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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조선일보가 탄생한 1937년엔 무슨 일이?

하지수 기자

2018.01.0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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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조선일보는 지난 1937년 1월 10일 세상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국내 최초의 어린이 신문'이었던 만큼 큰 화제가 됐는데요. 당시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의 어두운 시절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 각국에서도 여러 가지 사건·사고가 벌어졌는데요. 소년조선일보가 창간한 1937년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해요.


피카소 그림의 소재 된 '게르니카 폭격'

4월 26일 스페인의 작은 도시 게르니카가 독일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폐허가 됐습니다. 이로 인해 1500여 명의 무고한 시민이 희생당했죠. 이때 스페인에서는 정부군과 반정부군의 충돌이 잇따랐는데요. 반정부군을 지원했던 독일이 정부군의 세력권에 있던 게르니카를 공격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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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DB

소식은 파블로 피카소 귀에도 들어갔어요. 스페인에서 태어난 그는 폭격의 참상을 세로 약 349㎝, 가로 776㎝에 달하는 캔버스에 담았어요. 이 작품이 바로 '게르니카'<사진>예요.


미국의 명물 '금문교' 개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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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현수교'로 꼽히는 금문교<사진>가 5월 27일 개통됐어요. 주홍빛의 금문교는 골든게이트해협을 가로질러 캘리포니아주 서부의 샌프란시스코와 북서부의 마린 카운티를 이어줍니다. 공사에만 꼬박 4년 4개월이 걸렸죠. 개통식이 있던 날, 약 2800m에 달하는 긴 다리를 보기 위해 20만명에 달하는 사람이 몰려들었어요. 완공 당시에는 금문교가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였거든요.


'난징 대학살'로 중국인 30만명 희생


1937년 7월 중국을 침략, 중·일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톈진·베이징 등을 차례로 차지하고 나서 12월 13일 난징을 점령했어요. 이후 이듬해 2월까지 대규모 학살과 방화 등을 저질렀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총을 쏘아댔고 산 채로 사람을 묻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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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마련된 난징 대학살 기념관.

일본군의 학살로 목숨을 잃은 중국인은 30만명 이상으로 추정돼요. 중국 측은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에 공식 사과를 요구하지만, 일본 극우주의자들은 난징 대학살 자체를 부정하고 있어요.


일제, 조선인에 황국신민서사 제창 강요


'저희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입니다. 마음을 합쳐 천왕 폐하께 충의를 다하겠습니다.'

조선총독부가 10월 2일 제정한 아동용 '황국신민서사' 일부예요. 황국신민서사는 일제가 조선인에게 강제로 외우게 한 맹세로, 일본 왕에게 충성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각급 학교 조회 시간이나 단체의 집회 현장에서 이를 큰 소리로 외쳐야만 했죠.

일본은 황국신민서사 제창뿐 아니라 신사 참배를 강요하고 우리말과 역사 교육도 금지해 민족성을 말살시키려 했어요.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공주'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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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1일 월트디즈니사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카세이 서클 극장에서 '백설공주' 애니메이션을 상영했어요. 이는 세계 최초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이었어요.

이전까지 애니메이션의 길이는 5~8분에 불과했어요. 그러나 '백설공주'의 상영 시간은 83분에 달했죠.

영화에는 독일의 그림 형제가 1812년 펴낸 동화 '백설공주'를 각색한 내용이 담겼는데요. 개봉 이후 1938년 6월까지 미국과 캐나다에서 68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둘 정도로 인기를 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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