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중학교 교사도 사춘기 아들이 낯설었습니다”
오푸름 조선에듀 인턴기자
기사입력 2018.02.22 16:26

-박형란 서울 면목중 교사에게 듣는 사춘기 아들 코칭법
-아들에 대한 기대 낮추고, 책임감 심어줘야

  • 박형란 서울 면목중 교사는
    ▲ 박형란 서울 면목중 교사는 "30년동안 중학교에서 남학생들을 가르쳤음에도 사춘기 아들 교육은 어렵더라"며 "아들의 심리를 이해하게 되면서 학교에서 남학생들을 보는 시선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김종연 기자
    “중학교 교사로서 수많은 남학생을 가르쳤지만, 두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가고서야 비로소 아들 부모가 된다는 게 어떤 건지 절절히 체험했습니다.”

    14일 광화문역 근처 한 회의실에서 만난 박형란 서울 면목중 교사는 이 같은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박 교사는 33년 간 중학교에서 수많은 남학생들을 가르친 동시에 아들 둘을 키운 엄마이기도 하다. 박 교사는 “아들이 처한 상황과 그 심리에 관해 선배 엄마로서 후배 엄마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교사로서 지도하는 입장일 때는 남학생을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일이 쉬웠어요. 하지만 막상 엄마로서 아들의 사춘기를 겪어보니 인정은커녕 높은 기대치를 가진 탓에 배신감이 들더군요. 당시 아들의 언행을 잘 이해하지 못해 하루하루가 정말 고통스러웠어요.”

    ◇사춘기 아들에겐 ‘돌파구’가 필요하다
    대다수 남학생은 초등학교 4학년쯤부터 사춘기를 겪기 시작한다. 박 교사는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이 보이는 증상에 대해 설명했다. “열한살에서 열두살 정도가 되면 아들의 뇌가 성인의 뇌로 발달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아이들은 ‘나 좀 내버려두세요’ ‘제 방에 들어오지 마세요’라며 큰 소리 내는 등 부모에게 신호를 보내요. 독립의 욕구가 생겼기 때문이죠. 이전과 달라진 아들의 모습과 일상적인 대화 내용을 직접 메모해 보면 차이를 알 수 있어요. 저는 아들이 뭐라고 했는지 그날그날 되새기며 의성어처럼 세세한 표현까지 그대로 옮겨 적었습니다. 아들은 ‘에이, 우리집은 맨날 이렇게 답답해’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나도 못 하게 하네’ 등의 말을 했습니다.”

    이 시기 남학생은 대개 학교에서 학습에 대한 의욕이 없고, 태도도 산만해진다. 성적도 여학생보다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박 교사는 “남학생들이 집단에 소속돼 사회적 책임감을 부여받을 기회를 충분히 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남학생들이 소속 집단에서 꾸준히 책임감을 갖고 도전하며 사춘기 증상을 약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교사는 미국 사례와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이를 설명했다. “미국 학생들도 숙제를 포함한 공부 양이 정말 많습니다. 그렇지만 미국 아이들은 낮에 학원을 가지 않고 동아리나 체육 활동을 하며 지냅니다. 대신 자신이 선택한 활동에 대해 책임을 지기 위해 밤늦게까지 각자 숙제를 완벽히 해가요. 제 아들도 중학생 시절 밤 열한시 넘어서까지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하곤 했습니다. 스스로 돌파구를 찾은 거죠. 신나게 운동하고 나서 남은 시간에 집중력 있게 공부하는 것이 오히려 대학 입시에도 도움 됐습니다.”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아이에게 가사노동 중 일정 역할을 나눠주는 것도 책임감을 익히게 하는 데 효과적이다. 아이가 그 일을 잘 마무리했을 때는 ‘폭풍칭찬’도 잊지 말아야 한다. 동생 돌보는 일을 맡기거나 친척들을 직접 찾아뵙도록 하는 것도 아들에게 책임감을 심어주는 좋은 방법이다. 박 교사는 “무엇보다 아들이 사춘기에 들어선 이후에는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일 중 최소한의 것만 해줘야 한다”고 했다. “전 아들이 따로 요청하지 않는 이상 차로 학원에 데려다 주지 않았고, 도시락을 손에 들려 보내는 일도 없었어요. 아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에는 음식도 스스로 해먹도록 재료만 냉장고에 채워뒀죠. 나중에 아들이 집에 친구들을 초대해서 직접 스테이크를 요리해 먹는 모습을 본 대치동 엄마들이 ‘부럽다’고 입을 모으더라고요.”

    ◇아들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다
    흔히 엄마와 사춘기 아들 사이의 갈등은 컴퓨터나 스마트폰 게임에서 비롯된다. 두 아들과 박 교사 사이에서 갈등의 불씨가 된 것 역시 컴퓨터 게임과 휴대폰이었다. “두 아들이 중학교 1학년, 3학년일 때 컴퓨터를 거실에 두고 철저히 사용 시간을 관리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캄캄한 밤에 집 어디선가 새어나온 불빛을 따라가보니 아들이 패딩 점퍼를 뒤집어 쓰고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더군요. 그 뒤로 계속해서 컴퓨터 게임 문제로 아들과 갈등을 겪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부모가 아이들이 게임하는 모습을 보며 참고 참다가 소리를 지릅니다. 게임하며 피곤해진 아들도 얼굴이 벌개지도록 화를 내며 막말을 내뱉는 식으로 대응하고요. 아들이 그럴 땐 정말 세상이 끝난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죠. 아들 행동이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았어요.”

    박 교사는 신경정신과 의사를 찾아 아들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제가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토로했다. 박 교사의 말을 들은 의사는 이를 단순한 게임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부모의 양육방식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것을 조언했다. 박 교사는 “두 아들의 24시간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시간대별로 확인 전화를 하는 식으로 지나치게 통제했다”며 “특히 컴퓨터를 주말에 한두 시간만 쓰게 하고 일지에 사용 시간을 일일이 기록하거나 비밀번호를 설정하는 등 완강하게 제한했는데, 아이가 게임을 하면서 억눌린 마음을 표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자유와 통제가 적절하게 이뤄지는 양육방식을 택했다면 아들이 부모에게 큰 소리 내는 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않았을 거예요. 아들이 어릴 때 기대 수준을 낮추고 가족회의 등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날 이후로 박 교사는 아들이 게임을 하다가 늦잠 자서 지각을 하든, 아침밥을 먹지 않고 학교에 가든 신경쓰지 않는 방식으로 아들에 대한 기대를 내려놨다. 아들에게만  신경이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자기계발에 힘썼다. 교사로서 학교 학생들과 새로운 일을 기획하고, 대학원에 다니면서 논문을 썼다. 자연스럽게 사춘기 아들에 대한 걱정이나 불안감이 줄어들었다. ‘아이가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매일 주문을 외기도 했다. “그러자 아들과의 관계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분명 아침마다 지각을 많이 했을 것이고 반 친구들 앞에서 혼이 났을 겁니다. 또래집단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를 중요하게 여기던 사춘기 아들은 몇 달 후 스스로 제 시간에 등교하기 시작했어요. 둘째 아들도 스스로 등교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본보기가 됐죠.”

    두 아들에 대한 기대 수준을 낮춘 뒤 박 교사는 가족회의를 열었다. 두 아들의 생각을 듣기 위해서였다. 박 교사 부부는 아이들에게 ‘부모에게 바라는 점’을 물었다. 박 교사는 “그때 두 아들이 ‘저희들이 잘못된 행동을 하는지 지켜봐주세요. 저희를 믿어주세요’라고 답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며 “눈에 보이는 겉모습만으로 아들에게 문제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말고 부모가 아들을 믿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박 교사는 아들의 첫 스마트폰을 사 주는 부모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스마트폰 중독으로 공부나 다른 일에 지장을 받는 주변의 사례를 이야기해 주세요. 그 다음 아들에게 물어보세요. 일주일에 몇 시간 사용할지 등을 아들과 논의해 약속해야 합니다. 제 아들은 시험 2주 전에는 자발적으로 부모에게 핸드폰을 맡기겠다고 약속했어요. 이에 대한 보상으로 저는 시험 2주 전과 시험이 끝난 직후 2주, 즉 한 달은 학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약속했죠. 아들은 스스로 공부 내용을 정리하며 시험을 준비했고, 시험이 끝나고 나서 약속한 기간에는 자유롭게 놀았습니다. 많은 부모가 자녀와 약속을 정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결과만 가지고 야단을 치는데, 아이와 미리 논의하고 약속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버지와 멘토가 필요할 때

  • /김종연 기자
    ▲ /김종연 기자
    아들 교육에 있어 박 교사는 가정 내 동성인 아빠가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자인 엄마는 아들의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사춘기 아들의 성교육은 동성인 아빠가 가르치는 게 더 효과적이다. 박 교사는 “가정에서 아빠가 아들에게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예를 들어가며 성에 대해 솔직하게 대화 나누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권했다. “아빠가 아들의 관심사에 같이 관심 기울여주세요. 아들이 어떤 웹툰을 좋아한다고 하면 아버지도 웹툰을 검색해서 함께 보며 이야기하는 게 좋습니다. 달리기, 못질과 같은 사소한 일이라도 ‘잘한다’고 아빠가 인정해 주는 것이 아들에게 큰 영향을 주죠. 무엇보다도 아들이 좋아하는 것을 존중해 주고, 아들의 눈높이에 맞춰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아들에게 성장기의 또다른 부모가 될 수 있는 ‘멘토’를 지속적으로 만날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도 좋다. 실제로 박 교사는 맞벌이를 하며 10대였던 두 아들을 테니스 강사에게 자주 맡기곤 했다. 박 교사는 “두 아들이 스포츠를 배우면서 알게 된 테니스 강사가 아이들을 잘 이해해줬고, 아이들도 그의 말을 부모 말보다 더 잘 따르더라”며 “부모는 아이가 주변에서 어떤 남자 어른을 좋아하고 따르는지 잘 살펴보고, 직접 그 어른을 만나 아들에 대한 의견을 공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둘째 아들은 자신이 다쳤을 때 치료해줬던 담당 의사의 말을 듣고 큰 힘과 위로를 얻었고, 지금도 그 의사를 존경한다”며 “이처럼 아들이 그저 마음속으로 멘토로 여기는 어른도 있는데, 이를 계기로 아들과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등 이야기 나누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