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모범생이었지만, 제 아이는 모험생이기를 바랍니다.”
방종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8.04.03 16:44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출신 워킹맘 김현정 저자 인터뷰

  • 교육전문가 김현정씨는 “부모가 늘 곁에서 아이를 위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버리고 아이 스스로 어디서든 살아남을 근성을 키우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신영 기자
    ▲ 교육전문가 김현정씨는 “부모가 늘 곁에서 아이를 위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버리고 아이 스스로 어디서든 살아남을 근성을 키우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신영 기자

    자타공인 모범생이 있었다. 대회만 나가면 1등을 거머쥐었고, 성적은 늘 최상위권이었다. 명문대에 이어 카이스트 경영대학원을 수석 졸업한 그녀는 LG전자와 굴지의 외국계 기업 등에서 이력을 쌓았다. 늘 알파걸이었던 김현정(43)씨는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두 자녀에게 절대 모범생이 되지 말라고 조언한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교육전문가로 활동하며 자신의 교육관을 나누는가 하면 최근에는 ‘똑똑한 모험생 양육법’(스마트북스)이라는 교육서도 펴냈다.

    “제 아이는 공부만 잘하는 우등생, 모범생이 아닌 도전을 즐기는 모험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과거의 성공방식을 우리 아이들에게 대입해서는 안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죠. 좋은 대학을 나와서 대기업 임원이 되는 것이 성공인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부모가 감지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틀 안에서 최선의 답을 만드는 모범생이 아니라, 틀을 넘어 무엇이든 도전하고 부딪혀 기회를 만드는 모험생으로 키워야 합니다.”

    ◇ “자녀 교육의 좌표를 이동하라”

    어느 자리에서든 승승장구하던 그는 아이를 낳은 다음 좌충우돌을 겪었다. 그는 당시를 인생이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혹독하게 깨달은 시기였다고 회상한다. 틈만 나면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진땀을 흘리고, 아이를 돌보느라 1~2시간밖에 못 자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육아도우미에게 의지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이었다. 첫째가 이유없이 보채는 것이 계속돼 병원을 찾았는데, 신장에 이상이 있으며 아직 치료법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듣자마자 김씨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첫째가 세 살, 둘째가 고작 돌 무렵이었어요. 워킹맘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자 이를 악물고 일해서 초고속 승진을 앞두고 있었죠.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고 자책하고 원망했지만 그런다고 달라질 게 없었어요. 결국 퇴사하고 매일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아이 곁을 지켰습니다.”

    몇 년간의 지극정성 끝에 아이는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김씨도 예전의 일상대로 조금씩 돌아갔다. 교육대학원에 입학해 공부를 마치고는 새로운 직장을 찾아 입사했다. 그럼에도 공부에 대한 갈증이 남아 박사학위에 도전할까 싶어서 은사를 찾았을 때의 일이었다. 그는 뜻밖에도 “무엇을 하고 살고 싶으냐”는 질문부터 꺼냈다. 어찌 보면 평범한(?) 질문에 김씨는 말문이 막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앞만 보며 살아왔지만, 정작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탓이었다.

    “스물여덟 살에 결혼해 두 아이를 낳고 아픈 아이의 병시중까지 하며 정신없이 살다가, 아이가 병에서 낫자 갑자기 인생의 목표가 사라져버린 듯 공허함을 느꼈어요. 제 삶을 반추해보니, 공부만 열심히 했지 왜 공부를 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목표가 뚜렷하지 않았던 거죠. 중요한 고민은 하지 않은 채, 경주마처럼 살아온 과거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을 둘러봤다. 자신처럼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앞만 보며 달리는 사람들이 즐비했다. 그는 “청소년기에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라며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은 저와 같은 방황을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결심을 굳힌 결정적 계기도 있었다. 갑자기 가슴이 아파서 병원에 갔다가 말기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던 것이다. 결국 몇번의 검사 끝에 오진이었음이 밝혀졌지만, 그 과정을 통해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행복”이라며 “공부를 잘하는 것이 최우선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즐기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진짜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 / 이신영 기자
    ▲ / 이신영 기자
    ◇엄마가 평균을 버리면 아이는 특별해진다

    생각이 깊어지자 교육관도 차츰 달라졌다. 그는 일단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일절 하지 않는다. 성적표도 웬만하면 살피지 않는다. 방과 후 아이들에게 숙제를 권유하기보다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물으며 시시콜콜한 주제까지 대화를 나눈다. 아이들의 관심사는 무엇이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다. 또래들과 다른 행동을 한다고 해서 질책하지도, 그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는다.

    “아이는 직선으로 성장하지 않아요. 곡선으로 자라죠. 그 곡선의 기울기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독특하고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직선을 기준으로 아이를 내몰아서도 안 되고, 평균을 기준으로 줄 세워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단지 아이가 지치지 않고 용기를 내어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표현으로는, 무엇이든 알아서 잘하는 첫째와 달리 둘째는 조금 유별나고 특별하다. 한때는 왕따였고, 때로는 사고를 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씨는 아이에게 지적이나 질책을 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스스로 부딪히고 그것을 통해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현재 둘째는 공부보다는 자전거에 푹 빠져 있다. 또래 친구들과 다르다는 점으로 인해 받은 마음의 상처를 자전거를 타면서 극복하다 보니 어느새 푹 빠졌다. 타는 것뿐만이 아니라 조립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런 그를 위해 김씨는 베란다를 통째로 내줬다. 그곳에서 둘째는 매일 자전거 조립을 하며 훗날 자전거 플랫폼 사업가로서의 꿈을 키우고 있다.

    “둘째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갑자기 해돋이를 보고 싶다며 새벽 4시에 일어난 적이 있어요. 여느 집 같았으면 말렸겠지만,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아침잠 많은 아이가 일찍 일어났을까 싶어 막지 않았죠. 아이는 집을 나간 지 2~3시간이 지나 집에 들어왔어요.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을 달려 해돋이를 보고 왔다고 하더라고요. 당장 하고 싶은 일을 공부 때문에 또는 나이 때문에 미뤄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현재 교육기업에서 전략팀장으로 재직 중인 김씨는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아이들이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은 이런 부모의 가르침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그는 “실패를 하고 그것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아이는 더 단단해지고 내공이 생긴다”며 “부모가 실패는 무조건 나쁜 것이며, 모든 문제를 기존에 알려진 정답으로만 해결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저는 둘째가 성적 면에서 뒤떨어진다고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저 자신이 모범생으로 살았기에 그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죠. 좋아하는 일을 찾아 열심히 하고, 사회에 선의의 가치를 제공하면 성공과 행복은 따라온다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