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여학생들의 ‘붉은 입술’·‘라인’ 지켜준다는 교복업체들
신혜민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8.02.20 15:30

-'틴트주머니'·'남심저격 스커트' 등 치장 중심 교복 잇따라
- 초·중·고교생 3명 중 1명, 교복 '디자인·핏' 가장 중요해
- 전문가 "미디어 영향 커… 비판적 시각 필요"

  • 신학기를 맞아 여학생 교복 자켓에 틴트주머니를 만들고 날씬함을 강조한 디자인 등을 선보인 교복업체들. /해당 교복업체 홈페이지 캡처
    ▲ 신학기를 맞아 여학생 교복 자켓에 틴트주머니를 만들고 날씬함을 강조한 디자인 등을 선보인 교복업체들. /해당 교복업체 홈페이지 캡처
    “세상 어디에도 없는 ‘틴트주머니’로 언제 어디서나 입술 분실 걱정 노노!” (한 교복 브랜드 광고 문구 中)

    # 올해 중학교 1학년에 올라가는 딸을 둔 김영신(가명·43)씨는 이달 초 아이의 교복을 고르러 갔다가 한 교복 브랜드가 재킷 안쪽에 틴트를 넣고 다닐 작은 주머니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입술에 선명한 색상을 넣어주는 화장품의 일종인 틴트(Tint)는 자연스러운 발색으로 10대 여학생들 사이에서 몇 해 전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요즘엔 남학생들에게도 인기가 이어지고 있다. 김씨는 “아이들의 취향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건 알겠지만, 딸 키우는 부모로서 그리 좋게만 보이지 않는다”며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여자 아이에게 학교 갈 때 틴트로 새빨간 입술을 만들라고 부추기는 꼴”이라고 말했다.

    입학 시즌이 다가오면서 교복업체들의 마케팅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최근엔 학생의 눈높이에 맞춘 교복들이 주목을 받으면서 업체들 사이에서 디자인뿐 아니라 실용성과 기능성을 갖춘 차별화된 교복을 앞다퉈 선보이고 있다. 예컨대,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한 ‘핫팩주머니’(S1브랜드)와 재킷 안쪽에 지퍼 주머니를 달아 소지품 분실 위험 없앤 ‘안심주머니’(I브랜드), 셔츠 벌어짐을 방지하는 ‘오픈방지 매너단추’(S2브랜드), 최대 5cm까지 허리 조절 가능한 ‘양쪽단추스커트’(E브랜드) 등이다. 이 중에서도 올해 처음 선보인 ‘틴트주머니’(S1브랜드)는 학생들 사이에서 단연 화제다. 올해 중학교 입학 예정인 최윤아(가명·13)양은 “매번 재킷 앞주머니에 틴트를 넣고 다니다가 어딘가에 흘리거나 새는 경우가 잦았는데, 이건 교복 재킷 안쪽에 넣어 잃어버릴 염려도 없고 세워서 넣는 형태라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해당 브랜드 홍보팀 관계자는 “교복은 학생들의 생활에서 가장 밀접한 영향을 주는 옷이니만큼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게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긴다는 부정적인 반응도 있다. 학생다운 단정함을 강조하는 교복의 목적과 취지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아울러 ‘생명과도 같은 틴트를 안쪽 주머니에 쏘~옥!’ 등의 광고 문구 역시 여학생들에게 화장을 통해 외모를 꾸며야 한다는 의도로 비쳐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중학교 3학년에 다니는 지소민(가명·15)양은 “화장은 물론 틴트만 발라도 벌점이 부과되는 학교가 대다수인데, 정작 교내 실정은 전혀 모르고 나온 것 같다”며 “이젠 선생님들이 교복 안주머니까지 열어보라며 세세히 확인할 판”이라며 지적했다.

    이처럼 교복업체 광고 논란은 해마다 계속됐다. 2016년엔 한 교복 브랜드에서 유명 여자 아이돌을 내세워 ‘재킷으로 조여라! 코르셋 재킷, 스커트로 깎아라! 쉐딩 스커트’라는 선정적인 표현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 여학생들에게 날씬함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불편한 시각도 있었다. 현재는 이런 자극적인 문구는 사라지는 추세지만, 아직도 대다수 교복 광고에는 ‘몸에 맞는 교복 핏(fit)’을 가장 먼저 내세운다. 올해도 ▲핏으로 끝내다, ‘핏살기’(E브랜드) ▲허리에서 아랫배까지 꽉 잡아주는 ‘에티켓지퍼’(S1브랜드) ▲라인이 살아나는 마법 ‘남심저격 튤립라인 스커트’(S2브랜드) 등 몸매를 부각하는 문구가 속속 나왔다.

  • 하지만 교복업체들은 이 같은 홍보에 대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학생들이 교복을 고를 때 가장 먼저 날씬한 몸매를 부각시키는 디자인 요소부터 따져본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초·중·고교생 3명 중 1명은 교복 구매 시 '디자인·핏'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드러났다. 형지엘리트가 지난달 16일부터 29일까지 10대 학생 2946명을 대상으로 SNS를 통해 ‘내가 입고 싶은 교복’을 주제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전체 학생의 43.6%가 교복 구매 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로 ‘디자인·핏’을 꼽았다. 이는 지난해보다 무려 9.2%나 증가한 수치다. 형지엘리트 홍보팀 관계자는 “올해는 특히 여학생(43.4%)뿐 아니라 남학생(45.8%)도 교복의 디자인과 핏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처럼 해마다 아름다움에 대한 청소년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런 요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디자인을 내세우고 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대중매체에서 아이돌을 비롯한 연예인들이 짙은 화장을 하고 몸매가 드러난 교복을 입은 모습이 계속해 등장하면서 이들을 따라 하면 자신도 예뻐질 수 있을 거라는 10대들의 선망의식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된 엠넷(Mnet)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즌2’와 ‘예쁜 학생을 뽑는다’는 문구로 방송 전부터 외모지상주의 논란을 일으켰던 ‘아이돌학교’는 교복을 입은 연습생들을 내세워 화제가 됐다. 김윤택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매스미디어(Mass Media)뿐만 아니라 소셜미디어(Social Media)까지 더해져 교복을 입은 연예인의 꾸며진 모습이, 청소년들에게 더욱 쉽고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며 “이처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외모 평가와 극단적인 외모지상주의를 해결하려면, 성인들부터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청소년들이 이를 비판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교육 당국의 실질적인 정책도 절실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