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님, 술·장기자랑 걱정 말고 OT 오세요”…대학가 움직임 확산
신혜민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8.02.13 10:30

- 대학가 OT 사건·사고 대책 마련 '분주'
- 가혹행위·음주 강요·성추행 예방교육 강화
- 정부·경찰도 나서 근절대책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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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조선일보 DB

    내달 개강을 앞두고 대학들 사이에서 ‘장기자랑·사건·사고 없는 신입생 환영행사(오리엔테이션·새내기 배움터) 만들기’에 한창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불미스런 사고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 성폭력 예방 교육, 교수·교직원 동반 의무화 등의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특히 최근 성범죄 피해를 고백하는 이른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사회 전반에 퍼지면서 대학뿐 아니라 교육당국, 경찰도 나서 보다 실질적인 신입생 OT 문화 개선을 위해 더욱 힘을 쏟고 있다. 

    ◇안전사고·선배 갑질·성추행 등…말도 많고 탈도 많은 OT

    오리엔테이션(OT)과 새내기 배움터(새터) 등은 입학 전 신입생들에게 대학생활의 적응을 돕고 선후배 간 유대를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교류 행사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지나친 음주 강요를 포함해 과도한 위계질서,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게임 등 원래 목적과 취지와 달리 예기치 않은 각종 사건·사고로 얼룩지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잇단 불상사로 더욱 논란이 됐다. 오리엔테이션(OT)에 참가한 수도권 한 대학 신입생이 밤새 술을 마시고 사라졌다 엘리베이터 기계실에서 손가락 3개가 절단된 채 발견된 사례도 있었다. 경북 소재의 한 대학의 경우, 신입생들을 태우고 강원도 원주로 OT를 떠나던 관광버스가 충북 단양 중앙고속도로에서 5m 아래로 굴러 운전기사가 숨지고 44명의 학생이 부상을 당했다. 특히 이 대학은 당시 OT 때 마실 술을 약 9000병 가까이 사들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행사에 참여할 예정이었던 학생들이 1700여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학생 1명당 5병가량을 마실 것으로 예상해 구입한 셈이다. 

    해마다 발생하는 선배들의 ‘갑질’도 문제다. 지난해 2월 강원도 춘천의 한 리조트에서 진행된 경기도의 한 사립대학 OT에서 선배들은 학교 전통을 세운다는 이유로 신입생 25명에게 구보, 팔 벌려 높이뛰기(PT체조) 50회 등 일명 ‘얼차려’를 강요했다. 해당 사실이 알려지자 학교 측은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같은 달 서울 소재 한 대학에서는 신입생 OT를 준비하던 중 학생회 측이 회비 등 명목으로 48만원 상당을 내라고 후배들에게 요구한 바 있다. 

    각종 성추문도 빠지지 않는 항목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는 OT에서 유사 성행위를 묘사한 게임을 지난해 비난을 받았고, 2016년 3월 신입생 MT에선 남학생 여러 명이 동성 학생을 성추행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지난해에는 신입생 행사를 준비하던 중 남학생이 여학생을 성추행하기도 했다.

    ◇학생·학부모 “연이은 사건·사고에 걱정 앞서”

    이처럼 매년 반복되는 사건·사고에 입학을 앞둔 예비 대학생들은 OT 참석 여부에 대해 우려 섞인 반응이다. 실제로 한 대형 온라인 수험생 커뮤니티에서는 OT 참석 여부와 관련한 상담 글이 하루 평균 수십개가 올라오기도 한다. 수도권 대학에 입학 예정인 김윤지(가명·19)씨는 “집안 내력 상 술을 입에 대지도 못하는데 2박 3일간 이어지는 OT에 가려니 잘 어울리지 못하고 ‘분위기 망치는 사람’이 될까 봐 걱정된다”며 “예전보다 술을 강권하는 문화가 사라졌다곤 하지만, 막상 가면 술 1~2잔쯤은 꼭 마셔야 할 상황이 온다는 선배의 말에 아직도 참석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대학 신입생도 “말 많고 탈 많은 대학 신입생 OT에 굳이 돈까지 내며 가고 싶진 않지만, 수강신청 등 교내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해 참석하려고 한다”고 했다.

    대학 신입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다. 대학에 입학하는 딸을 둔 이모씨(45·여)는 "OT 사건·사고 소식을 자주 접하다 보니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라며 "적당한 선을 지키면서 문화가 형성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새내기 딸을 둔 학부모는 "대학생활의 첫 시작을 앞둔 딸에겐 이런 신입생 환영행사가 평생 기억에 남는 추억거리가 될 거라 생각한다”며 “하지만 최근 사회 곳곳에서 성 관련 사건과 화재 등 안전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보며 부모로서 염려스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며 마음을 놓지 못했다.

    ◇“불상사 방지하라”…대학·정부 등 앞다퉈 대안 마련

    이에 따라 개강을 앞둔 대학가에서는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먼저, 서울대는 올해부터 단과대별 새내기 OT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교수 또는 교직원 동반을 의무화했다. 아울러 교직원이 미리 OT 장소를 답사해 '안전 확보 관련 자료'를 보고서 형식으로 대학본부에 제출토록 했다. 서울대 단과대 학생회의 경우엔 ‘신입생 대상 장기자랑 강요 프리(FREE) 선언’을 진행하고 있다. 강요된 장기자랑을 타파하고 신입생과 재학생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일종의 ‘갑질’을 막겠다는 이유에서다. 위계에 의한 성희롱·성추행을 사전에 차단한다는 목적도 있다. 이 선언엔 농업생명과학대학·자유전공학부·사회대·수의과대학 등이 동참했다.

    최근 새터 폐지 논란이 일었던 한양대는 일단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대신 지난해 OT 때 발표한 ‘배려와 안전을 위한 한양인 선언’을 올해도 활용한다. 한양대 인권센터에서는 단과대 학생회를 상대로 성평등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건국대 역시 총학생회 차원에서 성희롱 예방 및 안전과 관련한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

    노정민 한국대학성평등상담소협의회 대표는 “최근 미투 운동 등을 통해 성폭력 문제에 대한 사회적 민감도가 높아지는 만큼 대학에서 선후배 간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위계에 따른 성희롱 등을 타파하고 불합리한 관행을 바꾸는 기회가 돼야 한다”며 “또 기존에 피해자, 가해자 등 이분화된 예방 교육을 넘어 ‘방관자 되지 않기’ 등 학생 주체에게 맞는 맞춤형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대학 신입생 OT 문화 개선을 위해 정부도 나서고 있다. 교육부는 안전한 대학 행사를 유도하기 위해 오는 19일부터 내달 24일까지 대학 신입생 OT 현장 안전점검을 시행키로 했다. 특히 교외에서 OT를 진행하는 대학의 경우, 각 대학 차원에서 숙박시설, 교통수단 등 모든 분야의 안전점검을 우선으로 진행한다. 이 가운데 참여 학생 수, 행사장소, 전년도 사고발생 여부 등을 고려해 선정된 11개교에 대해서는 교육부, 지방자치단체, 각 대학 행사 담당자 등으로 구성된 점검단이 사전에 현장을 직접 방문해 확인한다. 교육부는 “신입생 OT는 반드시 대학이 주관해 실시, 가급적 당일 마치도록 하며 2일 이상 진행할 경우 대학 교직원 및 행사 주관 학생을 책임자로 지정해야 한다”면서 “성폭력ㆍ가혹행위 등에 대한 사전교육, 안전사고 주의ㆍ예방조치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찰에서는 대학 내 각종 가혹행위를 막는 방안을 내놨다. 경찰청은 OT·MT 등 신입생 환영행사가 집중되는 이달부터 내달 31일까지 집중신고기간을 운영한다. 또 전국 대학 소재지를 담당하는 경찰서에 '대학 내 불법행위 전담수사팀'을 지정해 교내 인권센터·상담소, 단체 활동 지도교수 등과 직통 회선을 개설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이 즉시 현장에 출동한다”며 "명백한 형사처분 대상 사건은 고질적 악습 여부와 가해자 범죄경력까지 확인해 엄정히 처리하고, 경미한 사안일 경우엔 대학이 교육적 공간임을 고려해 형사입건 여부를 신중히 판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