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초 사태] 사라지지 않는 ‘폐교’ 그림자… 사립초 위기 현실화되나
신혜민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8.01.18 15:16
  • 학생 수 감소에 따른 재정 적자 누적 등을 이유로 폐교를 강행하려던 서울 은평구 사립 은혜초등학교가 교육당국의 강경 대응에 한발 물러난 모양새다. 하지만 학교와 학부모, 서울시교육청 간 이견을 보이면서 접점을 찾지 못해 당분간 그 여파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학령인구 감소와 최근 사립초 운영에 다소 불리한 교육정책이 쏟아지면서 언제든 ‘제2의 은혜초’가 나올 수 있다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2월말 폐교 일정 연기 가능성↑… 교육계 "폐교 피하긴 어려워"
    어제(17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학교법인 은혜학원은 서부교육지원청에 공문을 보내 학생들의 교수·학습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로써 내달 28일을 목표로 추진해온 은혜초의 폐교 일정이 늦춰질 가능성이 커졌다. 앞서 학교 측은 신입생 감소에 따른 재정 악화 누적 등을 이유로 지난달 28일 서부교육지원청에 폐교 인가 신청을 냈지만, 교육청은 관련 서류 미비하다며 폐교 인가 신청을 반려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교직원 전원 해고 통보를 내리는 등 폐교를 강행해 파장이 일었다. 이에 교육당국이 형사고발 등 엄중 대응에 나서자, 학교 측은 이날 공문을 통해 다소 완화된 입장을 드러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2월 말까지 폐교 시 재산처분 계획, 교직원 고용대책, 폐교 시 재산처분 계획 등을 낼 수 없어 학교법인이 막무가내로 폐교할 가능성이 작아졌다”며 “또 학교법인 이사장이 폐교 절차를 제대로 몰랐다고 교육청에 해명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논란을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것이 교육계의 중론이다. 실질적으로 폐교를 피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교육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학교법인의 학교 운영 의지가 없고 올해를 넘기더라도 내년에는 낙인효과로 지원자가 전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학부모들 역시 여전히 싸늘한 반응이다. 17일 저녁 은혜초 강당에서 열린 '폐교 사태 관련 학부모 간담회'에서 총 1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들 모두 학교 정상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대다수 폐교에 반대하는 학부모들로 구성된 은혜초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채택한 '은혜초 학부모 호소문'을 통해 “학교가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기 전엔 그 어떤 입장도 환영할 수 없다”며 “학교는 상처받을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부디 폐교절차를 중단하고 학생을 먼저 챙기라"고 전했다.

    청와대 국민청원도 줄을 잇고 있다. 은혜초 학부모가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은혜초 폐교에 대한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십시오’ 청와대 청원이 18일 오후 3시 기준 2180명의 공감을 얻어 꾸준히 호응을 이어가는 것. 청와대가 의무적으로 답변해야 하는 기준인 20만 명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은혜초 재학생이 235명인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반응을 얻은 셈이다.

    반면, 현재 학교 측은 묵묵부답인 상태다. 실제로 18일 오전 기자가 은혜초 행정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앞으로 폐교 일정과 현 상황에 대해 묻자 “지금은 어떠한 말도 드릴 수 없다”는 음성과 함께 황급히 끊겼다.

    ◇제2, 제3 은혜초 나올 수도… 시교육청 "재정 전수조사 실시·대응방안 모색할 것"
    은혜초 사태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학령인구 감소가 특정 학교만의 일이 아닌 만큼, 은혜초를 시작으로 폐교 신청을 하는 서울지역 사립초가 더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 지역 사립초가 입학생 감소를 이유로 폐교를 신청한 경우는 은혜초가 처음이다. 서울지역 초등학생 수는 2011년 53만5948명에서 지난해 42만8333명으로 줄어 6년 새 무려 10만 명이 감소했다. 이에 따라 서울지역 사립초 신입생 수도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다. 서울교육통계에 따르면, 최근 6년간 서울 사립초 신입생 수는 ▲2013년 4147명 ▲2014년 4033명 ▲2015년 4020명 ▲2016년 3949명 ▲2017년 3908명이었다.

    실제로 올해 신입생 모집에선 서울 지역 사립초 39곳 중 4곳이 미달 사태를 겪기도 했다. 정원과 지원자가 같은 1대1의 경쟁률을 보인 사립초도 3곳이었다. 이는 앞으로도 은혜초와 같은 자진폐교 사태가 나올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지 않는 사립초는 학생 수 감소가 곧 학교의 재정 악화로 이어진다. 학생들이 내는 수업료로 학교 운영비와 교사 임금을 충당하기 때문에 학생 수에 학교 생존 문제가 걸려 있는 셈이다. 서울의 한 사립초 교장은 “지역 내 학령인구가 계속 줄어서 신입생 유치를 놓고 고민이 크다”며 “공립초의 경우, 학생이 줄면 학급당 학생 수나 학급 수를 줄여서 운영하면 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최근 사립학교에 불리한 교육정책이 쏟아지면서 학교 운영이 더욱 힘들어질 거란 의견도 나온다. 박남기 한국교원교육학회장(광주교대 교수)은 “과거와 달리 국·공립초에서도 일정 수준의 교육과정과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사립초만의 경쟁력이 점차 사라지는 실정”이라며 “또 올해부터 초등 1·2학년의 방과후학교 영어 수업이 전면 금지되는 등 사립학교에 불리한 교육정책이 잇따라 시행되면서 제2, 제3 은혜초가 충분히 나올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사립초 신입생 감소가 피하기 어려운 현실이 된 만큼, 교육당국의 구체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로서는 재정 악화로 사립학교가 폐교를 강행할 경우 교육당국이 학부모와 교사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학교법인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안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교육청은 관내 사립초 재정현황 전수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백종대 서울시교육청 교육행정국장은 "은혜초와 같은 (일방적 폐교) 사례는 처음 발생했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립초의 재정 상태에 대한 전수조사를 시행하고 대응 방안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교육청은 오는 23일 본청에서 은혜초 측과 정상화 방안을 놓고 협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시교육청은 이번 협의에서 은혜초 측의 애로사항을 듣고 대안을 마련하는 등에 대해 논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