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형의 진학 이야기] 대입 독서,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읽어야 하나
조선에듀
기사입력 2018.01.23 10:22
  • ‘고등학교 재학 기간 읽었던 책 중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을 3권 이내로 선정하고 그 이유를 기술하여 주십시오.’ 서울대 자기소개서의 마지막 네 번째 항목이다. 우리 나라 최고 학부에서 요구하는 서류 내용이 아니더라도 학창 시절 독서의 중요성은 간과할 수 없다. 학생부종합전형이나 논술, 심지어는 다양한 지문을 빠른 시간 내에 이해하고 문제를 풀어야 하는 수능에서도 독서 역량은 중요한 경쟁력이다. 특히나 창의융합 능력을 강조하는 현재의 교육 과정에서는 독서가 새로운 생각과 가치 창출의 초석임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아직은 내신과 수능 준비로 뒷전에 밀릴 때가 많지만 갈수록 ‘책 읽는 힘’의 진가는 커질 전망이다. 바쁜 시간 속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입시에 도움될 수 있는 독서 활동의 기본 원칙들에 대해 알아봤다.  

    어떤 책을 얼마나 읽을 것인가?

    수험생이 본격적인 독서를 시작하기 전에 해야 할 고민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둘째는 ‘얼마나 읽을 것인가’이다. 두 고민 모두 형식보다는 내용에 집중해야 입시에도 도움된다는 것이 대전제다.

    첫 번째 고민은 독서의 질과 특히 연관이 많다. 어떤 책을 선택하느냐가 내 독서 변별력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고전’이나 그에 준할 정도로 저명한 책들을 제대로 소화해낼 수만 있다면 선택의 폭은 매우 넓어진다. 이미 많은 책들이 알려져 있고 교육 현장에서도 자주 추천 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명한 ‘추천 도서’가 고교생이 완독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 입시정보 사이트 학원멘토가 집계한 대입 추천 도서 순위를 살펴보자. 최근 유명 특목고나 자사고 등에서 재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있는 도서 목록을 통합해 추천 빈도가 많은 순으로 몇 권을 추려봤다. 1위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2위는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 3위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었다. 해당 3권은 얼핏 자연과학을 다루고 있는 듯해도 깊이 들여다보면 다양한 인문학적 논제들과 연결되어 진학 계열을 떠나 매우 광범위하게 읽힐 수 있다는 특징이 공통적이다. 하지만 세 권 모두 4~5백 페이지 이상의 방대한 분량과 곳곳에 등장하는 전문 개념들이 완독을 쉽지 않게 한다. 특별한 관심 분야가 아닐 경우에는 선택에 신중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단계적인 독서 역량 증대를 통해 뒤늦게라도 제대로 읽어볼 수 있다면 입시에서는 반드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낼 책들임엔 틀림없다. 추천 도서 순위에서 이들의 뒤를 이은 책들로는 공자의 「논어」,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브라이언 그린의 「엘러건트 유니버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 리처드 파인만의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등이 대표적이었다. 어느 한 권도 만만치 않지만 사색의 깊이와 지평을 넓히기에는 더 없이 좋은 책들이다. 전체 학업 과정에서는 재밌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들도 필요하지만 입시 변별력을 생각한다면 어느 단계에선가는 한번쯤 만나봐야 할 책들이다.  

    그렇다면 이런 책들을 과연 몇 권이나 읽어야 할까? 학교생활기록부 관리에 있어서 많은 학부모와 수험생들은 그 ‘양’에 민감하지만 실제 입시에서 몇 권을 읽었느냐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양질의 도서를 1년에 수십 권씩 읽어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입사정관들 또한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무리해 독서 목록만 가득 채우기보다는 1년에 단 대여섯 권을 읽더라도 각 책들의 면면과 그에 대한 자신만의 ‘반응’이 중요함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읽고 반응할 것인가

    ‘단순한 내용 요약이나 감상이 아니라 읽게 된 계기, 책에 대한 평가, 자신에게 준 영향을 중심으로 기술.’ 서울대 자소서 독서 항목 작성 시 유의사항이다. 예비 수험생들에겐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강력한 힌트가 될 수 있다. 해당 힌트의 핵심은 읽는 사람의 능동적인 자세와 반응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독서라는 활동의 주인공은 ‘책’이 아니라 ‘나’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당연해 보이지만 쉽지 않은 과제다. 서울대 자소서의 ‘계기’, ‘평가’, ‘영향’ 등의 단어들도 모두 이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책이 전달하는 지식들을 머릿속에 가두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자신만의 언어와 생각으로 되새김질하거나 또 다른 생각의 씨앗으로 활용할 수 있기를 요구하는 셈이다. 이는 학교생활기록부에 독서와 관련된 내용이 기록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2017년부터 학생부 ‘독서활동상황’에는 책 제목과 저자만 기록되지만 ‘창의적 체험활동상황’이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등에도 독서 관련 내용들은 다양하게 기록될 수 있다.

    학생부 기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 입시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독서법과 독후 활동이다. 독해력의 증가나 배경지식의 확대는 기본이고, 논술이나 면접, 자소서에서 자신만의 생각과 문제해결법을 제시할 때 결정적인 단서로 독서 경험이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독서의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이 중요한데, 실천이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따라서 독서장 작성 이전에 책을 읽으며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이나 의문점, 아이디어 등을 포스트잇에 간략히 적어 붙여두거나 책 자체에 밑줄을 긋고 표기해 두는 습관이 우선적으로 필요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독서 후에는 책 내용과 연관된 한 가지 이상의 실천 과제를 정해보거나 같은 책을 읽은 친구들과 토론해 보는 것도 넓은 의미의 독후 활동으로 유용할 수 있다. ‘읽는 과정’만으로 독서를 끝내는 것은 적어도 요즘 입시에서는 맞지 않는 독서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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