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파장]쏟아지는 성범죄 기사에… “우리 아이 볼까 걱정돼요”
신혜민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8.03.14 15:35

-미투 옹호하지만…“성(性) 호기심 많을 나이에 자극적인 기사로 우려”
-전문가 “이를 계기로 성교육 제대로 개선해야”

  • /조선일보 DB
    ▲ /조선일보 DB
    주부 이주연(가명·45)씨는 얼마 전 중학교 2학년 아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읽는 인터넷 기사를 보곤 깜짝 놀랐다. “개그맨 A씨 ‘자신의 XX 만져달라’ 폭로” “‘가슴 3초만 보여줘’ 유명드러머 B씨 논란” “C 감독, ‘셋이서 자자’ 말해” 등 낯 뜨거운 내용이 포함된 기사들이었기 때문이다. 연일 확산되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으로 사회 유명인들이 왜곡된 성(性) 의식으로 인해 성폭력을 저질러 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와 관련된 기사들이 계속해 국내 유명 포털 사이트에 오르고 있다. 이씨는 “요즘 미투 운동으로 인터넷 검색만 해도 이상야릇한 얘기가 넘쳐난다”며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건 좋지만, 아이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인터넷에서 너무 적나라하고 자극적인 기사가 날마다 쏟아지니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미투 운동을 다룬 기사가 연일 보도되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초등학생과 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나날이 늘고 있다. 10대 청소년들의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이 활발해지면서 이런 자극적인 기사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터넷에서는 미투 운동으로 검색만 해도 피의자가 피해자에게 가한 성범죄 행위가 상세하게 묘사된 내용이 떠돌고 있다. 이에 일부 학부모들은 아직 올바른 성 지식과 가치관이 갖춰지지 않은 자녀가 이 같은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영향을 받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중학생 아들을 둔 김은아(가명ㆍ43)씨는 “어른인 제가 봐도 민망한 내용이 너무 많이 기사화돼 나오고 있다. 한창 사춘기인 우리 아이가 볼까 겁이 날 정도”라며 “실제로 성추행·폭행을 했는지에 대한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성범죄가 우리의 일상 속으로 너무 깊숙이 들어오고 가볍게 다뤄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아울러 피의자들이 대개 사회 유명인이라는 점을 걱정하는 부모들도 있다. 아직 성인보다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10대들은 유명인의 사소한 말 한마디나 몸짓 하나에도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고, 나아가 모방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도 크기 때문. 미투 운동에 지목된 가해자 중에서는 연예인, 정치인 등 미디어를 통해 청소년에게 친숙한 인물들이 대다수다. 최근엔 학생들이 보는 교과서에서도 미투 가해자로 비판을 받고 있는 고은 시인과 이윤택·오태석 연출가의 작품·인물소개가 실려 논란이 일었다. 이에 교육부는 지난 8일 검정교과서 출판사와 집필진 의견을 취합해 중·고교 교과서에 수록된 이들의 작품과 인물소개 등을 삭제하고 다른 내용으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걱정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선 먼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부터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특히 학교에서부터 효과적인 성교육이 이뤄진다면 학생들이 이런 자극적인 기사 속에서도 올바른 성 지식을 바탕으로 현혹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아직 교내 성교육은 기초적이고 시대에 동떨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남성성을 ‘강하고 모험적이고 경쟁적’, 여성성을 ‘민감하고 말 많고 다정한’ 등으로 이분화하는가 하면, ‘이성과 단둘이 있을 때 성적 충동이 일면 사람이 많은 곳으로 나가라’는 식의 해법만 제시하고 있다. 또한, 그나마도 다른 학과 교육에 밀려 의무적으로 지정된 성교육 시간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는 학교도 있다. 이에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3일 "성차별과 성희롱, 성폭력 관련 종합대책을 범정부 차원에서 마련할 것"이라며 "특히 성교육을 비롯한 교육시스템과 인식 개선에 중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른 보다 구체적인 추진 계획은 오는 23일 2018년 제3차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논의할 예정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양성평등 교육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피해자들의 용기에서 비롯된 미투 운동이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에게 피해자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닌 가해자가 되지 않을 것에 중점을 두고, 실질적인 양성평등을 실현하는 토대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설규주 경인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는 “성범죄를 보다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학교 내 성교육뿐 아니라 양성평등 교육도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며 “이번 미투 운동을 계기로 어렸을 때부터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인격이라는 가치관을 심어 주고, 나아가 인권, 윤리 등 보다 넓은 차원에서의 장기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