “현행 수능 영어의 평가 문항은 실질적으로 읽기와 듣기 같은 수용적 기능만 측정한다”며 “이마저도 EBS 교재 반영률이 70%에 달해 학생들의 영어 표현 능력 신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최인철 경북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수능 영어에서 듣기·독해·간접 쓰기 등 여러 기능이 평가되고 있지만, 결국은 문제 풀이 능력이 얼마나 특화돼 있는지를 평가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면서도 “수능 영어가 작년부터 절대평가로 전환되면서 이전보다 입시에 대한 부담이 줄어 이제야 의사소통 교육에 시간을 투자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읽기와 듣기에 치우쳐 측정되는 상황에서 말하기와 쓰기에 대한 평가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김인석 동덕여대 명예교수(국제언어교육연구원 이사장)는 “영어교육의 효율성은 평가를 통해 확인될 수 있다”며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 총 10년 동안 영어를 가르치는데, 그 결과를 측정하고 교육과정에 반영할 만한 국가적인 영어 평가 시스템이 없다. 현재의 수능 영어 체제로는 의사소통능력을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산술적인 평가가 가능한 시험 도구를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대다수 학교에서 의사소통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마땅한 도구나 방식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17일 국회토론회에 참여한 이해동 동국대사대부속여고 영어 교사는 “학교 현장에서는 여전히 의사소통 능력 신장과는 무관하게 듣기와 읽기 능력만을 강조하는 문제 풀이식 독해 수업이 주를 이루며, 수능에 대비한 수업과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며 “2014년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로 전환됐을지라도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학교 현장에서 영어교육이 달라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교사는 또 “학교에서 배우는 말하기·쓰기도 구체적인 성취 기준을 정하고, 성취 수준의 달성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평가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NEAT 일부분 재도입”, “의사소통능력 높일 커리큘럼이 우선” 등 의견도

    이러한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에서 도입했지만, 활용이 저조해 결국 폐지된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의 일부분을 재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NEAT는 2009년 예비평가를 거쳐 2012년부터 시행됐지만, 시행 4년 만인 2015년에 폐지됐다. 정부가 2008~2013년 성인용(1급)과 고교생용(2,3급) NEAT를 개발하고 시행하는 데 총 587억원을 들였지만, 매년 응시자가 5000여명에 불과해 사실상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받았다.

    박 교수는 “영어 의사소통능력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현재처럼 말하기·쓰기를 간접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을 지양해야 한다”며 “이를 직접 평가하는 방식인 NEAT 일부를 다시 활용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NEAT는 듣기·읽기·말하기·쓰기 등 4개 영역으로 구성됐다. 말하기에서는 ▲연계질문 답하기 ▲그림 묘사 ▲발표하기 ▲문제 해결하기 등 4가지 유형의 질문에 대한 답을 평가했다. 쓰기 평가는 ▲일상생활 글쓰기 ▲자기 의견 쓰기 등 두 가지 형태로 이뤄진다. 수능과 달리 컴퓨터로 시험을 치르며, 헤드셋과 키보드, 마우스를 모두 이용한다. 응시생의 응답이 중앙센터 서버에 저장되고 나면 채점자가 서버에 접속해 온라인으로 채점하는 식이다. 점수는 영역별로 학생들의 성취 수준에 따라 A·B·C·D의 4등급(절대평가)으로 나눠진다. 박 교수는 “최상의 방안은 NEAT의 원래 취지처럼 영어 평가를 수능 체제에서 분리해 독립적으로 실시하는 것”이라며 “이것이 시기상조라면 영어 읽기와 듣기 평가는 현재처럼 수능 체제를 유지하되, 말하기와 쓰기 평가만이라도 NEAT를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반면, 공교육에서 영어 의사소통 교육을 내실화하기 전에 새로운 평가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시선도 있다. 최 교수는 “NEAT가 실패한 주요 원인의 하나는 공교육에서 이를 가르치지 않고 시험부터 도입했기 때문”이라며 “교육부가 주도해 영어교육 시수 확대나 의사소통 기능을 강화한 커리큘럼을 도입하고 나서 평가가 이뤄져야 교육과 평가 측면에서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교육부가 지난 2월 전문가, 교원, 학부모 등으로 꾸린 ‘영어교육 내실화 추진 자문단’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함께 중장기 영어교육 방향을 설정하고 그 실행방안을 자문하겠다고 밝혔다. ‘학교 영어교육 내실화 방안’ 최종안은 이러한 자문과 공청회를 거쳐 올해 말 발표될 예정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자문단 회의는 현재까지 지난 2월과 4월, 두 차례 진행됐으나, 지금까지 논의된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어렵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