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중심 입양 절차 이뤄져야…한부모 가정 지원 등 근본적 해결 중요”
신혜민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8.01.16 14:32

-16일, 국회서 ‘입양아동 학대·사망사건 후 정책변화와 과제’ 관련 토론회 열려

  • 16일 국회 국회의원회관에서는 ‘입양아동 학대ㆍ사망사건 후 정책변화와 과제’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 신혜민 조선에듀 기자
    ▲ 16일 국회 국회의원회관에서는 ‘입양아동 학대ㆍ사망사건 후 정책변화와 과제’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 신혜민 조선에듀 기자

    “제2의 은비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선 입양에 대한 아주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해나가야 합니다. 입양 절차에 대한 제도 개선뿐 아니라 미혼모(부) 지원, 원가정 보호 등 친생부모가 입양을 선택하지 않도록 정부의 제도적·경제적 지원 강화가 시급합니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난 2016년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고 입양된 은비(가명·사망 당시 4세)가 학대로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이에 대한 문제점과 향후 정책 변화의 방향을 진단하기 위한 토론회가 16일 오전 10시 서울 국회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입양아동 학대·사망사건 후 정책변화와 과제: 대구·포천 입양아동 학대·사망사건 진상조사 결과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국내 입양 절차의 문제점을 제시하고, 앞으로 입양 제도가 보다 아동 인권을 중심으로 운용될 수 있도록 법 개정안을 제안·촉구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아동복지분야 전문가와 법조계, 입양단체, 시민단체 등 300여명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대구·포천 입양아동 학대·사망사건 진상조사와 제도개선위원회’의 경과보고를 시작으로, 남인순 의원의 ‘입양아동 학대·사망 사건 이후 정책변화와 과제’, 소라미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의 ‘입양특례법 전부 개정안 제안’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지정토론에는 시몬 은미(Simone Eun Mi) 해외입양인 활동가와 고경석 한국입양홍보회장, 김대열 홀트아동복지회장, 이경은 고려대 인권센터 교수, 이선미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김승일 보건복지부 입양정책팀장 등이 나섰다.

    앞서 ‘은비 사건’은 3세 여아가 1차 입양 전제 위탁(앞으로 입양을 목적으로 미리 아동을 인계받는 것) 과정에서 4개월 만에 거부당하고, 2차 위탁된 대구의 한 가정에 인계되고 나서 양부모의 학대로 인해 이듬해인 2016년 7월 심정지 상태로 경북대병원에 응급후송됐다가 뇌사, 사망한 사건이다. 이에 지난해 12월 아이가 숨진 지 1년 2개월 만에 해당 입양기관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이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잘못된 입양 절차를 진행한 당사자 등 관련자 처벌은 여전히 전무한 상황이다. 또 같은 해 경기 포천에서는 아동학대로 숨진 6세 여아의 시신을 불에 태워 훼손까지 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토론 참가자들은 현재 국내 입양 절차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 꼬집으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개선안의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발제에 나선 남인순 의원은 ▲미혼모 지원 체계 부실 ▲지자체 공무원의 전문성 부족 ▲아동보호체계 개선 필요 ▲내실없는 예비 입양부모·입양기관 종사자 교육 ▲입양대기 아동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 부족 ▲연장아 입양 시 교육·상담 부족 ▲형제·자매 아닌 2명의 아동이 동시에 한 가정 입양 가능 ▲입양 전 위탁에 대한 법적 근거 미흡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의 공조 부족 ▲아동학대 가정 내 또 다른 아동에 대한 보호 부재 등 현행 입양 절차 속 다양한 문제점에 대해 나열했다. 남 의원은 “그간 수많은 입양아동 학대가 일어났음에도 제대로 진상조사를 한 후 제도를 개선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며 “앞으로는 입양부모와 입양 관련 종사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아동 신변에 문제가 생길 경우 친생부모에게 알리는 등의 제도 개선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라미 변호사도 “현재 국내 입양 절차에서는 국제사회 입양시스템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아동 이익 최우선의 원칙’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제 입양에 관한 아동의 보호 및 협력에 관한 협약( 일명 ‘헤이그 협약’)’ 에서는 입양에서 아동의 이익이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도 2013년 이 협약에 서명하며, 지난해 10월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된 바 있다. 소 변호사는 “현행 입양 절차는 민간기관인 입양기관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은비 사건의 경우 어떠한 공적 개입 없이 입양기관장의 전권으로 이뤄진 민간 주도 입양의 대표적인 비극적 사례”라며 “입양특례법 개정을 통해 아동에 대한 입양 절차가 아동 이익 최우선의 원칙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상세하게 규정하는 방향으로 법제도 개선과 공정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국제 입양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어린 시절 한국에서 네덜란드로 입양된 시몬 은미 해외입양인 활동가는 “입양은 제 의지와 상관없이 이름, 생일, 친 가족, 한국인의 긍지 등을 모두 잃는 엄청난 사건”이라며 “이처럼 한 사람의 인생을 전부 바꿔버리는 입양에 대해 결코 안일하게 생각해선 안 되며, 보다 철저히 아동인권 중심으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또 향후 친생가족을 보다 수월하게 찾을 수 있도록 최소한 입양인의 자녀, 친생부모, 형제·자매까지 입양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경은 교수는 지난 65년 동안 20만명의 아이를 해외로 입양 보낸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며 개탄했다. 이 교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로 대표되는 우리나라가 아이들을 가장 많이 해외로 보내고 또 아이가 올 수 없는 나라로 만든 이 상황에 대해 정말 안타깝다”며 “국제 입양은 언제라도 가능한 하나의 선택지가 아니라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하며, 국제적 추세와 흐름에 맞게 국제 입양과 아동보호제도에 대한 법제, 정책, 실행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입양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친생부모가 입양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다. 소 변호사는 “은비 사건의 진상조사 결과를 살펴보며 가장 가슴이 아팠던 것은 당시 17살이었던 은비 친모가 홀로 아이 양육과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어디에서도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라며 울먹였다.

    “은비 친모는 은비의 유골을 인천 앞바다에 뿌리며 ‘1차 위탁가정에서 거부당한 줄 알았다면, 1차 응급실행을 알았다면 은비를 곧장 데려왔을 텐데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느냐’며 울부짖었어요. 은비 엄마가 입양기관을 찾아가 은비를 맡기기까지 21개월 동안 지역사회와 우리의 복지시스템은 이 모녀에게 적절한 지원을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 입양 아동의 90% 이상이 이 같은 미혼모 가정 출신입니다. 엄마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는 좋은 양부모를 만나는 것이 아이에게 더 낫다는 편협된 인식에서 벗어나 혼인 외 관계에서 출생한 아이 역시 친생부모 아래 소중하게 키워질 수 있도록 사회 인식부터 변화하고, 정부 주도 아래 미혼모(부) 지원이 더욱 강화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