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문장 암기ㆍ이미지 연상 훈련으로 “영어뇌 만들어 보세요”
신혜민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8.03.07 15:30

-‘신경과의사의 영어뇌 만들기’ 저자 류상효 신경과 전문의 인터뷰
-“습관 통해 뇌 단련시키면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영어 잘할 수 있어”

  • 류상효 신경과 전문의는 통문장 암기와 이미지 연상법을 통해 누구나 영어 학습에 최적화된 ‘영어뇌’를 만들 수 있다고 조언한다. /조현호 객원기자
    ▲ 류상효 신경과 전문의는 통문장 암기와 이미지 연상법을 통해 누구나 영어 학습에 최적화된 ‘영어뇌’를 만들 수 있다고 조언한다. /조현호 객원기자
    “의사라고 해서 모두 날 때부터 똑똑한 건 아닙니다. 저는 중학생 때 지능지수(I.Q) 검사에서 109점을 받았을 만큼 뛰어나지 않았으며, 반 평균 등수도 언제나 60명 중 40~50등 사이였죠. 의과대학도 5번의 도전 끝에 합격했어요. 그런 제가 서른이 넘어 일과 병행하며 독학으로 영어를 깨쳤어요. 여러분도 누구나 영어를 잘할 수 있습니다. ‘영어뇌’를 만드는 훈련만 한다면요.”

    ‘입시용 영어’에만 매여 외국인을 만나면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하던 서른한 살의 신경과 전문의가 흔한 사교육이나 해외 어학연수 없이 오직 독학으로 영어 달인이 됐다. 라디오 영어 전문 프로그램에서 수년간 외국인을 위한 건강캠페인을 진행하고, 현재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를 통해 영어 학습법 칼럼도 연재 중이다. 이처럼 어려운 일을 현실로 만든 류상효(45·사진)씨는 인터뷰 내내 특유의 유쾌함으로 대화를 이끌어갔다. 그는 “어려서부터 외국에 살거나 학원에 다녀야만 영어를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라”면서 “뇌를 단련시키면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원어민처럼 유창하게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늘 영어에 주눅이 들었던 학생… 서른 넘어 영어 공부 시작

    학창시절 류씨는 언제나 영어 앞에서 위축되는 학생이었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영어를 체계적으로 배우기보단 정답 맞히기에 급급한 입시용 영어에 매진했고, 늦깎이 의대생이 돼서는 유학파 또는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온 어린 친구들에게 밀려 영어 한마디 내뱉기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사건이 일어났다. 서른한 살 갓 전문의 시험을 통과하고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던 당시, 때마침 인기였던 미국 시트콤 ‘프렌즈(Friends)’를 보게 된 것이다. TV 스피커에선 등장인물들의 대화에 맞춰 깔깔대는 음향효과가 수없이 흘러나왔지만, 그는 한순간도 웃을 수 없었다.

    “영문 자막을 내려받아 읽어봤더니 중학교 수준의 쉬운 단어로 이뤄진 문장이 대다수였어요. 수많은 의학 관련 영어원서를 읽으며 공부했는데,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저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어요. 그들의 대화에 참여하고 함께 웃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죠. 그날 이후 제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튿날부터 그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영어 학습에 최적화된 ‘영어뇌 만들기’에 돌입했다. 우선 어렵고 복잡한 문법을 따져가며 영어를 익혀야 한다는 고정관념부터 떨쳤다. 그가 가장 먼저 선택한 학습법은 ‘재미있게 통문장 외우기’. 이때 중요한 것은 바로 ‘재미’다. 우리의 뇌는 어떤 부분에서 흥미를 느끼면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고 활성화하는 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또 다양한 문장을 통째로 외우면서 자연스레 회화는 물론 단어와 문법까지 습득했다.

    “좋아하는 미국 드라마와 영화 속 대사 위주로 외우며 재미있게 공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때 단순히 외우는 것을 넘어 문장에 담긴 감동과 의미까지 함께 느끼며 학습했어요. 우리의 뇌는 시각적인 것보다 이미지로 상상할 때 훨씬 더 오래 기억할 수 있거든요. 예컨대, ‘음미하다’는 뜻의 ‘savor’가 나오는 문장에서는 두 눈을 감고 맛있는 걸 먹는 상상을 하는 거죠. 이처럼 단어를 머릿속에서 이미지화해 기억하려고 했습니다.”

    아울러 류씨는 ‘생활형 공부’를 택했다. 바쁜 병원생활을 하면서 따로 시간을 내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스마트폰 기본 언어를 영어로 설정해 사용했다. 인터넷 검색도 국내 포털 사이트 대신 해외 사이트를 이용했고, 출퇴근 시간엔 영어신문 사이트를 통해 국내외 최신기사를 읽었다. 그는 “자투리 시간을 아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다”며 “직장에서 동료와 잡담하는 시간을 아껴 라디오 영어 방송을 듣고, 퇴근 후 집에서 아이와 놀아줄 때도 영어 동화책을 외워 들려주는 등 생활 속에서 공부했다”고 말했다.

    혼자 깨치기 어려운 부분은 EBS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수준에 맞는 강의를 무료로 볼 수 있는 EBS는 시간을 쪼개 공부해야 하는 그에게 그야말로 최적의 학습메이트였다. 그는 “듣기와 쓰기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매일 아침 즐겨듣던 EBS 라디오 영어 프로그램의 오프닝 멘트를 받아적기 시작했다”며 “2분 남짓한 대화를 받아적는 데 처음엔 2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이를 매일 반복하다 보니 3년 후엔 30분이면 충분해졌다”고 말했다.

  • /조현호 객원기자
    ▲ /조현호 객원기자
    ◇'영어뇌 만들기'로 영어 달인 되다

    현재 류씨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영어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수년간 고정으로 출연하고 있다. 최근엔 자신의 뇌과학적 전문지식과 영어 공부 경험을 바탕으로 ‘신경과의사의 영어뇌 만들기(바른북스)’도 펴냈다. 그는 자신처럼 뒤늦게 영어에 도전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뇌를 리모델링하는 훈련을 하라”고 조언한다. 대개 뇌의 성장은 사춘기에 거의 완성되며 추후 노화한다고 알고 있지만, 뇌를 어떻게 사용하고 다루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치매 환자들도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뇌 훈련을 꾸준히 하면 인지 기능이 조금씩 호전되고 뇌의 형태가 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며 “이처럼 꾸준히 집중력·반복학습·암기를 통한 뇌 훈련을 한다면 누구든 나이에 상관없이 ‘영어뇌’를 만들 수 있다”고 전했다.

    “뇌의 변화는 ‘습관’을 통해 이뤄집니다. 매일 꾸준히 무언가를 학습하고 노력한다면 우리 뇌는 새로운 신경회로를 만들고 성장해요. ‘나이가 들어 뇌가 굳었다’며 도전해보지도 않고 포기하기보단 긍정의 힘을 믿고 학습을 습관화해 단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작은 병 속에 갇혀 스스로 한계에 가둬버리는 벼룩이 되지 말고, 자신의 잠재력을 믿고 도전하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