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초등

[THE 인터뷰] 화상 환자에게 희망 전하는 최려나씨

최지은 인턴기자

2018.04.12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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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자' 결심한 순간, 화상은 더 이상 장애가 안 됐죠

초등 4학년 때 가스폭발 사고로 전신 화상
매일 거울 보며 새 얼굴과 친해지려 노력
어린이 화상 환자 멘토링 역할에 '구슬땀'

“요즘 바빠서 시간이 너무 빨리 가요. 정신을 차려보면 일주일이 지나있어요. 대학원 수업도 따라가야 하고, 틈틈이 화상을 입은 어린이 대상 멘토링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요. 오는 6월에는 화상 경험자들을 위한 ‘걷기 캠페인’도 준비 중이에요.”

지난 6일,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캠퍼스에서 최려나(26)씨를 만났다. 그는 지난달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 입학했다. 일정이 빼곡하게 적힌 분홍색 다이어리를 들고 활짝 웃는 그에게서, 15년 전 그를 덮친 화마(火魔)로 인한 고통이나 상처는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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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교정에서 미소짓는 최려나씨. 그는 “처음에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두렵기도 했지만, 학교에서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나 행복하다”고 말했다./장은주 객원기자
◇"새로운 얼굴과 친해지기 위해 매일 거울 봤어요"

"사고가 나고 한동안은 거울을 안 봤어요. 가족들이 제가 상처받을까봐 주변 거울을 모두 치웠죠. 화상으로 없어진 눈썹을 다시 그린 날, 처음으로 제 얼굴을 봤어요. 제 첫 마디는 '생각보다 괜찮네?'였어요. 가장 많이 다친 팔과 다리를 보고 얼굴은 더 심할 줄 알았거든요(웃음)."

최씨는 초등학교 4학년이던 2003년, 가스 폭발 사고를 당해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었다. 사고 현장에 함께 있던 어머니는 치료를 받다가 세상을 떠났다. 최씨도 사고 후 3개월간 생사를 오갔다.

"피부에 화독이 오를 대로 올라서 고름과 진물이 흘렀어요. 상처가 깊은 곳은 뼈가 보일 정도였죠. 게다가 성장기라서 뼈는 계속 자라는데 피부는 그대로니 자꾸만 몸이 동그랗게 말렸어요. 처음엔 걷지도 못해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동그래진 저를 안고 다니셨어요. 말린 몸을 펴는 수술을 비롯해 피부 이식 수술까지, 40번이 넘는 수술을 받았어요."

화상의 흉터만큼이나 최씨를 고통스럽게 한 건 주변의 시선이었다. 신기한 듯 최씨를 쳐다보는 눈길이 상처로 꽂혀 한동안 문밖에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누가 나를 사랑해줄까?' 그래서 나부터 나를 사랑해주기로 결심했어요. 우선 새로운 얼굴과 친해져야 했어요. 일부러 거울과 자주 마주하고 웃어도 보고, 찡그려보기도 했어요. 집에서만 만나던 친구들도 밖에서 만나기 시작했죠."

◇"친구들과 공부하고 수다 떠는 소원 이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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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려나씨가 벚꽃이 핀 교정을 걷고 있다.
스무 살이 되자 친구들은 대학에 진학해 캠퍼스를 누볐다. 사고 후 치료 때문에 학업을 중단한 최씨는 "나만 초등학교 4학년에 머물러 있는 것아닌가 불안했다"고 했다.

"친구들을 보니까 저도 대학 가고 싶더라고요. 그땐 보통의 학생들처럼 일상을 보내는 게 소원이었어요. 친구들과 카페에서 수다도 떨고, 기숙사에서 야식도 시켜 먹고, 가끔 외박도 하고 그런 거요(웃음). 그래서 고졸 검정고시부터 시작했어요. 그때 소원이라고 생각했던 걸 지금은 모두 하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최씨가 세상 밖으로 나와 대학까지 가는 데는 이지선(40)씨의 도움이 컸다. 베스트셀러 도서 '지선아 사랑해'의 저자인 이씨는 2000년 교통사고로 전신 화상을 입었다. 이후 아픔을 극복하고 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받아 현재 한동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선 언니를 만난 건 열세 살 때였어요. 언니는 늘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에요. 아무렇지도 않게 반팔을 입고, 사람들 앞에서 상처 난 손을 흔들며 제게 인사해요. 언니를 보면서 '화상을 입어도 멋있고 당당하게 살 수 있구나'라는 걸 배웠어요.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화장품을 직접 사주시면서 화장하는 법도 알려주셨어요. 화상 입은 얼굴도 예쁘게 꾸밀 수 있다는 걸 언니 덕에 알게 됐죠."

◇"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위해 일하고 싶어요"

2015년, 미국에서 열린 '세계 화상 대회' 참가 경험은 그의 삶을 180도 변화시켰다.

"참가자 중에 화상으로 다리를 잃고 의족을 찬 사람이 있었어요. 저라면 바지를 입어서 의족을 숨겼을 텐데 그분은 미니스커트를 입었어요. 사실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밖에 나갈 땐 모자를 쓰고, 한여름에도 긴 팔을 입었거든요. 늘 '완전 무장'하고 다니던 제게 그 모습은 충격이었어요."

그날 이후 최씨는 모자와 마스크를 벗어 던졌다. 미국 화상 대회에서 1000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나의 아픔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큰 위로를 받았던 그는 우리나라 화상 경험자들과도 이때의 경험을 나누고 싶었다. 올해로 2년째 화상 경험자들을 위한 '걷기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또 이지선씨가 그에게 했던 것처럼, 화상을 입은 아이들을 위한 멘토 역할도 꾸준히 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제가 가장 많이 해주는 말은 '예쁘다' '멋있다'예요. 지금의 모습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게 어릴 적 제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거든요. 앞으로도 제 도움을 필요로 하는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고 싶어요. 당신도 행복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꼭 얘기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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