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밖에서만 행복 찾는 워라밸 세대…일은 ‘불행’인가
최예지 조선에듀 인턴기자
기사입력 2018.04.24 15:41

-인적자원개발 전문가 2人에게 물었다…일하며 행복하려면?

  • 장원섭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왼쪽)와 임명기 박사는 “일하며 행복을 느끼려면 일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며 “기업은 직원에게 자율성을 주는 등 일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 본인 제공
    ▲ 장원섭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왼쪽)와 임명기 박사는 “일하며 행복을 느끼려면 일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며 “기업은 직원에게 자율성을 주는 등 일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 본인 제공

    워라밸이 시대의 화두다. 워라밸은 ‘워크 앤드 라이프 밸런스(Work and Life Balance)’의 준말이다. 1988년생 이후부터 1994년생까지의 젊은 직장인은 일과 삶의 균형을 찾고자 하는 ‘워라밸 세대’로 불린다. 이들은 일 ‘밖’에서 행복을 찾으려 한다. 여가생활을 중요하게 여기는 건 물론, 일이 싫어 퇴직을 준비한다는 ‘퇴준생’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건물주가 꿈이라는, 불로소득을 향한 열망도 젊은층 사이에 들끓는다.

    한국 사회에서 일은 불행인 걸까.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2010)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직무 스트레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직무 스트레스를 느끼는 비율이 우리나라가 87%로, OECD 평균인 78%에 비해 현저히 높은 실정이다. 일하는 게 행복해야 삶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일에서 행복을 찾을 방법은 없을까. 이와 관련 인적자원개발 전문가 2인의 조언을 들어봤다

    ◇워라밸은 반쪽짜리 행복… ‘일’ 의미 찾아야

    “일 이외의 삶에서만 행복을 찾는 워라밸은 ‘반쪽짜리 행복’이 아닌가요? 전 오히려 일이 삶의 중심에 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에서 도망치려는 건 다시 말해 삶의 ‘절반은 불행’하다는 얘기죠.”

    장인(匠人) 연구로 일의 의미를 찾아온 장원섭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의 말이다. 장인 하면 전통 기술 전수자를 떠올리기 쉽지만, 그는 폭넓게는 일하는 사람들의 ‘롤모델’ 모두를 현대적 의미의 장인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장 교수는 “일을 통해 만족과 성취를 얻는다면 누구나 장인이 될 수 있다”며 “장인에게 일은 단순한 생계 유지 수단이 아닌 삶의 목적과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려면 일을 ‘의미화’해야 합니다. 지겹거나 재미없어 보이는 일도 관점에 따라 새롭게 볼 수 있죠. 제가 연구했던 박병일 우리나라 자동차 1호 명장은 ‘자동차를 고치는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합니다. 정비를 성가시거나 짜증 나는 일로 생각지 않고, ‘자동차 주인에게 도움을 줬다’는 보람으로 여기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는 개인의 노력만으론 어렵다. 회사와 조직 차원에서도 개인이 일을 의미화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성찰하고 일을 의미화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나 인정 체제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일의 의미는 성공이 아니라 ‘성장’에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일은 ‘하면 는다’고 생각해요. 일하는 데는 많은 변수가 개입할 수밖에 없잖아요. 열심히 일해도 성과를 못 내는 경우가 있지만, (결과에 상관없이) 하면 실력이 늘죠. 열정적으로 일하면서 내가 ‘성장한다’고 생각하면 의미가 있어요. 반대로 나의 성장이 아니라, 성과와 보상만을 일의 목표로 삼는다면 일이 재미없어질 수 있습니다.”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어 가는 것도 장인의 특성이다. “자신이 그 일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장인이 대다수입니다. 시작은 우연이었던 거죠.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권찬영씨는 학교 연구소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개발자가 됐고, 김갑유 변호사는 회사에서 맡을 사람이 없어서 담당하게 된 국제 중재 사건 때문에 해당 분야 전문 변호사가 됐어요. 미리 계획하고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관심과 의지를 가지고 집요하게 일해 왔기 때문에 그 자리에 오른 겁니다.” 우연하게 마주한 일이라도 거기에 몰입하며 크고 작은 성취를 이루다 보면 일에서 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 장인의 특성은 기술직이나 전문직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장 교수는 “연구를 확장해 보니, 비서직·영업직·일반사무직 등 다양한 직군에서도 장인과 유사하게 일에 몰입하며 의미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렇게 일에 몰입할 때 느끼는 쾌감을 ‘워커스 하이(Worker’s high)’라고 지칭한다. 달리면서 얻는 쾌감을 뜻하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에 빗댄 말이다. “일에 몰입하다 보면 기분이 정말 좋아지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어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만큼 빠져들기도 하죠. 이러한 ‘워커스 하이’는 일을 계속하게 하는 동기가 됩니다.”

    ◇자율적으로 일할 때 일에서 만족 느껴…기업 문화 바뀌어야

    “대부분의 사람은 의도치 않게 선택한 일을 하며 살아요. 하지만 그 일을 그만 하고 직장에서 탈출하고 싶다고만 생각하면 삶이 너무 불행하잖아요. 일이 천직인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싫다’는 생각만 하지 말고, 일에 ‘핏(fit)’을 맞춰보면 어떨까요? 일하면서 행복할 수 있는 태도와 사고방식을 가져보는 겁니다.”

    심리학 박사이자 ‘잡 크래프팅 하라’의 저자인 임명기씨는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잡 크래프팅(Job Crafting)’에 관심을 가져왔다. 잡 크래프팅은 구글, 삼성물산 등 유수 기업에서 직무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도입한 방법으로, 일과 관련된 상황이나 인간관계, 인식을 회사가 아닌 직원이 주도적으로 바꾸는 작업을 의미한다.

    그는 일을 보는 인식,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일이 분업화되고 파편화된 사회에 살다 보니 사람들이 일의 의미를 잘 몰라요. 하지만 세상에 필요 없는 일은 없습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이 일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바는 무엇인지 생각하다 보면 일의 의미를 찾을 수 있어요. 고객을 직접 만나보는 것도 좋습니다. 만약 매일 숫자만 확인해서 적는 직업이 있다면,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은 숫자가 무슨 의미인지 모른 채 기계적으로 일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고객을 직접 만나면 자신이 적는 숫자가 고객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자신이 고객의 삶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잘 알 수 있죠.”

    주어진 걸로 보이는 업무도 개인이 통제할 수 있다. 사람들은 처음 언급된 조건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라는 게 있다. 팀 프로젝트라면 첫날 특정 개인이 설정한 일의 목표와 범위에 따라 앞으로의 일이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임 박사는 “‘내 일’이라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프로젝트 시작할 때 일의 범위와 결과물을 제시하는 식으로 앵커링 효과를 구현할 수 있다”며 “상사가 지시한 일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뭔가를 제안하는 태도를 지니면 자신이 어느 정도 일을 통제할 수 있어 일터에서의 삶의 질도 나아진다”고 조언했다.

    ‘자율적’으로 일하는 건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주요한 방법이다. 산업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자율성의 범위와 일의 만족도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을 자기가 지배하는 게 일터에서의 행복에 중요하다는 얘기다. “일과 삶이 명확하게 구분될 때 사람들은 오히려 행복하지 않아요. 6시 강제퇴근제보다 자율출퇴근제일 때 더 행복해 하죠. 전날 과음하고 그 다음 날 오전에 생산성도 안 나오는데 자리에 앉아있는 것보다, 오후에 출근해서 늦게 퇴근하는 게 진짜 ‘워라밸’ 아닐까요. 일을 내가 유연하게 컨트롤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은 행복해합니다.”

    조직 차원에서도 직원의 ‘자율성’을 허용하는 게 중요하다. “근본적으로 기업이 직원을 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해요. 지금 우리나라 회사가 임직원을 대하는 방식은 ‘세우고 검열’하는 겁니다. 뭐든 보안 검색을 하고 직원을 잠재적 범죄자로 봐요. 하지만 글로벌 기업은 ‘믿고 검증(trust and verify)’한다는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임직원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고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주체적 존재로 보는 거죠. 회사가 이러한 관점을 지닐 때 조직이 택할 수 있는 제도도 다양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시대 변화에 따라 회사도 과거와 같은 근무 환경을 고집할 수 없게 됐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자리에 출근해서 일하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 사무실이든, 집이든, 카페든 어디서나 일할 수 있다. 임 박사는 “일에서 물리적 시간·공간이 흔들리면서 잡 크래프팅 하기 좋은 시대가 됐다”고 했다. 더욱이 지금은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열리면서 개인이 ‘자율적’으로 일하는 게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 됐다. “직업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직업 주기’가 짧아지고 있어요. 직장인 입장에서도 유연성을 가지고 자기 업무를 주체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해요. 누가 시키는 대로 주어진 일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세상이 변하고 내 일은 사라져 있을 수도 있어요.”

    일에서 의미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여기는 두 전문가가 입을 모아 우려한 점이 있었다. ‘일의 행복’을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장 교수는 “일을 커피에 비유하면 에스프레소와 같다. 고통스러운 쓴맛이 있다는 뜻이다. 에스프레소를 작은 잔에 마시는 것처럼 일도 적당히 해야 행복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에스프레소를 큰 컵에 마시게 한다. 즉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임 박사 역시 “근로시간이 많은 상태에서 유연화하는 건 위험하다”며 “1단계로 먼저 근로시간을 줄이고, 2단계로 일을 유연화하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