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직업은 내가 만든다… 미래 직업 대안으로 꼽히는 ‘창직’
오푸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8.05.18 14:14

- 창직, 현실성·지속성·미래지향성 등 고려해야
- 창직 활성화하려면 인식 제고 및 생태계 조성 필요

  • '농업디자인플래너'를 창직한 조현준 농부릿지 대표가 농업인들을 대상으로 농산물 포장 디자인 강연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농부릿지 제공
    ▲ '농업디자인플래너'를 창직한 조현준 농부릿지 대표가 농업인들을 대상으로 농산물 포장 디자인 강연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농부릿지 제공

    드론촬영조종사, 데이터거래중개인, O2O서비스기획자, 영적돌봄전문가, 사회공헌기획가, 치매코디네이터, 로봇윤리학자…. 지난 1월 한국고용정보원의 ‘2017 신(新) 직업 연구’ 보고서에 소개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직업 목록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고 사회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평생직장’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지금 내가 가진 직업이 언제까지 유효할지, 오늘 인기 있는 직업이 10년 뒤에도 유망할지 알 수 없는 시대가 됐다.

    국회에서 고용 분야 관련 입법과 정책 현안을 조사·분석해 온 손을춘 국회 법제실 재정법제과장은 저서 ‘4차 산업혁명은 일자리를 어떻게 바꾸는가’에서 그 무엇과도 대체될 수 없는 ‘내 일’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덧붙여 ‘미래의 유망 직업은 현존하지 않는 직업’이라고도 강조했다. 즉, 미래 유망 직업은 앞으로 누군가 만들어낼 직업이란 의미다. 미래 직업의 대안으로 ‘창직(創職)’이 꼽히는 이유다.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맞는 창직이 가장 중요

    ‘창직’이란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기존에 없던 직업·직종을 새롭게 만들어 내거나 기존 직업을 재설계하는 활동을 말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창업(創業)에 이어 ‘창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2011년부터 ‘창조캠퍼스 지원 사업’의 하나로 창직 과정을 운영했으며, 현재는 대학 재학생과 졸업 예정자를 대상으로 하는 청년취업아카데미에서 창직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14년에는 제주시가 지자체로는 처음으로 창직 아카데미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같은 정부와 지자체의 장려 사업 외에도 중·고등학교와 대학 등 교육 현장에서도 창직 교육이 활성화하는 추세다.

    임한규 창직교육센터 대표는 “새로운 직업을 만드는 창직도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며 “창직을 통해 만들어진 직업은 경제성·지속성·현실성 등을 갖춰야 하고, 이후 해당 직업이 널리 퍼져 고용 창출 효과를 낼 수 있는 가능성도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창직 교육을 할 때도 이 같은 점을 강조한다.

    “청소년과 함께하는 창직 수업에서는 ‘창직 여행 보드게임’ 등을 활용해 먼저 새로운 직업의 세계를 알려줍니다. 이후 학생 개개인의 적성과 흥미를 찾기 위한 ‘나의 강점 찾기’, 5~10년 후에 필요한 직업을 예측하고 준비하기 위한 ‘미래 교육’ 등을 실시해요. 여러 직업을 발견하고 세분화하거나 융합하는 커리큘럼도 진행하고요.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직업을 선택하는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 직업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습니다.”

    자유학기제가 확대되면서 중학교에서 창직 과정을 운영하기도 한다. 정은상 맥아더스쿨 교장은 매주 화요일 서울 장충중학교 1학년 학생 18명을 대상으로 주니어 창직과정을 지도하고 있다. “지난 수업에서는 4명씩 조를 이뤄 함께 앉은 친구들이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세 개씩 쓰게 했습니다. 그런 다음 친구들이 자신에 대해 쓴 내용을 정리해 보고, 자신이 잘하고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쓰게 했죠. 그리고 이를 구체화하면서 자신의 장점과 흥미를 찾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정 교장은 창직에 필요한 역량으로 네 가지를 꼽았다. “우선 환경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둘째로는 자신이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를 파악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계획과 그 실행 과정을 평가하는 ‘메타인지’ 능력을 지녀야 합니다. 셋째는 미래지향적이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분야별 멘토를 곁에 둘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역량을 잘 발휘해 창직에 성공한다면 남이 나를 좌지우지 할 수 없는 직업을 갖게 되는 겁니다.”

  • 임한규 창직교육센터 대표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창직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 창직교육센터 제공
    ▲ 임한규 창직교육센터 대표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창직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 창직교육센터 제공

    ◇“창직으로 자기주도적 삶 살게 돼 만족”

    창직에 대한 관심과 교육이 늘어나는 만큼 직접 창직에 뛰어드는 사람도 많아졌다. 이들은 자신의 관심사와 전공 분야를 바탕으로 남이 가지 않은 ‘나만의 길’을 찾아 개척하고 있다.

    ‘암환우뷰티관리사’로 활동하는 유지영(24) 유어웰컴메디뷰티 대표는 자신의 가족과 같은 사람들을 돕고 싶어 창직을 꿈꿨다. 가족을 비롯한 주변인의 암 투병을 가까이서 지켜본 그는 자신의 경험과 대학에서 전공한 미용을 결합해 창직을 하기로 결심했다. 항암 치료로 외모 변화를 겪는 암 환자들이 미용에 관심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 새로운 직업을 구체화한 것이다. ‘암환우뷰티관리사’란 직업을 만든 유 대표는 2016년 고용노동부 청년취업아카데미 창직어워드에서 장관상을 수상했고, 올해 사업자 등록까지 마쳤다. 그는 “창직·창업을 하고 나서도 자금 부족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사회적기업진흥원의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 등에 지원해 이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했다. 최근에는 병원과 협업해 암 환자를 대상으로 외모관리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대기업과 협력하는 식으로 수익 구조를 안정화하고 있다.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의학적 지식이 필요할 때도 있어요. 그럴 때는 국내 암센터에 재직하는 의사들에게 직접 자문을 구하며 더 나은 서비스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애초 취업을 목표로 하지 않았던 저로서는 고객과 직접 소통하며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는 일 자체가 무척 재미있어요. 무엇보다도 적성에 잘 맞아 일하면서 즐거움과 보람을 느낍니다.”

    ‘농업디자인플래너’인 조현준(32) 농부릿지 대표는 농업인을 대상으로 상품 포장재, 디자인 등을 판매하는 온라인 마켓 ‘디팜(Defam)’을 운영하고 있다. 디팜에서는 상품 혹은 브랜드 디자인이 필요한 농업인과 청년 디자이너를 연결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브랜드 컨설팅을 비롯해 포장·브랜드 디자인 관련 강연을 일 년에 100회 이상 진행한다. 조 대표는 동국대 국제통상학과에 재학하던 중 지도교수로부터 수출 현황 및 전망 등이 담긴 농업 관련 보고서를 건네 받고 창직을 결심했다. 대학 입학 전 두 번의 직장 생활 경험이 있는 그는 “일을 주도적으로 하고 싶다고 늘 생각했던 것이 창직으로 이어졌다”며 “창직형 창업으로 (남이 아닌) 내가 주도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이 가장 만족스럽다”고 했다. 자신이 만들어낸 직업인 만큼 일하는 과정에서 상황에 따라 직무에 변화를 주고 있다. “사업 초기 청년 디자이너와 농업인을 직접 매칭했더니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는 경우가 50%에 그쳤어요. 서로 상황이나 입장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졌기 때문이죠. 이후 디자이너의 샘플 파일을 먼저 오픈 마켓에 올리고, 농가에서 원하는 디자인을 고르게 하는 식으로 사업 방향을 전환했더니 손실이 훨씬 줄었습니다. 지금은 디자이너들이 샘플을 바탕으로 개별 농가에 맞게 상품을 제작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어요. 농업인과 디자이너, 소비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도록 사업의 현실성과 지속성을 끊임없이 보완하고 있습니다.”

    이정원 한국창직협회장은 우리나라에서 창직이 활성화하려면 ‘창직에 대한 인식 확산’과 ‘창직 생태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창직 생태계란 시장·정책·문화·인적자본 등 각 구성요소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창직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의 경우 창업은 어느 정도 생태계가 마련된 반면, ‘창직 생태계’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해요. 새로운 직업을 만드는 좁은 의미의 창직부터 기존 직무의 변형을 시도하는 넓은 의미의 창직까지 자유자재로 이뤄질 수 있도록, 창직 생태계가 더욱 촘촘해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