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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부르는 게 값?… 강남 학원가 '고스트라이터' 성행

김은중 기자

2018.03.02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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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글쓰기 원고부터 대입 자소서까지 '대필'
보통 A4 장당 2만~3만원… 작가 출신이 나서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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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의 한 자사고에 재학 중인 정모(18)양은 지난 학기 교내 영어 말하기 대회를 앞두고 미국에서 저널리즘(언론학)을 전공했다는 석사 출신의 프리랜서에게 원고를 청탁했다. 70만원을 지불하니 이틀 만에 A4 용지 3장 분량의 원고가 '뚝딱'하고 만들어졌다. 정양은 이 원고를 외워 대회에 나갔고 입상에 성공했다.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는 최모(19)군 역시 지난해 '다채로운 학생부'를 만들겠다는 명목으로 경제 문제를 주제로 한 소논문을 작성했다. 그는 "유학파와 국내 명문대 국제학부 재학생 등 두 명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한글과 영문으로 작성된 10장 분량의 소논문에 최군의 부모가 지불한 금액은 100만원에 달했다. 최씨의 부모는 "내신과 수능 준비로 바쁜 아이가 학생부를 위한 소논문을 쓸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대치동 등 강남 일대 학원가를 중심으로 '고스트라이터(대필 작가)'들이 성황리에 영업 중이다. 과외 구인 사이트 등 인터넷엔 대필을 의뢰하는 글들이 수십 건씩 올라와 있다. 이들은 수행 평가와 교내 말하기·글쓰기 대회 원고, 소논문과 자기소개서 등 학생부 종합전형(이하 학종)을 준비하는 데 꼭 필요하지만 시간이 많이 드는 '계륵(鷄肋)' 같은 일들을 맡아 한다고 알려져 있다. 학종은 학생의 내신 성적 등 교과 영역과 수상 실적, 독서·동아리 활동 등 비교과 영역을 두루 평가하는 전형이다. 전체 대입 선발 인원 중 학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5학년도 15.7%에서 2019학년도엔 24.3%까지 높아졌다. 대치동의 한 보습학원 상담실장은 "학생들은 내신 대비에 집중하고, 품이 많이 들지만 변별력은 크게 없는 각종 글쓰기 과제들은 모두 위임하겠다는 '대치동 엄마'들의 입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고스트라이터들의 급(級)은 천차만별이다. 명문대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이 대부분이지만, 작가 출신이 소일거리로 대필에 나선다는 얘기도 있다. 적게는 A4 용지로 장당 2만~3만원을 받지만 상한선은 없다. 대학 입시용 자기소개서의 경우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한다. 서울 강북 지역의 한 학부모는 "사교육을 잡겠다고 도입한 학종에서 부모의 재력이 가장 중요해지는 아이러니한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고스트라이터들은 의뢰인과 대면하는 일이 없다. 학생들이 이들의 존재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현모(45)씨는 지난해 서울 소재 한 명문 사립대에 재학 중인 학부생에 1년에 네 번 있는 영어 수행 평가용 말하기 원고를 회당 10만원에 발주했다. 마감 기한을 정해주면 이메일로 원고를 보내왔고, 이후 몇 번의 수정 과정을 거쳤다. 단 한 번의 일면식도 없었다. 현씨는 "오고 가는 불필요한 시간도 아끼고 서로 윈·윈 아니냐"고 했다.

자기소개서의 경우 각 대학에서 표절 프로그램 등을 도입해 유사도 검증을 철저하게 하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내에서 진행되는 수행 평가나 글쓰기 과제 등은 대필·표절 여부를 검증하기가 마땅치 않다.

이런 탈법(脫法)의 횡행은 성적과 글쓰기 능력이 무관함을 보여준다. 지난해 서울대가 자연과학대 신입생 25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글쓰기 능력 평가에선 10명 중 4명가량이 '글쓰기 능력 부족'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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