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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장인을 만나다] ⑥ 예술제본가 이보영씨

문일요 기자

2018.02.1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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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책 손질해 새 것처럼… 예술로 책을 되살리다

'예술제본가'는 전통 방식으로 종이를 엮어 책을 만드는 사람이다. 손때 묻은 낡은 책을 새것처럼 되살리기도 한다. 헤지고 찢어진 책을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꿰매고 표지에는 새 옷을 입힌다. 예술제본가 이보영(39)씨의 손에서, 책은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으로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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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예술제본가 이보영씨가 프레스에 고정한 책을 손바느질로 꿰매고 있다. (오른쪽)예술제본 작업에 쓰이는 도구들. /양수열 기자
◇낡은 책 해체·복원하는 예술제본

지난 9일 창경궁 인근 공방에서 이보영씨를 만났다.

"예술제본은 책을 단단하게 엮고 아름답게 꾸미는 작업이에요. 의뢰인을 위한 특별한 책을 만들기도 하지만, 제 경우엔 주로 낡은 책을 보수하는 일을 많이 해요. 가장 중요한 점은 책을 오래 보존할 수 있도록 튼튼하게 만드는 거예요. 마치 건물을 짓는 것처럼요."

그는 예술제본을 건축에 비유했다. 책 복원 작업은 해체와 재조립 과정을 거치는데, 이를 위해 예술제본가는 책 구조와 재료들의 특성을 꿰고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제본 방식은 종이의 질과 커버 재료에 따라 천차만별이에요. 수명이 긴 하드커버 도서의 경우 종이를 8장씩 재봉틀로 꿰매고 이 덩어리들을 프레스로 눌러 압축한 뒤 다시 꿰매기 작업을해요. 또 다른 방법은 책등 부분에 실톱으로 여러 개의 길을 내고, 그 사이에 아마실을 넣어 고정하죠. 책의 무게를 버티려면 이렇게 여러 번 엮어야 해요."

이보영씨는 국내 예술제본가 1세대다. 유럽에서 시작된 예술제본 기술을 국내로 들여왔다. 작업에 필요한 도구나 재료도 대부분 해외에서 공수해온다. 그는 "생소한 분야인 만큼 국내에서는 도구를 구할 수 없다"면서 "200여 개에 이르는 작업 도구도 수년에 걸쳐 하나둘씩 갖춰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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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고고학자 에밀 부르다레가 1904년 펴낸 한반도 여행기 ‘앙코르(En Coree)’ 초판본〈왼쪽 사진〉이 이보영씨의 손을 거쳐 복원됐다〈오른쪽 사진〉. 이 책은 2009년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국내에 소개됐다.
◇추억 담긴 책부터 100년 전 고서까지 복원

오래된 책을 들고 찾아오는 의뢰인들의 사연도 다양하다. 자녀에게 자신이 아끼던 책을 물려주고 싶은 부모도 있고, 반대로 부모님이 남긴 책을 오래 간직하고 싶은 자녀도 있다.

"한번은 지적장애 아들을 둔 어머니가 다 떨어진 낡은 동화책 한 권을 들고왔어요. 아들이 같은 동화책만 계속 읽는데 책이 너무 낡아 똑같은 새 책을 사줬더니 읽지 않더라며 아들의 책을 복원해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동화책을 하나하나 해체해 원래 모습으로 만들어 드렸어요. 며칠 뒤에 연락이 왔어요. 아이가 다시 책을 읽는다고요. 정말 뿌듯했죠."

개인 도서가 아닌 도서관 소장본을 의뢰받는 경우도 있다. 그는 지난 2014년 명지대 LG연암문고에 있는 8권의 고서(古書) 복원 작업을 맡았다. "의뢰를 받고 도서관을 찾았더니 100여 년 된 고서들을 고무줄로 묶어뒀더라고요. 책등은 죄다 떨어져 나갔고, 책을 펴보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이 심했어요. 그 귀한 책을 서가에 꽂아두지도 못하고 눕혀서 보관할 정도였으니까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조각나버린 책들은 그의 손을 거쳐 다시 생명력을 얻었다.

◇'나만의 책' 보존하는 문화 널리 퍼지길

이보영씨가 예술제본의 길에 접어든 건 우연이었다. 지난 2005년 프랑스 어학연수 시절 지인의 소개로 들른 제본공방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당시 문화 충격을 받았어요. 사람이 손바느질로 책을 꿰매고 있었으니까요. 그보다 예술제본 문화가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는 점이 더 놀라웠죠. 소르본대 도서관을 비롯한 대학 도서관이나 심지어 루브르박물관에도 예술제본가의 작업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었거든요."

그 길로 예술제본을 배우기 위해 프랑스에 6년을 머물며 프랑스 문교부에서 발급하는 예술제본 교원기술자격증(CAP)까지 땄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예술제본가 중에 프랑스 CAP 자격증을 보유한 전문가는 그가 유일하다.

"매년 셀 수 없이 많은 책이 출간되지만, 책을 오래 두고 읽으려는 인식은 아직 자리 잡지 못한 것 같아요. 그나마 최근에는 나만의 책을 보존하려는 '애서가'가 많아진 느낌이에요. 공방으로 출근할 때마다 '오늘은 또 어떤 책을 의뢰받게 될까'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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