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학교 보안 강화에… 신입생 유치 나선 교수들 “잡상인 아냐”
신혜민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8.04.13 17:21

-학령인구 급감에 대학마다 고교 방문해 신입생 모시기 전쟁 치러
-수도권 대학 예외 아냐… 고교 홍보 확대 추진

  • 한 고등학교 건물 출입구 앞에 '외부인 출입통제 안내'가 반영돼 있다. /신혜민 기자
    ▲ 한 고등학교 건물 출입구 앞에 '외부인 출입통제 안내'가 반영돼 있다. /신혜민 기자
    # 충남의 한 4년제 대학의 A교수는 지난달부터 속칭 ‘영업’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다. 입학정원을 채우기 어려운 일부 지방대학들이 신학기 시작부터 소속 교수들을 상대로 고교를 돌며 대학 홍보 활동을 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는 “학기 초부터 대학 인근 고교의 진로·진학 담당교사, 고3 담임교사, 수험생을 상대로 홍보하느라 대학 강의실보다 고교 교무실에 상주하다시피 하고 있다”며 “특히 이달 초 서울 방배초등학교 인질극 사건 이후 학교 자체적으로 신원확인 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아무리 명함을 내밀고 사정을 설명해도 잡상인 취급을 받을 땐 속상하기도 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학령인구가 갈수록 감소함에 따라 신입생 정원 미달을 우려한 대학의 교수들이 고교를 상대로 유치작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과거에도 일부 지방 전문대학을 중심으로 이 같은 홍보 활동을 펼치긴 했지만, 해마다 고교 졸업자 수가 큰 폭으로 감소하자 4년제 대학 교수들까지도 학기 초부터 학교 홍보에 열을 올리는 모양새다. 지방 소재 한 대학교수는 “몇 해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시모집을 앞두고 6월과 7월에만 바짝 한 두 차례 홍보했는데, 최근 들어 학기 초부터 적극적으로 나서는 추세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교에서는 이 같은 교수의 방문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학업과 학사 일정, 대입 준비로 바쁜 와중에 갑작스런 교수의 방문까지 대응하기엔 어렵다는 입장이다. 일례로 한 고교에서는 3학년 교무실 문 앞에 '교수 및 잡상인 출입금지'라는 경고문까지 붙이기 시작했다. 서울의 한 고교 3학년 진학부장 교사는 “요즘 많게는 하루에 5~6곳의 지방대학 교수들이 대학 입학 홍보를 위해 찾아오는 편”이라며 “대개 갑자기 찾아와 3학년 부장교사나 진학담당 교사에게 학생을 보내달라고 요청해 곤란하다”고 말했다. 대전의 한 고교 3학년 담임교사는 “먼 거리에 있는 지방대학부터 인근 대학의 특성화·계약학과 교수들도 자주 학교를 찾아온다”며 “어떨 땐 같은 대학 내 학과만 다른 교수들이 시간차를 두고 찾아와 홍보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교수들 역시 이 같은 상황이 달갑진 않지만, 학교의 존폐가 달려 어쩔 수 없다고 토로한다. 신입생 정원이 감소하면 학교에 폐과·폐강이 속출하게 되고, 이는 결국 교수와 교직원 인원 감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모 지방 대학교수는 “간혹 진학담당 교사들이 불편해하거나 귀찮아하는 기색을 보이기도 한다”면서 “하지만 최근 수시 학생부 중심 전형이 확대하면서 이들의 입김이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우리 대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설명하고, 점심때를 활용한 미니 설명회를 여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강원의 한 대학교수는 “서열화된 국내 대학사회 구조상 살아남기 위해선 우리(교수)가 나설 수밖에 없다”며 “학생 수는 급감한 데 반해 신설 대학은 많고 서울·수도권 대학 편중도 심하니 우리가 직접 나서서 ‘발품’ ‘말품’을 많이 팔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대학의 상황도 크게 다르진 않다. 최근엔 수도권 대학교수들도 전국 순회 고교 입시설명회 등에 입학사정관과 함께 입학 안내를 주도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서울의 한 사립대 입학처장은 “최근 학령인구가 감소하며 우수 학생 유치가 예전보다 훨씬 더 어려워졌다”며 “이에 따라 보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대학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고교 입시설명회에 학과 교수와 동행하거나, 고교 방문 전공 특강을 여는 등 교수들도 보다 적극적으로 대학 입학 홍보에 투입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 /조선일보 DB
    ▲ /조선일보 DB
    하지만 최근에 학교 보안 강화로 출입 통제가 강력하게 이뤄지다 보니 예상치 못한 일을 겪기도 한다. 모 대학교수는 “미리 연락을 해도 별다른 답변이 없어 이제는 연락 없이 찾아가다 보니, 고교 정문 밖에서 신원이 확인될 때까지 마냥 기다리기도 하고 학생들이 오가는 교무실 문 앞을 서성거리기도 한다”며 “어쩌면 제자가 될 수도 있을 까마득한 학생들 앞에서 이렇게 영업 아닌 영업을 뛰어야 하는 상황이 마뜩잖다”고 말했다.

    교수가 전면에 나선 신입생 유치전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학령인구 감소폭이 갈수록 급경사를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구학자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올해 입학한 2018학번의 경우 재수생 등을 포함해 약 60만명의 수험생이 경쟁했지만, 2023년의 18세 인구는 약 43만명(대학 진학률 70% 정도)에 불과하며 재수생을 더해도 45만명에 불과할 것으로 내다봤다. 대학 관계자들은 "계속 학생 수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머지않아 서울 소재 인기있는 몇 학교를 제외한 거의 모든 대학에서 신입생 모집난이 본격화될 것"이라며 "이를 극복할 구체적인 대안을 준비하지 않으면, 지방대학 교수를 중심으로 한 지식인 사회의 생존 기반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