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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되는 가치 창출하는 대학으로 가야…교육과 연구에 그쳐선 안 돼”

신혜민 조선에듀 기자

2018.05.0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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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교육의 미래를 말하다] ⑤김도연 포스텍(POSTECH) 총장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화에 발맞춰 전 세계 이공계 교육은 다양한 혁신을 꾀하고 있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 기술이 지배할 미래 사회를 선도적으로 이끌 이공계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떨까. 이공계 인재 육성을 위해 대학은 어떤 노력을 하고, 앞으로 해야하는 것일까. 조선에듀는 ‘이공계 교육의 미래를 말하다’ 기획 시리즈를 통해 국내 이공계 중심 대학 총장을 만나며 이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 다섯 번째 인터뷰 주인공은 김도연(66) 포스텍(POSTECH) 총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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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포스텍 총장은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편견을 깰 만한 교육개혁이 필요하다”며 “이윤을 염두에 둔 기술교육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영근 기자
◇과거에 얽매인 ‘사농공상’ 편견 벗어나야…상(商)·공(工) 무시되면 미래 없어

‘돈보다 꿈을 좇는 우리나라 이공계 첫 노벨상 수상자가 되고 싶습니다.’ 포스텍 신입생 선발 면접에서 한 학생이 이 같은 포부를 밝히자, 김도연 총장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훌륭한 연구자도 좋지만,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공학적 지식을 깨쳐 부(富)를 창출해내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신입생 선발 현장에 가보면 경제적 가치에 연연치 않고 연구에 몰두해 노벨상 받는 게 꿈이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는데, 공대는 공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돈이 되는 기술을 개발하는 인큐베이터”라며 “미래 사회를 선도적으로 이끌 이공계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는 이처럼 우리 사회 전반에 깔린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가치관부터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돈에 얽매이지 않는 청렴한 ‘선비정신’을 굉장한 가치라고 여기고 있어요. 또 소위 문과(文科)적 지식인을 우대하고 기술자와 상공인을 천시하는 조선시대 ‘사농공상’의 계급이념이 사회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죠. 하지만 앞으로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부를 만들어내는 공(工)과 상(商)을 인정하지 못하면, 국가의 미래가 없습니다. 기술력은 곧 국력이죠. 부가 있는 곳에 인재가 모이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당연한 이치입니다. 세계적인 선진 대학으로 꼽히는 미국 스탠퍼드대학,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등은 지난 20년간 인재 양성과 함께 활발한 산학협력과 기술 기반 창업으로 엄청난 부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이처럼 우리나라 이공계 중심 대학도 사회·경제적 가치 창출을 위해 진력해야 합니다.”

김 총장은 이를 위해 가장 먼저 ‘대학의 역할’을 강조했다. 대학이 사회를 위한 가치 창출을 제대로 해야 인재가 살고, 더 나아가 나라가 산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이공계 중심 대학이 연구를 활용해 앞으로의 미래 먹거리를 제시해야 할 때”라며 “대학은 연구 성과와 지식을 바탕으로 창업(創業)과 창직(創職)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기업가 정신’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바른 기업가 정신을 갖춘 인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통찰력과 새로운 것에 과감히 도전하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정신을 지니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 이공계 학생들에게는 단순 월급을 많이 받는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 월급을 주는 기업가가 되는 게 더 소중한 가치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의 최고 명문대학 중 하나인 테크니온 공과대학의 경우, 지난 20년간 기업가 정신을 교육해 학생들이 1600여개의 기업을 세우거나 운영하면서 약 1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했습니다. 국내 공과대학 역시 기업가 정신 교육으로 과학기술의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고, 첨단과학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도록 기초연구에서 응용·상용화 연구에 이르는 일련의 교육과정을 진행해야 합니다.”

◇창의성·상상력 가로막는 객관식 대입 평가방식 변화 필요

김 총장은 대학뿐 아니라 초·중·고교 교육도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필요한 능력이 창의성과 상상력인데, 현재 초·중·고교 내신시험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처럼 비틀고 꼬아서 오답을 유도하는 객관식 평가방식으로는 이를 측정하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는 “정해진 시스템에서 오지선다형 같은 객관식으로 학습 내용을 평가한다면 교육과정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길러내기 어렵다”며 “학생을 훨씬 섬세하고 복합적으로 바라보고 뽑을 수 있는 주관식 서술형 평가방식의 도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같은 교육개혁에 앞서 사회 전반의 신뢰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실수하지 않는 경쟁에 불과한 수능 성적 1점 차이는 쉽게 인정하면서도 전문가인 입학사정관의 평가는 불신하는 게 우리 사회의 문제”라며 “주관적 평가를 받아들이는 신뢰 기반을 구축해야 국가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교육을 바꾸려면 기성세대의 가치관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일류 대학을 나와야 행복하다는 것은 부모들의 미신(迷信)일 뿐입니다. 왜곡된 대입 제도 역시 기성세대의 집착이 빚어낸 결과입니다. 우리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행복해진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창의성, 도전정신 교육도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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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근 기자
◇올해부터 신입생 전원 無학과 선발…“전공 벽 허물어 미래 인재 키울 것”

교육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그의 의지를 반영한듯, 실제 포스텍은 올해 개교 30년 만에 처음으로 학사제도를 개편했다. 획일적인 전공 중심 교육에서 탈피하고자 신입생 전원을 '무학과(無學科)'로 선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미래 대학과 교육은 캠퍼스 중심이 아니라 전공, 학문, 영역 간 경계가 없는 새로운 형태로 발전할 것”이라며 “학생들이 전공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를 경험할 수 있도록 장려하기 위해 새로운 교육과정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올해부터 하계사회경험(SES·Summer Experience in Society)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SES는 학생들의 여름방학을 기존 2개월에서 3개월로 늘려 국내외 기업이나 연구소 등에서 인턴십을 통해 사회경험을 쌓을 수 있게 한 프로그램이다. 봉사활동 동아리와 조정팀도 창단해 학생들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게끔 배려했다. 김 총장은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면 낙오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대학 차원에서 학생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마음껏 도전하며,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기로 했다”며 “이 활동으로 학생들은 급변하는 사회 변화, 네트워킹 등을 이해하고 한편으론 사회에서의 역할과 자신의 미래를 심도 있게 모색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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