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 입시

경험하고 느끼면 스스로 성장하는 학생들…“생각할 여유 주세요”

최예지 조선에듀 인턴기자

2018.05.1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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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라톤·도보여행 등 활동 중심 인성교육 펼치는 박찬수 교사의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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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활동 중심 인성교육을 하는 박찬수(정가운데) 안양 성문고 교사가 학생들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 조현호 객원기자

“꿈이 뭐야?”

아버지의 먼 친척인 한 아주머니가 어느 날 이런 질문을 했다. 소년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이었다. 그저 살기 바빠 꿈이란 걸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엉겁결에 “교사가 되려고요”라고 답했다. 고등학교도 졸업 못한 그가 교사가 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도 아주머니는 만날 때마다 꿈이 뭐냐고 물었다. 아주머니의 계속된 물음에 소년은 교사가 돼야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소년은 검정고시를 치르고 만학도로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졸업해 학원 강사가 됐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2002년 45세 늦은 나이에 ‘선생님’이란 꿈도 이뤘다. 자신을 새로운 길로 이끈 아주머니처럼 그도 늘 아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묻는다. 다양한 활동으로 인성 교육에 힘쓰는 박찬수(61) 안양 성문고 교사의 이야기다.

◇“아이들에게 관심 가져주는 사람이 바로 스승”

박 교사는 주변에 ‘스승’이 많았다고 했다. “스승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어요. 그곳이 학교든, 학원이든, 공사장이든 말입니다. 어려웠던 시절에 관심 가져주고 기대해줬던 이들이 모두 제 스승이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만난 스승들을 떠올렸다. “광산에서 일할 적에 만난 춘복형은 제가 여기(광산)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고 계속 얘기해 줬어요. 제 안에 있는 뭔가를 본 모양입니다. ‘내가 돈을 벌 테니, 너는 선생이 돼라’며 매달 20만원을 지원해주며 제 가능성을 믿어준 분도 있었죠. 이렇게 많은 스승 덕분에 제가 교사의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스승들을 닮아 박 교사의 인성교육법은 한마디로 ‘관심주기’다. 서른 명에 가까운 학생들에게 하나하나 관심을 주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새 학기가 시작하면 그는 모든 아이의 집을 일일이 찾는다. 가정방문만큼 아이의 속사정을 잘 알 방법이 없어서다. 늘 밝은 표정이던 학생이 실은 홀아버지 밑에서 동생을 챙겨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졌다는 것을, 유난히 말수가 적은 한 아이는 사실 부모의 기대가 부담스러워 마음의 문을 닫아서 그렇다는 점을 알게 된다. 스쿠터를 타고 가정방문을 다니느라 봄마다 감기를 달고 살지만, 아이들을 더 알고 싶다는 마음에 한 해도 가정 방문을 거르지 않는다.

그는 교권은 관심 속에서 생긴다고 여긴다. “교사라면 학생의 표정으로 아이가 처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해요. 어제 종례할 때 보니 한 남자아이가 인상을 찡그리고 있더군요.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니 반 친구랑 다퉜다고 합니다. 아무 일 없다며 교사의 질문을 무시할 수도 있는데, 관심을 꾸준히 가지면 아이들이 이렇게 교사를 신뢰하고 속사정을 터놔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권위도 생깁니다. 교권은 선생이 만드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박 교사는 학교 밖 청소년에게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 아이들은 주변에서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아요. 엇나가기가 쉽죠. 학교 밖 청소년 단체 ‘어게인’에서 만난 아이들은 ‘그랬구나’ 한마디를 가장 듣고 싶어 하더라고요. 관심으로 공감해 주는 걸 원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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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성교육 경험을 담아 ‘어른이 되기 전 꼭 배워야 할 인성 수업’이라는 책을 펴낸 박찬수 교사는 “입시 중심 교육 탓에 아이들에게 뭔가를 생각하고 느낄 시간을 주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 조현호 객원기자

◇“생각하고 느낄 기회를 주면, 아이들은 스스로 자란다”

박 교사는 맡은 학급에서 특이한 행사를 많이 한다. 마라톤도 그중 하나다. 시작은 한 학생 때문이었다. 그 학생은 팔목에 자해 상처가 있었다. 밤에 잠을 못 자는 병도 있었고, 무단결석도 잦았다. 박 교사는 아이가 3학년 때 담임을 맡았다. 상담할 때 눈을 마주치질 못하고 교실 앞뒤로 왔다 갔다 하는 아이 모습을 보니, 그도 조금은 겁이 났다. 그래도 아이를 돕고 싶었다. ‘하루 한 시간씩 선생님과 운동하면 의무 자습을 빼주겠다’고 아이와 협상했다. 몇 명의 반 아이를 더 모아 매일 함께 운동장을 뛰었다. 학생들과 10km, 하프 마라톤까지 도전했다. 운동한 뒤로 아이는 밤에 잠을 잘 자게 됐고, 그해 개근상을 탈 정도로 학교생활도 원만해졌다. 그 후로 “올해는 마라톤 안 하느냐”고 묻는 아이들 때문에 박 교사는 마라톤을 연례행사로 하고 있다.

학생들은 마라톤을 하며 스스로 해내는 법을 배웠다. 지난 토요일에도 아이들과 마라톤에 참여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반 아이 대다수가 참여할 정도로 반응이 좋다.

“남자아이들은 20km, 여자아이들은 10km를 뛰어요. 고생스럽지만 아이들이 느끼고 배우는 건 많습니다. 제가 뭘 느끼라고 강요하는 건 아니에요. 그저 뒤처진 아이를 데리고 함께 뛰어주다가, 반환점에서부터는 알아서 가라고 합니다. 아이들의 인생도 마찬가지잖아요. 지금은 교사인 제가 도와주지만 언젠가는 스스로 헤쳐나가야 하죠. 지금부터 마라톤으로 혼자 해내는 연습을 해보는 거예요.”

박 교사는 아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법도 체득하도록 지도한다. 학생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꼽은 행사는 서빙고에서 안양까지 밤새 33km를 걸은 도보여행이다. 10시간을 계속 걸으면 발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힘들지만, 아이들은 걸으며 친구를 돕는 법을 배운다. 그는 “챙겨온 물이 떨어질 때쯤엔 ‘난 안 마실래, 너 마셔’라며 아이들이 작은 양의 물이지만 서로 양보하고 나눠 마신다”며 “그렇게 더불어 크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다”고 했다.

이 외에도 벚꽃 감상, 세월호 기억교실 방문, 지리산 등산, 영화관 나들이 등의 행사로 일 년이 바쁘다. 박 교사가 행사를 많이 기획하는 건 아이들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아이들은 모두 ‘생각할 수 있는 존재’예요. 생각할 기회만 주면 아이들은 삶의 가치관을 갖게 돼요. 저는 오히려 어른들이 아이들의 사고력과 잠재력을 짓누른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는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필요한데 입시 중심 교육에서는 시간과 여유를 주기 어렵다는 게 참 안타까워요.”

박 교사의 인성교육법이 학생과 부모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자, 주변의 다른 선생님들도 행사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그는 “(선생님들이 아이들 스스로 자랄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라면서도 “좀 더 학생 중심으로 행사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저는 행사의 시기를 정할 때도 아이들의 상황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요. 시험이 끝나고 지쳤을 때 기분을 환기해줄 활동을 여는 식이죠. 학교에서 진행되는 모든 일들이 교사의 편의보다, 학생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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