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 간 칸막이, 고정관념 없애야 이공계 인재 육성 가능”
방종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8.04.12 11:05

[이공계 교육의 미래를 말하다] ②손상혁 디지스트 총장

  • 손상혁 디지스트 총장은 “앞으로는 특정한 분야만의 지식이 아니라 탄탄한 기초지식을 바탕으로 전공 분야의 경계를 허물고 종합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양수열 기자
    ▲ 손상혁 디지스트 총장은 “앞으로는 특정한 분야만의 지식이 아니라 탄탄한 기초지식을 바탕으로 전공 분야의 경계를 허물고 종합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양수열 기자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화에 발맞춰 교육환경에서도 혁신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중추적인 역할을 할 이공계 교육에 대한 변화가 기대되고 있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 앞에서 국내 이공계열 학생들은 어떤 역량을 키워야 하며, 대학은 어떻게 혁신해야 할까. 조선에듀 연재 ‘대한민국 이공계 교육의 미래를 말하다’는 4월 과학의 달을 맞아 우리나라 이공계 중심 대학 총장을 만나 앞으로 국내 이공계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들어보는 기획 시리즈다. 첫회 카이스트에 이어 두 번째는 손상혁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ㆍ디지스트) 총장이다.

    ◇ “변해야 산다”…융복합 교육으로 혁신 추구

    “현재 대학이 직면한 위기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먼저 대학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불과 몇 년 뒤에는 쓸모없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또한 학생들을 잘 가르쳐 사회로 배출시켰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기업에 들어가 해당 직무를 익히기 위해 재교육 형태로 오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고 앞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전공 분야만 깊이 파고드는 일명 ‘T(티)’형 인재가 아닌, 학문적 기반이 넓은 ‘π(파이)’형 인재를 길러야 합니다.”

    손상혁(65) 총장은 인터뷰 내내 학문에 대한 깊이보다는 넓이를 강조했다. 한 분야만 깊이 아는 인재보다는 다양한 분야를 두루 섭렵한 인재가 4차 산업혁명에 더 걸맞을 것이라는 확신에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중요한 키워드는 ‘연결’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나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모든 것을 넘나드는 초연결, 초지능 사회가 될 것입니다. 얼핏 보면 아무 연관이 없어 보이는 분야들이 서로 접목돼 과거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결과가 나타나고 있고, 앞으로는 더욱 만연해질 것입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분야만이 아니라 탄탄한 기초지식을 바탕으로 전공 분야의 경계를 허물고 종합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대학교육도 개편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핵심은 학과 간 칸막이와 장벽을 없앤 ‘융복합’ 교육이다. 일찍부터 한 가지 전공에만 얽매이지 말고 전공을 뛰어넘어 생각을 확장시키라는 의미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앞으로의 대학은 지식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 기존에는 없던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곳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4년간 전공 구분없이 폭넓은 공부를 하면서 자신의 진로를 찾은 학생이 대학원이나 사회에 나가서도 더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는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전혀 예상을 못 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통용된 것과 다른 방식으로 지식을 창출하고 융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세부적으로는 다소 비효율적이더라도 학생 개개인에게 집중하는 교육이 이뤄져야 함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들 옆에서 지켜보는 교수의 역할론을 주문했다. 그는 “학생들이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해 도전할 수 있도록 곁에서 응원은 물론 멘토링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단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연구실적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지금의 대학구조를 좀 더 유연하게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로서는 정부와 대학이 연구실적을 우선시하고 대학평가에도 이를 반영하다 보니 교수가 연구에 집중해 학생 교육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가 어려워요. 학생들을 멘토링 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닐뿐더러 시간마저 뺏기면 공고하게 자리 잡기가 어렵죠. 교수가 연구실적에 쫓기다 보면 자칫 학생들을 자신의 연구를 돕는 엑스트라로 생각할 수도 있고요. 교수는 일단 연구원이 아닌 선생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학생들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도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대학과 정부는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교수를 지원해야 할 것이고요.”

    변화가 필요한 대상은 비단 교수와 대학만이 아니다. 학생 자신도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문했다.

    “요즘 많은 학생이 진로나 진학을 계획할 때, ‘안정성’을 첫 번째 우선순위로 두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어요. 예컨대, 이과 최상위권 고교생 중에는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의대로 많이 진학한다고 하죠. 하지만 이는 과거의 환경과 관점만 고려한 것으로, 수많은 직업이 탄생하고 없어질 수 있는 미래를 예측했다면 결코 바른 선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시각에서 생각하고 무엇이든 도전하고 개척하려는 자세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 / 양수열 기자
    ▲ / 양수열 기자
    ◇그룹형 연구 프로젝트로 학생 협업 역량 강화

    융복합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그의 의지를 반영한 듯, 실제 디지스트는 무학과 단일학부 체제로 운영된다. 모든 학생이 융복합대학 기초학부로 입학한 다음, 4학년이 되면 각자 선택한 진로에 따라 집중 심화교육을 받는 형태다. 손 총장은 “전체 대학생을 대상으로 무학과 단일학부 커리큘럼을 운영하는 대학은 디지스트가 전국에서 유일”하다며 “디지스트의 융복합 인재 교육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자부했다.

    “본교의 융복합 교육에 대한 관심은 국내외를 막론해요.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교육관련 학술행사에 참가해 1000여명의 세계 각국 대학관계자들 앞에서 융복합 교육에 대한 강연을 했습니다. 그때 많은 분들이 계속 저를 찾아와 창의적이고 혁신적이라면서 융복합 교육에 큰 관심을 보였죠. 어느 대학 부총장님은 평소 2020년쯤에나 대학에서 전공이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디지스트가 이렇게 빨리 융복합 교육을 하고 있어서 놀랍다고 하시더군요. 비단 해외대학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관심이 커요. 그런데 다른 학교의 경우 필요성은 인지하지만, 기존 학과 간의 생각들이 달라 완벽하게 이뤄지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디지스트는 이공계 특성화 대학 중에 후발주자인 대신 융합 전공을 처음부터 디자인해 출발했다는 점에서 어려운 과제를 해낼 수 있었지요.”

    디지스트 융복합 교육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룹형 연구 프로젝트(UGRPㆍUndergraduate Group Research Program)다. 다양한 전공의 3ㆍ4학년생 5명이 한팀이 돼 디지스트 학부 및 대학원 교수 등의 지도로 융복합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형태다. 학생들의 협업적 연구 역량을 강화하고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기 위해 2016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앞으로는 지역 내 기업이 당면한 기술과제 등을 해결하는 형태의 산학협력 프로젝트를 UGRP에 도입하려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그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올린공과대학, 하비머드공과대학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유명 공과대학에서는 산학협력을 활발히 수행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해 안타까웠다”며 “앞으로 전문성 강화를 토대로 지역 기업과 활발히 논의해 서로 상생하는 모델을 구축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