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밖의 일 해내는 ‘게임체인저’ 키워야”
신혜민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8.05.10 11:00

[이공계 교육의 미래를 말하다] ⑥차국헌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장

  •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열리면서 전 세계 교육계에선 ‘앞으로 어떤 인재를 길러내야 하느냐’를 두고 활발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대비할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새로운 역량을 길러줘야 한다는 인식이 국제사회 전반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떨까. 이공계 인재 육성을 위해 대학은 앞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조선에듀 연재 ‘이공계 교육의 미래를 말하다’는 앞으로 국내 이공계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들어보는 기획 시리즈다. 마지막 인터뷰 주인공은 차국헌(60) 서울대 공과대학장이다.

  • 차국헌 서울대 공과대학장은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 갈 이공계 인재가 되기 위해선 기존 시장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판을 만들 수 있는 게임체인저(game changer)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신영 기자
    ▲ 차국헌 서울대 공과대학장은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 갈 이공계 인재가 되기 위해선 기존 시장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판을 만들 수 있는 게임체인저(game changer)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신영 기자
    ◇미래 사회에선 퍼스트무버보다 시장 흐름 바꾸는 ‘게임체인저’

    “앞으로의 세상은 퍼스트무버(first mover)를 넘어선 ‘게임체인저(game changer)’가 인정받을 것입니다.” 차 학장은 미래를 헤쳐나갈 이공계 인재상에 대해 주저 없이 말했다. 일각에서는 현재 신제품이나 기술을 빠르게 추격하는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에서 벗어나 남들이 가지 않은 기술과 시장으로 가는 퍼스트무버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선 그보다 한발 더 나아간 게임체인저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수십만개의 직업이 사라지고 새로이 생겨날 미래 사회에서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무버 역시 빨리 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앞으론 기존 시장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판을 만들고 판도를 뒤바꿔 놓을 수 있는 게임체인저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 학장은 “게임체인저로 탈바꿈하려면 대학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단언했다. 인공지능(AI), 로봇, 드론,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으로 변화무쌍한 시대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이공계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선 대학이 앞장서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교육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국내 대학들은 여전히 학생 선발에서 평가방식에 이르기까지 모방경제시대에 적합한 표준형 인재를 육성하고 있다. 이는 서울대도 마찬가지”라며 “다가오는 미래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도전적인 분위기와 창의성을 키워줄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 교육 시스템이 혁신해야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마인드를 가진 인재를 길러낼 수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기계처럼 외우는 기존의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이 발표하고 실험하는 것을 교사와 교수가 도와주는 역할로 변모해야 합니다. 최근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글로벌 선진 대학을 중심으로 크게 확대되고 있는 ‘거꾸로 교육(Flipped Learning)’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사전에 온라인 수업을 듣고, 이를 토대로 토론식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학생들이 수업에 보다 주체적으로 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대학 차원에서 1~2학점의 단기강좌 모듈을 다양하게 개발해 유연하게 학기를 운영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초·중·고 기초교육 중요… 대입 수능 ‘기하’ 제외해선 안 돼

    차 학장은 대학에서 이러한 교육 혁신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려면, 초·중·고교 기초교육부터 탄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급변하는 미래 사회에서 기초가 부실하면, 어떠한 분야도 선도할 수 없다”며 “최신 트렌드 맞추기에 급급하기보다는 초ㆍ중ㆍ고등 교육에서 수학·물리·화학·생물 등 이공계 기초 교과목의 내실을 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고교 과학탐구 과목의 선택에 따른 학력 불균형이 공학 교육의 위기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특히 대학 공학 교육에 필수사항인 ‘Ⅱ과목’ 지원자는 매년 감소 추세입니다. Ⅱ과목이 노력 대비 성적 향상 효과가 미미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공부하기 쉽고 성적을 잘 받는 과목으로 몰리기 때문이죠.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의 근간이 되는 기초학문을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가르치는 것을 중단하면, 대학에서 관련 소양을 높이기란 절대 쉽지 않습니다. 주요 대학 이공계 학과에서 물리Ⅱ와 화학Ⅱ를 필수로 지정하거나 가산점을 주는 등의 방식으로 선택과목의 학력 불균형을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특히 차 학장은 최근 교육부가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수학 가형 출제범위에서 '기하'가 제외되는 것과 관련해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대입 수능에서 기하를 제외하는 것은 굉장한 시대착오적 발상입니다. 기하는 공간지각력과 창의력 계발에 꼭 필요한 기초학문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꼭 필요한 3D 프린팅,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로봇모션인식 등 다양한 기술에 응용되고 있어요. 수학에서 기하가 차지하는 비중을 간과해 미래 이공계 인력의 기초실력 배양과 역량 강화가 훼손되지 않도록 이에 대한 재논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 /이신영 기자
    ▲ /이신영 기자
    ◇"종합대학 강점 살려 다양한 전공간 교류 활성화할 것"

    차 학장은 앞으로 국내 이공계 인력 양성에서 서울대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서울대는 이공계 중심 대학과 달리 공과대학, 자연·과학대학, 인문·사회대학, 의과대학, 경영대학, 예술대학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대학”이라며 “서울대는 이를 바탕으로 전통적인 학문의 전문성을 극대화하면서도, 다양한 학문을 융합하고 혁신할 수 있는 글로벌 인재를 양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중요한 키워드는 학과 간 칸막이와 장벽을 없앤 ‘융복합’ 교육입니다. 예컨대, 서울대 메이커 스페이스에서 산업디자인과 학생과 기계공학과 학생이 팀을 꾸려 공작하고, 경영학과 학생과 화학공학과 학생이 창업 클래스를 개설하는 등이죠. 앞으로의 세상은 어느 하나의 요소기술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서울대는 종합대학이 가진 강점을 살려 다양한 전공 학생간의 교류를 활성화해 ‘상상 밖의 일을 해내는’ 인재로 키울 생각입니다.”

    이를 위해 서울대는 전공 간 벽을 허물고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고자 ‘IoT·인공지능·빅데이터 이론 및 실습(IAB)’ 교과목을 개설한다. 올해 2학기 개설을 목표로 개발 중인 IAB 과목은 공대뿐 아니라 인문·사회대학 등 전체 학생들에게도 열려 있다. 우선 올해 2학기부터 3학년생 60명으로 시작해 내년도부터는 추가 기자재·공간을 확보, 수강 정원을 100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차 학장은 “IAB 교과목 개발의 책임을 맡은 강현구 공학교육혁신센터장(건축학과 교수) 역시 공학계열 비전공자”라며 “이처럼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이 타 전공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게끔 거꾸로 교육과 프로젝트 중심 교육, 학생들이 주제를 정하는 문제 중심 교육 등을 모두 도입하는 혁신적인 수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