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연구 위기…정부 지원 안 받는 대학 모델이 대안”
손현경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8.04.19 11:40

[이공계 교육의 미래를 말하다] ③ 정무영 유니스트 총장

  • 그간 ‘혁신’을 위해서는 정부의 과감한 지원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고정관념을 깨자는 이공계 특성화 대학 총장이 있다. 정무영 울산과학기술원(UNIST·유니스트) 총장은 “대학이 외부 지원에 너무 의존하게 되면 지원을 받기 위한 연구를 할 수밖에 없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유연하고 열린 사고를 통해 정부로부터의 ‘재정자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 지원에 의존하게 되면 실용성이 떨어지는 ‘실적용 논문’만 양산하게 되고, 과도한 규제와 일방적 지시는 급변하는 미래에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이제는 ‘재정자립’이라는 과감한 혁신을 해야 할 때입니다. 연구진이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확보하기 위해서죠. 이를 통해 정부나 기업체의 지원 없이 대학이 자체적으로 수익을 창출해 학교를 운영하는 새로운 방식의 대학 운영 방식 아이디어도 (정부에서) 수용돼야 합니다.”

  • 정무영 유니스트 총장은 “2040년까지 12조원의 학교발전기금을 확보해 정부로부터 완전히 자립한 대학모델을 만들겠다”며 “그래야만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연구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양수열 기자
    ▲ 정무영 유니스트 총장은 “2040년까지 12조원의 학교발전기금을 확보해 정부로부터 완전히 자립한 대학모델을 만들겠다”며 “그래야만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연구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양수열 기자
    ◇ ‘의대 선호’에 이공계 위기…“‘수출형 연구’로 브랜드별 경쟁력 갖춰야”

    자연계 최상위권 학생들의 이공계 기피가 의학계열 선호 현상과 맞물려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실제로 2018학년도 정시에서 서울대 일반전형 합격자 860명 가운데 103명 입학포기인원 중 37.9%(39명)가 공대 합격자로 밝혀진 가운데 중도 탈락 이유 중 하나가 의대 선호현상이라는 입시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온 바 있다.

    이에 대해 정무영(69) 총장은 “솔직히 총장인 나도 지금의 이공계 대학보다는 경쟁력 있는 의대에 지원할 판”이라며 “언제 한번 이공계 특성화 대학들이 무엇이든 이공학도에게 큰 꿈을 구체적으로 심어 준 적이 있었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공학도들이 의대로 빠지는 현상은 이공계 중심 대학이 다 같이 반성해야 할 사안”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정 총장은 이공학도들에게 이공계만의 경쟁력을 심어줘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것을 해결할 방안으로 비전 중 하나로 ‘수출형 연구’를 내놓았다. 정 총장은 “더는 이공학도들의 연구가 실험실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핵심 원천기술 확보를 통해 이를 수출하고 그것의 브랜드를 육성해 ‘사업화’하는 방향으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유니스트는 대표적인 연구브랜드 10개 선정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연구브랜드 선정은 원천기술 확보·신산업 창출 가능성, 세계 시장 파급력, 상용화 가능 시기 등을 기준으로 한다. 최근까지 선정된 연구브랜드는 리튬 이차전지, 탄소섬유 기반 경량 복합소재, 해수 자원화 시스템 등 3가지다. 특히, 바닷물의 소금을 이용해 대용량의 전력을 생산하고 저장하는 ‘해수전지’의 경우, 앞으로 국내에서는 4조 규모의 신시장을 창출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 총장은 “유니스트는 이같이 연구개발한 기초 ‧ 원천기술을 기술사업화하는 데 집중할 방침”이라며 “다양한 연구분야의 확보는 그만큼 더 큰 사업화의 기회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수출형 연구브랜드를 중심으로 한 유망 연구의 사업화 경험은 앞으로 우리가 창출할 추가적 연구와 그에 따른 사업화로도 이어질 것이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같은 방향이 대학 재정의 패러다임도 변화시킬 것으로 예측했다. 정 총장은 “정부나 기업체의 지원 없이 대학이 자체적으로 수익을 창출해 학교를 운영하는 새로운 방식의 도입이 필요하다”며 “유니스트는 재정자립이라는 혁신을 통해 창의적인 연구 환경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버드대가 약 40조원, 매사추세츠공과대(MIT)가 약 15조원, 스탠퍼드대가 약 25조원 규모의 대학발전기금을 운용하고 있다”며 "대학발전기금을 조금만 많이 갖고 있어도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는 우리와는 다른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브랜드별 수출형 연구로 2040년까지 120억 달러(약 12조)의 발전기금을 달성해 정부로부터 재정자립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어 “발전기금 목표액이 너무 커 실현 가능성에 물음표를 던지는 이들도 있지만, 유니스트의 대표 연구 브랜드가 개별 1조원 규모로 수출된다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라며 “이는 이공학도들에게도 구체적인 연구 계기로 다가갈 것”이라고 말했다.
  • /양수열 기자
    ▲ /양수열 기자
    ◇ 4차 산업혁명 시대엔 도전ㆍ창업정신 핵심… 46건의 창업 실적 보유

    유니스트는 지난 2월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해 학생 창업인과의 간담회를 연 학교로도 유명하다. 문 대통령은 “한국은 과거 청년들의 모험 등 창업을 위해 도전이 넘치는 사회였다. 이를 통해 우리가 ICT 분야에서 세계적인 강국으로 단기간에 부상했는데 어느새 도전정신이 많이 없어졌다”며 “우리 사회와 국가가 청년들의 도전을 제대로 뒷받침해 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이제 우리 정부가 이들의 모험적인 창업 활동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고자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을 정 총장 역시 체감하고 있다. 그는 “유니스트는 창업과 산학협력의 두 방향을 통해 자체적으로 연구개발한 기초ㆍ원천기술을 기술사업화하는 데 집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유니스트는 대표적인 연구분야를 포함해 최근까지 총 60건의 창업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이중 교원들의 창업은 20건으로 누적 매출 21억6000만원에 달하고, 학생 창업도 36건으로 4억1000만원의 매출을 달성하는 등 실질적인 가치창출로 이뤄내고 있다. 또한 그는 “수출형 연구를 사업화하기 위해선 국제적인 개방성도 빼놓을 수 없다”며 “이를 위해 100% 영어강의 실시, 외국인 정규 학생 확보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정 총장은 경쟁력 있는 가치 창출을 위해 무엇보다 대학이 핵심원천기술을 확보해 사업에 나서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학은 단순히 논문을 생산하는 것에서 벗어나 질 높은 논문을 위해 집중해야 합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독창적 연구의 수행을 통해 수출 가능한 연구 브랜드를 육성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러려면 정부로부터 먼저 재정자립을 하는 혁신을 추진해야 해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무엇보다 규제나 틀에 얽매이지 않은 창의적 연구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