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민의 PERFECT ESSAY] 명사보다 동사가 싱싱하다
조선에듀
기사입력 2018.03.16 09:28
  • 이번 포스트는 지금까지 배운 기본기를 바탕으로 조금 더 세밀한 고급 라이팅 영역으로 들어가 본다.

    다음 두 문장을 비교해 보자.

    1) We saw the building destroyed.
    2) We saw the destruction of the building.

    “우리는 건물이 파괴되는 것을 봤다”는 같은 뜻인데, 동사 “destroyed”와 명사 “destruction”의 차이가 있다. 일단 한 눈에 보더라도 1번 문장이 간결하고 산뜻한 반면, 2번 문장은 무겁고 진지하다.

    2번처럼 명사를 사용하는 것을 명사화(nominalization)이라고 한다. 명사를 쓰면 새로운 단어를 추가해야 하기 때문에 문장이 복잡해진다. 여기선 관사 “the”와 전치사 “of”를 추가했다. 아무래도 읽을 때 집중력이 분산되므로 한 번에 눈에 들어오지 않아 읽기 불편하다. 

    그런데 좀 더 깊게 들어가 보면, 두 문장은 미묘한 의미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사를 쓴 1번은 건물이 파괴되는 행위에 주목하는 반면, 명사를 쓴 2번은 건물이 파괴됐다는 결과에 집중한다. 즉, 1번은 구체적 묘사에, 2번은 일반적 현상에 포인트를 둔다. 이것을 알고 다시 한 번 두 문장을 비교해 읽어보면 그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따라서 문장 안에 동사가 많으면 싱싱한 활어처럼 생동감이 있다. 반대로 명사가 많으면 학자처럼 진지하고 차분하다.

    그렇다면 둘 중 무엇을 써야 할까?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해선 생명력있는 글이 으뜸이므로 동사를 많이 쓰기를 추천한다. 명확하고 강렬한 동사(strong verb)이 좋은 문장의 핵심이라는 것은 이미 설명한 적 있다. 이는 현대 문체의 최우선 원칙인 간결함(conciseness)에도 잘 부합한다.

    영작문 교재의 바이블이라 일컫는 “The Elements of Style (E. B. White & William Strunk, Jr)”에 등장하는 다음의 예를 보자. 명사를 볼드체로 표현했다.

    (교정 후) The establishment of a different approach on the part of the committee has become a necessity.
    (교정 전)
    The committee has to approach it differently.

    두 문장은 사실상 같은 의미이지만, 윗 문장이 명사화의 폐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윗 문장은 명사가 5개인데 아래 문장은 1개만 썼다.

    그렇다면 명사화(nominalization)이 항상 나쁠까? 그렇지 않다. 가령 “happiness” “fulfillment” 등 이미 명사로 편하게 쓰는 것을 굳이 동사나 형용사로 바꿀 필요 없다. 또한 문장이 행위보다 결과에 포인트를 둬야 할 때도 명사화가 더 적합하다.

    하지만 한국 유학생들이 고급 라이팅을 배우면서 생기는 대부분의 문제점이 ‘과도한 명사화’이기 때문에 일단 최대한 명사화를 줄이는 쪽으로 훈련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읽다보면 숨막힐 정도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경우가 많은데, 홈런은 힘으로 때리는 게 아니다.

    허세가 가득하면 읽기 불편하다. 글이 편해야 읽는 사람도 즐겁다.

    다음 아이비리그 등 명문대에 진학한 학생들의 실전 사례를 보자.

    <Level 1>
    (교정 전) She was upset because of her husband’s coming late.
    (교정 후) She was upset because her husband came late.

    문법책에선 “because of + 구(phrase)”, “because + 절(clause)”로 둘 다 가능하다고 하지만 문체상으로는 명사화를 피하기 위해 “because”가 “because of”보다 나은 게 대부분이다.

    <Level 2>
    (교정 전) An excess of dependence on technology to relieve pain and distress can invoke the disability of people to reason and think creatively.
    (교정 후) Excessive dependence on technology to relieve pain and distress can disable people to reason and think creatively.

    과도한 명사화로 숨이 막히는 케이스. 한 눈에 문장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겹다.
    명사 “excess”를 형용사 “excessive”로, 명사 “disability”를 동사 “disable”로 바꾸니 훨씬 산뜻하고 생동감있다.

    <Level 3>
    (교정 전) One may think abolition of slavery obtained its accomplishment by a few critical incidents; however, it was actually the result of the accumulative expansion of freedom by the step by step procedures, not by sudden uprisings or revolts.
    (교정 후) One may think slavery was abolished by a few critical incidents; however, it actually resulted from the expansion of freedom by the step by step procedures, not by sudden uprisings or revolts.

    “abolition of slavery obtained its accomplishment”라는 짧은 표현에 명사가 무려 3개나 있어 숨쉬기도 어렵다. 명사를 하나만 써서 “slavery was abolished”로 바꿀 수 있다.

    그 다음 “it was actually the result of the accumulative expansion of freedom”은 허세가 하늘을 찌른다. 명사 “result” 하나만 동사로 바꿔줘도 훨씬 느낌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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