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훈의 학습 원포인트 레슨] 암기하지 못하는 걸까, 암기하기가 싫은 걸까?
조선에듀
기사입력 2018.05.02 10:33
  • 고민 상담을 받다 보면 암기를 못한다고 자책하거나 암기가 어렵다고 힘들어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나 청소년기에 암기가 안 되면  가장 신선한 두뇌상태에서 안되는 것이나 앞으로의 학습이 전반적으로 검토되야 한다. 정확히는 암기가 안 되는 게 아니라 암기가 싫은 것에 가깝다. 다분히 심리적인 것. 당연히 전화번호 같은 거 빼고 억지로 어떤 내용을 의미 없이 외우는 게 즐거울 사람은 세상에 별로 많지 않다. 그리고 그게 재미있다고 느끼는 게 어찌 보면 더 비정상적인 일이다.

     문제는 실제로 공부에 필요한 암기가 대부분 기계적으로 외우지 않아도 된다는데 있다. 그러면 어쩌란 말일까. 기계적으로 덤벼서 외우려고 하지 말고 왜 그런지 따져 물어서 외워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기억도 오래가고 기억하기도 쉽고 심리적인 거부감도 덜하게 된다. 도미노 피자가 3082 인 이유는 30분 안에 빨리 온다 해서 정했다는데 이걸 그냥 외우는 것과 그 의미를 아는 것은 암기 속도와 지속시간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일상에 치여서 공부는 급하고 마음에 여유는 없고 손쉽게 외우고 잊어버리고 또 외우고 하기를 반복하는 게 다반사일 것이다. 하지만 그 틀을 깨고 나와야 공부의 해답이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암기를 못한다는 생각은 버리고 모두 다 암기 잘할 수 있다는 믿음부터 출발해야 한다. 다만 그동안 암기가 싫었던 것이고 그 이유는 바로 그냥 막 외우려고 덤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미국의 독립혁명과 프랑스 혁명 중에서 어느 게 먼저일까? 보통은 대부분 프랑스혁명이 떠오른다. 아무래도 구대륙에서 혁명적 사상이 일어나고 그게 신대륙으로 전파되었을 거라고 본능적인 상식이 발동할 테니까. 근데 그래서 정확히 틀리게 된다. 오히려 미국 독립혁명이 먼저 일어나고 남의 집 불난데 불 끄러 도와주겠다고 들어간 프랑스가 엉뚱하게 자기 집에 불붙은 상황이다. 사실 두 혁명의 사상적 배경이나 전후 스토리를 재미나게 책을 읽었다면 이 문제는 고민거리에 해당되지도 않지만 이런 사회책의 내용을 단순히 미국-프랑스 미국-프랑스 하는 식의 연대표로 외웠다면 당장의 시험만 잘 볼 뿐 시간이 지나면 전혀 내 지식으로 입력되지 않고 시험 보는 날 오후에 바로 증발이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임진왜란이 1592년에 일어났다고 했을 때 그걸 왜구가 쳐들어왔는데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연결해서 이러고 있=1592 하는 식의 암기가 필요하던 시절의 공부도 있었다. 그건 그 옛날 학력고사 시절 암기가 최고의 가치였던 때 얘기다. 지금은 수능 시대다. 수능은 이런 단순 암기를 요구하는 게 아니고 사회 현상의 전후 관계나 인과관계 등을 통해 통찰력을 기르고 그 내용을 이해하여 내 지식으로 만들기를 요구하는 시험이다. 그런데도 옛 방식대로 공부한다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꼴이다.

     ‘종부세’라는 세금제도가 도입될 때도 사회적 필요성이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작동하고 그런 전후 사정이나 그 이름 자체가 종부세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 의미와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그냥 몇 년도에 어떤 대통령이 종부세를 도입했다는 사실을 단순하게 외워버린다면 외우는 사람도 힘들고 어찌 시험 보고 나면 시험 날 잊어버려서 괴롭고 나중에 그 내용을 다시 공부할 때 피곤함이 몰려온다는 것이다.

     당장에 시간이 좀 더 걸리고 귀찮고 불편해도 어떤 내용을 외울 때는 왜 그런지 따져 묻고 알아보고 찾아보고 물어보는 과정을 거친다면 그것은 온전히 자신이 지식이 되는 것이다. 그걸 꺼내서 설명해보면 더욱 좋고 말이다. 완전히 나의 지식이 되는데도 도움이 되고 꺼내는 노력까지 해봤으니 시험이라는 꺼내기 싸움에서 유리해지는 게 당연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암기는 못하는 게 아니라 싫은 것이고 싫은 이유는 무작정 덤벼서 성급히 외우려고만 하니까 힘들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뭔가를 연관 지어 생각하고 왜 그런지 따져 묻는 과정에서 공부가 되는 거고 최종적으로는 꺼내서 설명까지 해볼 때 비로소 진정한 지식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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