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식 시험 없앤다는 교육청들… 교육계 ‘갑론을박’
손현경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8.01.04 11:39

- 서울·부산 교육청 올해부터 객관식 시험 단계적 폐지 발표

  • 서울시교육청이 올해부터 중학교에서 객관식 시험을 단계적으로 퇴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대신 중간·기말고사를 없애고 수행평가로 전환하는 ‘과정 중심 평가제’를 도입한다. 앞서 부산시교육청도 지난 4월 올해부터 객관식 시험을 폐지한다고 발표한 바 있어 앞으로 객관식 시험 폐지 확대 여부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3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시범학교 22곳에선 객관식 시험이 폐지되고 과정 중심 평가제가 운영될 예정이다. 서술형 시험과 수행평가로만 학생을 평가하는 것으로, 결과 중심이 아닌 과정 중심 교육을 위한 시도다. 2월 중 공모를 진행하고 새 학기 전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이들 학교에는 학교당 1000만원씩 지원된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초·중·고등학교 평가에 IB(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 도입을 포함한 평가혁신 방안 추진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IB는 스위스에 있는 비영리 공적 교육재단 ‘국제 바칼로레아 기구(International Baccalaureate Organization·IBO)’가 주관하는 국제공인 서술·논술형 시험이다. 조 교육감은 “현재 이혜정 박사(교육과혁신연구소장)에게 연구를 맡겼다. 2월 말쯤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대상은 중학교 모든 학년이다. 시범학교에는 바뀐 평가방식을 중학교 자유학기·학년제를 제외한 성적산출기간에 모두 적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앞으로 고교 입시에는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는 게 시교육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평가방식만 달라지고 산출방식(5단계 내신 성취평가제)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앞서 부산시교육청도 지난 4월 객관식 시험을 폐지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김석준 부산시교육감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창의력인데 지금까지 익숙했던 객관식 평가로는 정답 고르기 요령만 늘릴 뿐이지 창의적 사고력이 키워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해 시의회에서 관련 예산 4억4000억원을 전액 삭감했지만,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신년 기자회견에서 밝혀 객관식 평가 전면 폐지에 대한 일각의 우려를 일축했다. 경남도교육청도 신년업무보고회에서 올해에는 객관식 전면 폐지를 위한 기반조성, 2019년엔 희망 중학교 실시, 2020년엔 전 중학교 실시 등 단계적으로 업무를 추진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객관식 폐지’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수업방식을 전면 바꾸고 생각하는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를 심도 있게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학습당 학생 수를 대폭 줄여야 한다. 교사가 학생 개개인의 학습능력, 생각의 방향, 취향 등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이에 따른 맞춤형 수업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성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실장은 앞서 IB 도입을 놓고 열린 정책 토론회서 “학급당 학생 수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많고 수시모집의 기초가 되는 내신도 객관식 시험 위주로 산출된다. 또 수능 개편 없이는 수업과 평가제도 혁신은 공염불에 불과하다”면서도 “수능이 바뀌어도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혁신되지 않으면 평가제도 혁신에도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사교육을 부추길 수 있다고도 우려한다. 신 실장은 “교육과정이 논·서술형 평가 지도가 가능하도록 구성돼 있지 않다”며 “국어나 사회탐구 과목부터 논·서술형을 도입하고 나서 비중을 차례대로 늘리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특히 “또 다른 사교육이 늘어나고 빈부에 따른 차이가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의 한 입시원장은 “한때 대학에서 논술시험 비중을 늘리자 논술학원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며 “객관식 시험 폐지가 서술형 사교육 시장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공정한 평가 방식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다. 서술형 시험의 경우 교사의 주관적인 평가가 들어갈 수도 있어 시험이 끝나고 나면 학부모들의 항의 등이 잇따를 수 있다. 이에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문제는 채점의 전문성을 신뢰하지 않는 사회적 풍토와 1점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입시의 경쟁 구조에 있다고 본다”며 “(공정성 문제는) 신뢰성을 높일 수 있는 채점 제도를 운영함으로써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나아가 “창의력과 사고력을 높이는 초등학교, 중학교 교육이 객관식 평가를 하는 고등학교로 진학했을 때도 이어질 수 있느냐는 것도 풀어야 할 큰 과제”라고 강조했다.

    한편, 시민단체에서도 ‘객관식 폐지’에 대한 공식 입장이 속속히 나오고 있다.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은 4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부 중학교에서 객관식 시험을 없애는 등의 내용을 담아 전날 교육청이 발표한 올해 업무계획이 “탁상행정이자 우민화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국민모임은 “수행평가는 불공정하고 빈부에 따른 불이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대부분 학생·학부모가 축소나 폐지를 주장한다”면서 “이를 외면하고 수행평가를 늘리겠다는 것은 아집·무능”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려면 학생들이 중·고등학교 때 기초학력을 튼튼히 다져야 한다”며 “조희연 교육감이 추진하는 과정중심평가는 우민화 정책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공정사회국민모임은 대학입시 정시모집 확대와 사법시험 부활 등을 주장해온 시민단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