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이 정치한다…내 아이가 달라진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며
방종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8.05.28 16:18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 3인 인터뷰
-“실생활 체감하는 엄마, 정치 잘할 수 있어…집단모성 통해 현안 해결”

  • 아이 키우기 어려운 사회의 모순과 불합리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엄마들이 모여 만든 비영리단체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 3인(왼쪽부터 이고은ㆍ조성실ㆍ장하나)은 집단모성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 이신영 기자
    ▲ 아이 키우기 어려운 사회의 모순과 불합리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엄마들이 모여 만든 비영리단체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 3인(왼쪽부터 이고은ㆍ조성실ㆍ장하나)은 집단모성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 이신영 기자

    지난해 4월 22일 벚꽃처럼 화사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서울의 한 건물 로비에 엄마 수십명이 모였다. 장하나 전 국회의원이 한 언론사에 기고한 ‘정치에 여성들이 나서야만 독박육아가 끝나고, 평등하고 행복한 가족공동체를 법으로 보장받을 수 있다’는 칼럼에 마음이 동한 엄마들이었다.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어렵게 참석한 경우부터, 이제 백일을 갓 지난 갓난아기를 안고 나온 엄마까지…. 이들은 이날 우리나라에서 엄마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토론과 비판, 고발을 몇 시간에 걸쳐 이어갔다. 그리고 다음 세대만큼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공감대를 통해 정치에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비영리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현재 정치하는엄마들은 정회원 약200명, 온라인 커뮤니티 가입자 2000여명에 달한 만큼 엄마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들은 정치를 통해 ▲모든 엄마가 차별받지 않는 성평등 ▲모든 아이가 사람답게 사는 복지사회 ▲모든 생명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비폭력 사회 ▲미래 세대의 환경권을 옹호하는 생태사회를 꿈꾼다.

    ◇해답은 ‘정치’에 있다.

    ‘정치’와 ‘엄마’의 조합. 아직 우리에게는 낯설다. 하지만 정치하는엄마들의 장하나(41), 이고은(37), 조성실(32) 공동대표는 엄마야말로 정치를 가장 잘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강조한다. 생활의 최전선에 서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조성실 대표의 얘기다.

    “엄마야말로 정치에 가장 적합한 주체예요. 정치는 일상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을 오롯이 체감하는 엄마들이야말로 정치의 필요와 개선의 방법을 가장 잘 안다고 할 수 있죠. 기득권 주류 세력의 ‘엘리트 정치’가 아니라 생활인이자 돌봄의 주체로서의 당사자 정치가 희소성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

    이 대표는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지금은 마을은커녕 모두가 각자 살길을 찾는 시대가 아닌가”라고 지적하며 “정부와 국회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헛헛한 공약만이 난무했을 뿐, 부모 당사자들은 정치의 효과를 체감하지 못한다. 아이 키우는 양육 당사자를 대변할 국회의원이 없다면 당사자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들은 엄마가 되니 정치에 더욱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아이를 키워보면 육아에는 모든 이슈가 겹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노동, 보육, 교육, 주거 등 어느 것 하나 관련되지 않은 게 없어요. 부모가 제때 퇴근하지 못하는 까닭에 아이들은 유아기 때부터 학원을 전전합니다. 학원은 교육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이 긴 우리나라 부모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보육 대안인 거죠. 그리고 여기에서부터 출발한 사교육은 학령기가 끝날 때까지 이어집니다. 노동시간이 길고 저녁 없는 삶을 사는 부모들은 자식들이 헬조선의 울타리를 조금이라도 뛰어넘길 바라며 교육에 헌신하는 것이죠. 그 때문에 사교육에 몰입하는 가정을 그들만의 문제, 엄마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문제점을 메신저 프로그램인 텔레그램에서 자유롭게 논의하고 토론했다. 일과 육아를 마친 밤 열시, 정치하는엄마들의 토론방은 그 어떤 번화가보다도 환한 불을 켠 채 서로 맞이했다. 이를 통해 서로 힘을 얻을 수 있었다는 장 대표는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이 아닌 엄마라는 공통점으로 모였기에 지향점이 비슷했다”며 “이 모든 어려움과 위기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위안을 느꼈다”고 전했다.

    난상토론이 깊어지던 중 한 회원이 ‘모두가 엄마다’라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아이를 돌보고 보살피고 기르는 행위를 꼭 엄마에게만 전가해서는 안될 일이며 그런 식의 모성신화가 오늘날 엄마들을 옭아매는 굴레가 된다는 의미에서다. 이는 한부모가정이나 조부모가정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수용하고, 사회 구조적 문제로 독박육아에 시달리는 여성들을 해방시키겠다는 의미도 지닌다. 또한 아이 키우는 일이 사적영역에서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 모든 구성원과 제도 그리고 구조의 책임임을 역설하는 뜻도 있다. 의견은 회원들 사이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고, ‘집단모성’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졌다.

    “집단지성이 현대정보사회에서 강력한 힘을 갖는 것처럼, 집단모성은 개인화되고 배타적인 현대자본주의 사회를 구원하는 미래의 철학이 될 것이라고 믿어요. 울고 웃는 아이들을 내 아이 네 아이 할 것 없이 서로 함께 돌보는 순간, 아이키우기 좋은 사회 구조로 변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신뢰가 회복될 것입니다. 즉, 생물학적 여성과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뛰어넘는 모성인 거죠. 내 아이를 잘 돌보고 나만 잘사는 것에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키운다는 개념으로 관점을 이동할 때 지금의 현안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정치하는엄마들은 최근 단체의 탄생과정과 여러 사회 현안에 대한 의견 등을 모아 ‘정치하는 엄마가 이긴다’는 신간을 펴냈다. / 이신영 기자
    ▲ 정치하는엄마들은 최근 단체의 탄생과정과 여러 사회 현안에 대한 의견 등을 모아 ‘정치하는 엄마가 이긴다’는 신간을 펴냈다. / 이신영 기자

    ◇모두가 엄마다! 집단모성을 외치다

    정치하는엄마들의 존재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창립 몇 달 만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보건복지부, 서울시 등 각종 정부부처와 지자체로부터 부모 당사자로서의 의견을 듣고 싶다는 요청을 받았다. 실제로 지난해 6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칼퇴근법 및 보육 추경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여는가 하면, 지난달에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현안에 대해 간담회도 가졌다. 최근에는 여러 사회문제에 대한 의견 등을 모아 ‘정치하는 엄마가 이긴다’(생각의 힘)는 신간도 펴냈다.

    하지만 활동을 활발히 하자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고, 맞서 싸울 대상도 늘었다. 가장 큰 적은 ‘엄마들이 뭘 알겠어’라는 사회의 편견이었다. 정치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걸었다는 이유로 어느 기성정치 세력의 하위조직이 아니냐는 오해도 받았다. 일명 ‘맘충’에 대한 혐오정서에서 나온 ‘애나 보지 왜 나왔느냐’는 악성댓글도 따라다녔다.

    그럴수록 내부는 더욱 공고해졌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에는 더는 자신이 겪는 아픔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이유에서다. 회원들 각자 가진 재능을 충분히 발휘해 자발적으로 창립총회 준비 등이 빠르게 이뤄졌다.  

    이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정치하는엄마들이 더 늘어나 이런 움직임이 확산하는 것이다. “정치하는 엄마들이 점점 더 늘어나 마을 곳곳에서 엄마들의 자치 모임이 생겨나고, 엄마들이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로 학교 운영위원회에 참여하고, 지자체의 보육정책의 심의위원이 되고, 지방자치 의회와 국회에 진입한다면 어떨까요. 정치하는엄마들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연대할 수 있는 시민조직과 정치인이 더더욱 많아지면 좋겠네요.”

    조 대표는 “현재는 엄마가 되면서 겪는 부조리와 차별에 대해서 외치지만, 장기적으로 육아에서 느낄 수 있는 경이로움과 환희에 대해서도 편안하게 같이 얘기할 수 있는 사회를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며 “육아는 분명히 힘들지만 그렇다고 힘들기만 한 건 아니며, 육아만이 줄 수 있는 육아 본연의 가치가 있다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힘든 현실에 놓여 있는 이 땅의 엄마들에게 이 대표는 “지금 겪는 문제는 당신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당신만 움직인다면 우리들의 아이는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