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 안 사면 단톡방 퇴출” 대입정보 ‘미끼’로 학부모 우롱한 교육매체 대표
손현경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8.03.21 06:25

- 교육청 출입기자·입학정보로 학부모에게 접근…“학부모 불안 심리 이용”
- 현직 교사 수업내용 동의 없이 반영한 진학참고서 발간
- 학부모 민원에도 교육부 ‘뒷짐’…“일반인에다 산하 언론 아냐”

  • 대학을 잘 보내주겠다는 명목으로 학부모로부터 수험생 개인정보와 강사 후원금을 모으고, 자신이 발간한 책을 사게끔 유도한 온라인 교육매체 발행인 겸 편집국장 A씨를 상대로 학부모들이 단체행동에 나섰다.

    21일 피해자 학부모들은 “학생부 등 학생들의 개인정보를 주면 대학을 잘 보내주겠다고 권유하는 등 사실상 입시컨설턴트처럼 영업했으면서도 ‘언론’이란 이름 뒤에 숨어 학부모를 속여왔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최근 A씨를 처벌해달라고 교육부 국민신문고에 집단으로 민원을 제기한 상태다.

  • 온라인 교육 매체인 B 일보를 운영하는 A씨가 자신이 만든 진학참고서를 사지 않는 사람은 단톡방에서 나가라는 메시지가 담긴 카카오톡 갈무리(왼쪽). 피해자 학부모들의 단톡방 내용 갈무리(오른쪽)
    ▲ 온라인 교육 매체인 B 일보를 운영하는 A씨가 자신이 만든 진학참고서를 사지 않는 사람은 단톡방에서 나가라는 메시지가 담긴 카카오톡 갈무리(왼쪽). 피해자 학부모들의 단톡방 내용 갈무리(오른쪽)
    ◇ “교육청 출입기자가 직접 대입 정보 알려준다”에 ‘솔깃’
    A씨는 ‘서울 주요 대학 출입기자’, ‘시ㆍ도교육청 출입기자’ 등을 내세워 2만9000여 명의 온라인 커뮤니티(네이버 밴드) 회원을 끌어모았다. 그가 운영하는 B일보는 ‘기자 본인 비용으로 취재 활동을 하고, 비즈니스를 하지 않겠다’며 2015년 5월 문을 열었다. A씨는 해당 매체 홈페이지 메인화면에 ‘국회교육체육문화관광위원회’, ‘교육부’, ‘주요 대학 출입처’ 등으로 표시함에 따라 출입기자가 아님에도 그렇게 보이도록 유도했다.

    A씨는 매체와 함께 2015년부터 운영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카카오톡 단체방의 주소(URL)를 알려주며 학부모를 유입시켰다. 자유롭게 입시 정보를 나눌 수 있다는 점과 학부모들의 ‘수험생 대입 준비’ 스트레스를 해소할 곳이 마땅히 없다는 점을 교묘히 파고든 것이다.

    단톡방이 활성화되자 그는 ‘좀 더 체계적인 대입 정보를 주겠다며 여러 개의 세부 단톡방을 만들고, 아이들의 학교생활기록부가 필요하다’며 개인정보를 요구했다. 피해 학부모들은 “교육청ㆍ명문대학 출입기자인데다 입시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는 생각에 아이들의 개인정보를 별다른 고민 없이 제공했다”며 “당시에는 ‘좋은 대학에 우리 아이를 보내려면 무엇을 못하겠는가’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다”고 토로했다.
  • B 일보가 A씨를 저자로 발간한 진학참고서. 해당 참고서는 카카오톡 대화를 그대로 짜깁기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 B 일보가 A씨를 저자로 발간한 진학참고서. 해당 참고서는 카카오톡 대화를 그대로 짜깁기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 회원 상대로 진학참고서 판매ㆍ후원금까지 모아

    이후 단톡방은 A씨의 입시 사업을 위한 발판으로 오용됐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A씨가 만든 진학참고서 판매다. 해당 책은 각각 ‘기억의 폭포’와 ‘진로희망은 뿌리가 아니라 꽃이 되어야 한다’로 한권당 3만원에 판매됐다. 책에는 A씨가 온라인 커뮤니티 학부모 회원들과 카카오톡으로 대화한 내용 80% 이상이 수록돼 있다. 책 내용을 살펴보면, ‘오오’ ‘ㅠㅠ’ ‘ㅋㅋ’ 등 메신저에서나 쓸법한 추임새 등으로 가득하다.

    피해 학부모는 “책을 사지 않거나 사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치는 학부모들은 단톡방에서 강제 탈퇴를 당했기 때문에 입시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사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A씨는 책이 발간된 직후(1월 21일) “이 정도도 구매하지 않는 분은 (단톡방을) 나가주시기 바랍니다”며 회원들에게 말했다. 해당 책은 지난 1월부터 현재까지 약 500권이 팔렸다.

    학부모들에게 강요한 것은 책뿐만이 아니다. A씨는 ‘카카오톡 유료방’을 만들어 영리 활동에 치중하기 시작했다. 학부모들을 상대로 강사 영입 등을 위한 후원금을 모집하며 짭짤한 수익을 올리기 시작한 것. 피해자들은 “A씨가 ‘자신의 진학ㆍ진로법을 나누기 위해서는 전문가 한 명이 같이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90여명의 학부모 회원에게 1인당 월 5만원씩 6개월 또는 3개월분 회비를 계좌로 입금하게 했다”며 “카톡 유료방으로만 2000여만 원의 수익을 올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 A씨는 본인을 '경기도교육청 출입기자' '서울주요대학 출입기자'라 설명하고 있다(왼쪽). 카카오톡 내화내용이 대부분인 A씨의 진학참고서 일부 갈무리(오른쪽).
    ▲ A씨는 본인을 '경기도교육청 출입기자' '서울주요대학 출입기자'라 설명하고 있다(왼쪽). 카카오톡 내화내용이 대부분인 A씨의 진학참고서 일부 갈무리(오른쪽).
    ◇현직 교사들 “동의 없이 콘텐츠 사용” 지적

    A씨가 발행한 진학참고서를 살펴본 교육 업계 관계자는 ‘문제투성이’라고 입을 모았다. 조효완 전국진학지도협의회 고문위원은 “A씨의 강의 콘텐츠와 최근 발간한 책 내용에는 현직 교사들의 수업 내용이 동의 없이 그대로 반영됐다”고 지적했다. 한 입시업체 관계자는 “메신저 대화내용을 당사자의 동의 없이 책에 반영한 것은 개인정보 유출에도 해당된다”며 “해마다 복잡해지는 입시제도 등 입시 정보 획득에 어려움을 겪는 학부모들의 불안 심리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확인 여부를 위해 기자와 직접 만난 A씨는 “강사 한 명에게 월급 250~300만원을 주기 위해서는 후원금이 필요했다”며 “주민등록번호도 아닌 학생부와 내신성적 등이 개인정보로서 크게 문제가 되는지 몰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일부 학생은 성적을 올려줬으며, 교육은 공공재(公共財) 성격이 있기 때문에 무단 도용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한편 이 사건에 대한 민원이 제기됐음에도 교육부는 ‘소관이 아니다’며 뒷짐을 지는 상태다. 교육부 반부패청렴담당실 관계자는 “해당 사건을 경기도남부지방경찰청 수원중부경찰서로 넘겼다”며 “A씨가 대학교수나 교사가 아니고 일반인인데다 교육부가 처리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