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고 폭력적인 ‘어린이 유튜버’ 는다…디지털 교육 시급
최예지 조선에듀 인턴기자
기사입력 2018.05.04 10:44

-어린이, 콘텐츠 ‘생산자’로 활발히 활동…"이용 실태부터 정확히 조사해야"

  • 초등생들이 일상적인 유튜버 크리에이터로 활발히 활동하면서,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콘텐츠를 생산하는 경우가 늘었다. 이에 전문가들은 무작정 '나쁜 짓'으로만 봐서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 해당 유튜브 동영상 캡처
    ▲ 초등생들이 일상적인 유튜버 크리에이터로 활발히 활동하면서,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콘텐츠를 생산하는 경우가 늘었다. 이에 전문가들은 무작정 '나쁜 짓'으로만 봐서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 해당 유튜브 동영상 캡처

    # 초등학교 3학년 아이를 둔 김지연(가명)씨는 유튜브를 보다 깜짝 놀랐다. 아이 또래로 보이는 유튜버가 자신의 할머니를 폭파하는 효과를 넣은 영상을 올렸기 때문이다. 해당 영상 조회 수는 7만건이 넘었다. 김씨는 “제 아이에게도 유튜브 계정을 만들어줬는데, 이런 영상을 만들어 올리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있는 박민주(가명)씨는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사주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다. 최근 아이들이 엄마가 샤워하는 모습을 찍어 유튜브에 올리는 ‘엄마 몰카’가 화제가 돼서다. 그는 “아들이 지금도 제 스마트폰으로 영상 찍는 걸 좋아하는데, 스마트폰을 사주면 저 몰래 이런 영상을 찍어 올릴까 봐 불안하다”고 말했다.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여 성장한 세대)에 속하는 초등학생의 온라인 활동 무대는 ‘유튜브’다. 모르는 게 있으면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는 기성세대와 달리 초등학생은 유튜브에서 ‘How to~(~하는 법)’로 검색해 영상을 찾아 문제를 해결한다. 앞머리 자르는 법, 독후감 쓰는 법, 큐브 맞추는 법, 농구하는 법 등 영상의 종류도 무궁무진하다. 그뿐만 아니라 유튜브는 SNS 기능도 한다. 과거 싸이월드, 최근의 페이스북이 그러했듯 초등학생은 유튜브를 통해 친구의 소식을 듣는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자기 계정에 일상을 담은 영상을 올리면, 친구가 와서 댓글을 다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초등학생들에게 유튜브에 자기 일상을 공개하는 건 전혀 거부감이 들지도 않을뿐더러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릇된 콘텐츠 모방하는 어린이들

    초등학생이 단순히 시청하는 것을 넘어 직접 동영상을 촬영·제작해 동영상을 올리는 일이 늘면서 부모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자녀가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콘텐츠를 제작할까 봐 걱정돼서다. 아이들이 소위 ‘유튜브 스타’의 영상을 모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둔 정민성(가명)씨는 “아들이 좋아하는 유튜버인 신태일은 초등학생 뒤통수를 때리고 가는 등 폭력적 행동을 했다”며 “이런 기행을 아이가 몰래 따라 해 골칫거리”라고 털어놨다. 해당 유튜버의 계정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돼 정지됐지만, 최근 들어 계정을 새로 다시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계정이 정지됐을 때도 아이들이 그를 따라 하는 영상을 찍어 올리면서 유사 콘텐츠가 재생산됐다.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인터넷 문화도 왜곡된 콘텐츠 생산의 배경이다. 초등학교 3학년 딸을 둔 홍영신(가명)씨는 “아이가 유튜브에서 자기를 팔로우하는 친구들과 단체 채팅을 하는데, 커뮤니티에서 사용하는 욕설을 자주 쓰더라”고 우려했다. 유튜브에서는 극우 사이트인 일간베스트의 유행어를 사용하는 어린이 유튜버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시청자 반응이 더 자극적인 콘텐츠 제작을 유도하기도 한다. 한때 유행했던 ‘시키면 한다’라는 영상에서 어린이 유튜버들은 댓글에 달린 네티즌의 요구를 실행하고 영상에 담았다. 네티즌은 ‘아빠 멱살 잡고 한 대 쳐보기’ ‘PC방에서 야한 동영상 틀고 큰 소리로 떠들기’ 등 폭력적이거나 무리한 요구를 했다. 어린이 유튜버가 이에 응해 영상을 제작하면, 다시금 더 자극적인 요구가 댓글로 달렸다

    ◇ 무작정 혼내고 금지하면 안 돼…대화로 설득해야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건강하지 못한 콘텐츠를 생산하더라도, 무작정 ‘나쁜 짓’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중독은 없다’ 저자인 윤명희 사회학 박사는 “아이는 윤리적인 고민 없이 단순히 재미있다는 이유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라며 “대화를 통해 아이를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나쁜 동영상을 올렸다고 해서) 무작정 유튜브를 금지하면 아이는 부모를 불신하며 음지에서 잘못된 행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현선 경인교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아이에게는 정보를 전달하고 싶은 의사소통의 욕구가 있기 때문에 유튜브 등을 통해 동영상을 올리는 것”이라며 “이러한 욕구를 올바른 방향으로 드러낼 수 있도록 부모·교사가 잘 지도하면, 21세기에 필요한 의사소통 능력을 형성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교육 환경을 개선할 근본적인 해결책도 필요하다. 윤 박사는 “아이들은 혼자 뭘 해야 할지 모를 때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게 유튜브이기 때문에 이용하는 것”이라며 “가정, 학교, 제도적 차원에서 아이에게 교육적인 놀이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부모가 할 수 있는 조치는 한계가 있으므로 공교육에서 디지털 교육을 해야 한다”며 “예를 들어 초등학교 5학년 국어교과서에 ‘매체로 의사소통해요’라는 단원이 있는데, 교사들이 이런 내용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콘텐츠 생산자’로서 어린이가 유튜브·소셜미디어를 이용하는 실태와 관련한 조사가 없는 것도 문제다. 현재 어린이·청소년의 소셜미디어 등 이용 실태 조사는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과 시간을 분석하는 데 그친다. ‘(생산자가 아닌) 이용자’로만 여겨지는 것이다. 유튜브 정책에 따르면 계정은 만 14세 이상이어야 만들 수 있지만,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어린이의 상당수는 만 14세 미만이다. 이들은 부모의 동의를 얻었거나 부모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부모 명의로 계정을 만들어 유튜브를 이용한다. 이와 관련 유튜브 측은 “신고된 동영상을 업로드한 사용자가 나이를 실제와 다르게 지정한 사실이 발견되면 유튜브에서 해당 계정을 해지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어린이의 콘텐츠 생산이 부모에게 피부에 와 닿는 문제가 된 만큼, 어린이를 ‘콘텐츠 생산자’로 보는 실태 조사가 이뤄져야 적절한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 물을 싫어하는 햄스터를 억지로 수영시키는 학대 영상 / 해당 유튜브 동영상 캡처
    ▲ 물을 싫어하는 햄스터를 억지로 수영시키는 학대 영상 / 해당 유튜브 동영상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