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안 치러도 ‘학점당학위’ 준다는 교육부, ‘이화여대 평단 사업’ 데자뷔?
손현경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8.05.18 05:58

- 교육부·국평원 학점당학위제 활성화 연구 이달 착수

  • 정부가 대입을 안 치러도 학점당학위를 주는 제도(학점당학위제·마이크로디그리)를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성인 및 재직자 재교육 수요가 늘어난 상황에 맞춰 추진 중인 ‘선취업 후진학’ 활성화 방안의 일부다. 학점당학위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과목을 골라 융합형 학습을 하면 전공 학위로 인정받는 제도로,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올해 주요 사업이다.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은 17일 ‘제4차 평생교육진흥 기본계획(2018~2022)’의 일부인 학점당학위제 정책연구를 이달 발주한다고 했다. 학점당학위제가 도입되면 각 대학은 4차 산업혁명 및 뿌리산업과 관련된 과목의 학점당학위를 인정할 수 있게 학칙을 바꿀 수 있다. 학점당학위제는 내년도에 시범도입된 후 전면 도입년도를 결정할 방침이다.

    ◇'시간제등록제' 패키지해 ‘학점당학위’ 딸 수 있게 정책 연구 추진

    이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시간제등록제에서 아이디어가 나왔다. 시간제등록제란 일반인이 대학에 개설된 교과목을 수강해 성적을 취득하면 학점은행제를 통해 학점을 인정받는 제도다. 직장인, 전업주부 등 시간적 여유가 없는 성인학습자들도 이를 활용해 대학 학점을 취득할 수 있도록 1996년에 도입됐다.

    교육부 평생학습정책과 관계자는 “시간제등록제는 정규 학위는 아니다”라며 “여기서 나아가 시간제등록제를 패키지해 학점을 쌓아 학위를 받을 수 있게 하도록 정책 연구를 할 예정이다. 즉, 학점당학위제는 시간제등록제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고안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시간제등록제를 활성화한다는 것에 난색을 보이는 상황이다. 교육부는 이 제도를 대학들이 재정확충 수단으로 악용하는 등 부실 운영을 막기 위해 지난 2012년부터 시간제등록생 규모를 신입생 입학 정원의 10% 이내로 제한하기로 한 바 있다. 그런데 이를 다시 활성화하려는 차원에서 논의된다는 점에 대해 ‘학위장사’등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주형 경인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시간제등록생 또는 마이크로디그리 같이 시간을 자유자제로 하는 고등교육 수업은 미국에서는 활성화됐지만, 우리나라의 교육상황이 미국과 비슷한지는 따져봐야 한다. 무작정 미국의 모델을 본떠서는 안 된다”면서 “과거 부적절한 사례를 감안해 해당 학생모집과정부터 교육과정 운영, 교원 수급 등 우리나라에 맞는 제도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성창 국민대 교육학과 교수 역시 “과거 일부 지방 부실 대학들이 시간제등록생의 인원 제한이 없는 점을 악용해 무분별하게 학생을 모집해 돈을 번 점도 감안한 정책 연구 활동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화여대 평단 사업도 ‘선취업후진학’ 하려다 철회됐는데…

    우리나라 대학 수요자 현실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대학 진학률이 높은 상황에서 대학들이 학위를 남발하는 것 같다”면서 “’선취업 후진학’ 활성화 방안으로 성인학습자의 친화적 학사제도를 대학이 마련할 수 있도록 선보인 ‘2018년 대학 평생교육체제 지원사업(평교 사업)’ 역시 지난해 수시와 정시모집에서 상당수가 정원을 채우지 못한 것을 되새겨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교육부와 국평원이 주관하는 평교 사업 역시 성인학습자의 고등교육 참여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마련됐다.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 평생학습 중심대학 지원사업이 통합되면서 지난해 첫선을 보였다. 평교 사업 출발은 사실상 '이화여대 사태(이대 평단 사업)’가 계기가 됐다. 2016년 평단 사업에 이화여대가 선정되자, 학생들은 학교 측이 의견수렴 없이 사업을 추진했다며 반발했고 결국 이대는 전면 철회를 선택했다.

    이로 인해 평단 사업에는 이대를 제외한 9개교만 참여했는데 2017학년도 수시모집에서 평균 0.76대 1, 정시에서는 평균 0.48대 1을 기록하며 상당수가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전국 15개 대학이 평체 사업에 참여한 가운데 진행된 2018학년도 정시모집에서 대부분 학교는 미달 또는 간신히 1대 1을 기록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사업 참여 대학의 학과 중에는 아예 지원자가 없는 곳이 등장하는 등 전년도 입시에 이어 상당수 학교는 추가모집을 진행해야만 했다. 이대 후유증이 여전하다는 지적이 오르내리는 상황에서 평교 사업의 올해 예산은 108억원으로, 지난해보다 절반 이하로 줄었다.



  • 제4차 평생교육진흥 기본계획(안)/ 교육부 제공
    ▲ 제4차 평생교육진흥 기본계획(안)/ 교육부 제공
    충분한 감시·감독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마이크로디그리(학점당학위제)는 단일 학교는 물론 연합 학교를 통해 학문 간 융합 폭을 넓힐 수 있는 장점은 물론 평생교육차원에서 시간제등록생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는 있다”면서 “이를 위해 과거의 부정이 이뤄지지 않을 감시시스템이 제대로 개발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재철 한국교총 대변인 역시 “직업과 연계해 자신이 하고 싶은, 또는 필요한 공부를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오히려 전공 하나를 보다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수 있을 것”이라며 “과목만 골라 배우는 것은 실질적이고 깊이있는 공부보다는 오히려 학위 취득만 유도 내지는 부추길 수 있다. ‘선취업 후진학’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정책 연구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고 덧붙였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교육부 평생학습정책과 관계자는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시간제등록생은 10% 보다 부족한 상황이다. 이를 늘리면서까지 대학이 학점장사를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성인과 재교육을 원하는 재직자들을 위한 평생교육정책으로 연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편,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은 지난 2월 '제4차 평생교육진흥 기본계획(2018~2022)'을 확정·발표했다. '제4차 평생교육진흥 기본계획'은 대학의 평생교육 기능 강화를 비롯해 ▲전 국민 평생학습권 보장 ▲소외계층 대상 평생학습사다리 마련 ▲온라인 평생교육 생태계 구축 ▲산업맞춤형 평생교육 확대 ▲지역단위 풀뿌리 평생학습역량 강화 ▲평생학습 기반 지역사회 미래가치 창출 지원 ▲평생교육 법령 정비·제도 개선 ▲평생교육 투자 확대·체계적 관리 등을 목적으로 추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