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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스승의 날 폐지" 교사들이 분노한 이유는?

한동희 기자

2018.05.14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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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나서서 “스승의 날 폐지해달라”
“촌지 1000원도 허용 못 해” 권익위원장 발언에...
교사들 “꽃 받으려고 교육하는 것 아니다” 분노
서울 지역 8개 학교가 스승의 날 휴교

“스승의 날을 폐지해 주십시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자신을 고등학교 교사라고 밝힌 네티즌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이런 제목의 글을 올렸다. 교직생활 17년차라는 그는 “스승의 날은 교사에게 참으로 힘든 날”이라며 “1년에 단 하루,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내미는 꽃 한 송이, 편지 한 통을 받아도 죄가 되는 세상이라니 참으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교사·학부모·학생 모두에게 불편하고 부담스럽게 된 스승의 날이 차라리 없으면 속 편하겠다는 것.

이 뿐만이 아니다. 최근 한 달 간 국민청원 게시판에 스승의 날 폐지를 요구하는 글이 11건이나 올라왔다. 대부분 2016년 시행된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으로 인해 스승의 날만 돌아오면 사제(師弟) 관계가 어색해지니 차라리 없애 달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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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달 19일 학생대표가 아닌 일반 학생의 카네이션 선물이 청탁금지법에 위배된다고 밝혔다./조선일보DB
◇ “학생대표만 꽃 줘라” 국민권익위원장 한마디에 교사들 분노
‘스승의 날 폐지 운동’의 촉발점은 지난달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의 발언이다. 박 위원장은 ‘스승의 날 카네이션 논란’에 대해 “(학생 대표가 아닌) 학생 개개인의 카네이션 선물은 한 송이라도 원칙적으로 청탁금지법에 위배된다”며 “촌지(寸志)가 적으면 촌지가 아니고, 많으면 촌지인가. 촌지는 단돈 1000원도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 관계자는 “권익위가 꽃 한 송이를 촌지로 규정하고 제한한 것은 교직의 성격을 무시한 몰지각하고 몰이해한 짓”이라며 “스승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기 위한 상징적인 꽃 한 송이에 기계적인 원칙을 들이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선 교육현장에서도 “‘스승’을 촌지에 환장한 잠재적 범죄자로 묘사했다”는 분노의 목소리가 나온다. 스승의 날 폐지를 촉구 글을 올린 한 현직교사는 “김영란법 이후 스승의 날만 되면 마치 교사가 잠재적 범죄자처럼 조명되는데 차라리 그 하루가 고통스럽지 않게 스승의 날을 폐지했으면 좋겠다”고 썼다. 또 다른 교사도 국민청원 게시판에 “교사 가운데 누가 그 꽃을 받고 싶다고 했나. 왜 교사의 자존감을 이렇게 짓밟는가”라고 적었다.

카네이션 논란이 커지자, 스승의 날에 아예 휴교하는 학교도 등장했다. 실제 올해 스승의 날 서울에서만 초등학교 3곳, 중학교 2곳, 고등학교 3곳 등 총 8개 학교가 쉰다. 휴교하지 않는 학교 대부분도 “선물이나 카네이션을 받지 않겠다”는 가정통신문을 미리 전달했다. 불필요한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다. 서울 영등포구 중학교 최모(42)교사는 “(박 위원장의 발언은) 교사를 촌지나 바라는 사람으로 묘사했다”며 “저를 포함해서 많은 교사들은 ‘촌지’를 바라고 교육하는 사람들이 아니다”고 말했다.

단지 카네이션 때문만은 아니다. 교권(敎權)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상황에서 ‘스승의 날’이 무슨 소용이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 용산구의 한 초등학교 권모(58)교사는 스승의 날을 앞두고 학생들에게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는“교권이 추락한 마당에 교사를 ‘스승’이라고 생각해주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며 “형식적으로 하루 정도 ‘스승’으로 불리는 것이 오히려 더 자존심 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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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을 폐지하자는 교사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조선일보DB
서울교사노동조합 등 6개 교원노조로 구성된 교사노동조합연맹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최근 교사들이 폐지 서명운동을 벌일 정도로, 스승의 날은 교사들에게 마음이 불편하고 괴로운 날이 됐다”며 “학부모나 제자가 부담을 져야 하는 스승의 날보다 정부가 교사의 전문성과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제정하는 ‘교사의 날’이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 교권침해 방어 수단 없어…”스승 아닌 교사로 살고 싶다”
실제 일선 교육현장에서 교사들의 ‘권위’는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한국교총에 따르면 지난해 교권 침해 상담 건수는 508건으로 10년 전인 2007년(204건)과 비교해 2.5배 증가했다. 교총에 접수된 교권 침해 건수는 해마다 느는 추세다. 2010년대 초반까지 200건대였던 상담 건수는 2012년 300건을 넘어섰고, 2016년엔 572건을 기록했다.

2016년 중학교 여교사 A씨는 교실에서 신체를 밀착하는 성추행을 여러 차례 저지른 학생의 뺨을 때리면서 훈계한 일이 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학부모는 “교사가 뺨을 때린 행위는 중대한 학생 인권침해이자 아동학대”라며 변호사를 선임해 A씨를 형사 고소했다.

학부모 측은 “우리 아들은 (아직 어려서) 처벌돼도 전과에 남지 않지만, 교사는 아동학대법에 걸리면 교직을 떠나야 한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교내방송으로 공개사과하고 다른 학교로 떠날 것을 요구했다. A씨는 결국 선고유예 판결로 옷을 벗지는 않았지만 죄인처럼 다른 학교로 옮겨야 했다.

한 현직 교사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교육 현장에서 교사들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며 “스스로의 방어권조차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면서 하루를 간신히 버텨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지나치게 ‘학생인권’만을 강조하는 풍토에도 불만이 터져나온다. 학생인권이라는 명분 아래 교권침해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 지역 고교 한 생활지도부장은 “학생인권 개념을 잘못 이해한 일부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잠 잘 권리, 밥 먹을 권리’를 외치면서 대들어도 교사가 제지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교사생활 28년인 초등학교 교사 김모씨가 한숨을 쉬었다. “예전에는 삶의 가르침을 준다는 점에서 교사가 ‘스승’이 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죠. 이제는 교사가 학생을 위해 봉사하는 ‘서비스직’쯤으로 대하는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스승’은 내려 놓을 테니, 전문서비스직으로서의 ‘교사’만이라도 인정해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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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14일 올라온 ‘스승의 날 폐지 요구’ 청원.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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