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초등

[단숨에 읽는 인문 고전] 인간은 이전 세대 문화 '복제'해 다음 세대에 전달

2018.02.1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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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가 수영장에 나라면 절대 쓰지 않을 꽃무늬 수영모 4개를 가져오셨다. 엄마와 이모, 진희와 함께 쓸 생각으로 챙겨오셨다고 했다.

부끄러울 법도 한데, 외할머니와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신나게 수영했다. 반면 이모와 진희는 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다. 물에도 들어가지 않을 거면서 수영모는 왜 쓴 건지 모르겠다.

나는 가끔 우리 집 여자 식구들이 참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엄마와 이모는 외할머니 딸이니까 서로 닮았고, 진희는 엄마 딸이니까 엄마랑 닮았다. 그런데 가장 닮은 건 이모와 진희다. 성격까지 판박이다.

"누가 보면 이모가 진희 엄마인 줄 알겠어."

삼촌과 나는 이모와 진희를 뚫어지게 봤다. 정말 닮았다.

"고모도 진희랑 많이 닮았을까?"

"고모랑 이모는 달라. 친한 정도를 따지면 고모보다는 이모랑 더 친하지. 특히 여자의 경우에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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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은 이게 다 '미토콘드리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태어나서 처음 듣는 단어였다.

"미토콘드리아는 몸속의 세포인데 그 안에 유전 정보가 들어 있어. 그런데 남자의 유전 정보보다 여자의 유전 정보가 훨씬 더 많이 들어 있지."

내 몸에 그런 것이 있다니, 놀라웠다.

"친가보다 외가가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도 아빠보다는 엄마한테서 더 많은 양의 유전 정보를 받기 때문이야. 우리 집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친한 이유도 같은 유전 정보가 더 많아서가 아닐까?"

나는 외할머니, 엄마, 이모, 진희가 탈의실로 걸어갈 때 네 사람의 오른쪽 허리에 새끼손톱만 한 까만 점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내 오른쪽 허리에도 같은 것이 있는지 살펴봤지만 없었다.

나한테는 없고 여자들에게만 있는 것을 또 하나 발견했다. 미토콘드리아가 저런 것까지 물려주다니.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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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엄마 머리카락이 곱슬머리이면 나도 곱슬머리일 확률이 높고, 아빠 피부가 까무잡잡하면 나도 까무잡잡할 확률이 높아. 이처럼 부모의 어떤 특성이 자식에서 나타나는 것을 ‘유전’이라고 해.

유전 덕분에 잃어버린 조상도 찾을 수 있어. 우리 몸에 있는 ‘DNA’, 즉 유전자가 부모 세대의 특성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거든.

다윈의 ‘진화론’ 이후, 과학자들은 생물이 주어진 환경에서 더 많은 후손을 남기는 유전자를 선택하면서 진화해 왔다고 믿었어.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진화를 연구하는 학문을 ‘진화 생물학’이라고 해.

영국의 진화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1941~)는 ‘인간은 누구인가’ ‘인간의 사회와 문화는 왜 유지되고 발전하는가’와 같은 주제를 생물학적 관점에서 연구했단다. 그리고 그 내용을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으로 엮어 발표했지.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을 ‘생존 기계’로 봤어. 인간도 동물과 다를 바 없이 생존을 위해 살고 있다는 거지. 생존은 곧 천적에게서 살아남는 거야. 또 모든 생명체는 살아남기 위해 발전하고 있다고 했어. 이게 바로 진화야.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이 남을 위해 하는 선한 행동도 결국은 종(種)을 보존하기 위한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주장했어. 그래서 그는 유전자를 ‘이기적인 유전자’라고 불렀지.

그런데 잘 생각해 봐. 만약 인간이 종족 번식만을 위해 살았다면 이 지구는 넘쳐 나는 인구 때문에 벌써 망했을 거야.

하지만 지구의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는 않아. 왜 그럴까? 사람들이 각각의 환경에 맞는 ‘문화’를 만들고, 어떻게 해야 삶이 더 행복해지고 발전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때문이야.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이 만든 문화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을 ‘밈’이라고 했어. 유전자가 인간을 복제하는 단위라면, 밈은 문화를 복제하는 단위인 셈이지.

유전자와 밈의 가장 큰 공통점은 ‘복제’야. 유전자가 부모의 특성을 복제해서 우리에게 보내는 역할을 하듯, 밈은 조상의 생활 방식이나 문화를 우리에게 전달해.

밈이 문화를 전달하는 방법은 ‘모방’이란다. 우리 뇌에는 ‘거울 신경 세포’가 있어서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따라 할 수 있어 자식이 부모의 행동이나 말투 등을 보고 흉내 내는 게 그 예야.

리처드 도킨스는 조상이 살던 시대의 사고방식, 패션, 건축법, 종교 등이 모두 밈을 통해 전달돼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거라고 봤어.
‘이기적 유전자’가 세상에 나오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어. 특히 종교계는 그의 생각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

어떤 이들은 리처드 도킨스에게 이렇게 반박했어.
“모든 행동이 유전자와 밈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면, 삶의 목표를 갖고 살아가야 할 학생들이 실망하지 않을까요? 자기의 선택이 결국은 유전자와 밈의 지시라고 생각할 테니까요.”

이에 대해 리처드 도킨스는 다윈의 ‘진화론’을 유전자의 눈으로 봄으로써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것이라고 답했어.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니? 모든 행동이 다 유전자와 밈이 시킨 일이라고 생각하니?
물론 유전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어. 하지만 우리만의 고유한 문화가 몇백 년의 세월을 거쳐 우리의 생활 속에 녹아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야.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스스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의 유전자와 문화유산은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는 사실이야. 그러니 이왕이면 조금 더 나은 모습을 물려주는 게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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