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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라는 엄마가 되기보다 ‘나’를 지키려 노력했죠”

신혜민 조선에듀 기자

2018.01.0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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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년생 라디오 PD 장수연의 엄마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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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요구하는 '엄마다움'과는 다소 거리가 먼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라디오 PD 장수연씨. MBC 라디오 녹음실에서 만난 그는 “사회가 바라는 엄마로 살기보다, 저만의 색깔을 가진 엄마로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따스한 봄 햇살이 뜨거운 뙤약볕으로 변해가던 2011년 초여름, 야심으로 똘똘 뭉친 스물일곱 살의 입사 4년차 라디오 PD 장수연(34)씨는 무언가 큰일이 벌어졌다는 불안감을 느꼈다. 홀린 듯 산 임신 테스트기에 선명한 ‘두 줄’이 찍혔다. 임신이었다. 곧장 남편에게 찾아가 테스트기를 보여줬다.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남편에게 그는 마치 자신에게 다짐하듯 단호히 말했다. “지울 거야. 우리가 어떻게 키워.”

◇준비도 없이 얼렁뚱땅 ‘엄마’가 됐다
‘내가 엄마가 된다니 말도 안 돼.’ 처음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장씨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없던 일로 만들고 싶었다. 아직 회사에서 이룬 성과가 별로 없을뿐더러 결혼 준비로 빚더미에 올라앉은 재정 상태, 그간 즐겨온 술·담배 등 무엇 하나 마음에 걸리지 않는 게 없었다. 지금까지 그가 살아온 방식대로라면, 앞으로의 계획에 큰 차질을 빚게 할 아이를 지우는 게 옳았다. 실제로 이를 위해 병원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차마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흔히 사람이 사람을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아이는 달랐어요. 참 신기하게도 그 존재를 확인한 순간부터 제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죠. 이제까지의 나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일들을 하게 만들더군요. 그때까지 상상한 적도, 선택한 적도, 준비한 적도 없는 ‘출산과 육아’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라디오 PD 장수연은 ‘엄마’가 됐다. 30년 가까이 앞만 보며 돌진하던 폭주기관차 같은 삶에서 처음으로 출산과 육아로 인한 제동이 걸린 것이다.

◇엄마라는 이유로 ‘나’를 놓고 싶지 않아
처음 경험한 육아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장씨는 제 속으로 낳은 딸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평생 겪어본 적 없는 종류의 행복을 느끼면서도, 때로는 감옥에 갇힌 것 같은 갑갑함과 왠지 모를 조바심을 느꼈다. 그는 “출산 후 종일 먹고-놀고-자는 신생아의 일상, 일명 ‘먹·놀·잠’에 맞춰 생활하다 보니, 나 혼자만 세상과 동떨어져 산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일하는데 혼자 집에서 아기를 보는 그 ‘정체된 시간’이 늘 마음 한구석을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토로했다.

이후 장씨는 자기계발에 열을 올렸다. 치열하게 사는 데 익숙했던 그는 복직까지 넉 달 반 동안 엄마라는 이유로 ‘나’를 놓지 말자며 자신을 담금질했다. 산후조리원을 나오자마자 시어머니에게 잠깐씩 아이를 맡기고 일본어학원에 다니는가 하면, 아이 젖 먹이는 20~30분이 아까워 보면대에 일본어 단어장을 펼쳐두고 쉴 틈 없이 외웠다. 어느 날엔 4시간가량 치르는 일본어능력시험(JLPT)을 보기 위해 젖먹이 아기를 남편과 함께 차에다 두고, 쉬는 시간마다 나와서 모유 수유를 하고 다시 시험장으로 뛰어들어가기도 했다. 그는 “돌이켜보면 ‘업무와 관련 있는 공부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나 자신을 못살게 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부끄럽기도 하다”고 회상했다.

“당시 전 무언가에 상당히 화가 난 사람 같았어요. 부부가 한마음으로 결혼해 함께 아이를 가졌는데, 임신·출산·육아에 있어선 여성이 혼자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 상대적으로 너무 많았거든요. ‘왜 나만 아이 때문에 절절매야 하지’ ‘아이 아빠인 남편은 경력단절에 대한 고민이 없잖아’ ‘회사에 있는 다른 남자 PD들도 마찬가지인데’ 같은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죠. 억울했어요. 그 마음을 상쇄하기 위해 참 어리석을 정도로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려 더 발버둥친 것 같아요.”

복직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마치 누군가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듯 출산 전보다 더 미친 듯이 일에 매달렸다. 사내에서 워킹맘이란 이유로 받는 그 어떤 배려도 사양했다. 남들과 똑같은 선상에서 같은 대우를 받으며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복직하자마자 입봉을 했어요.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했죠. 아침 프로그램을 맡아 1년 반을 진행하다, 곧장 밤 프로그램을 시작했어요. 오후 8시에 시작되는 밤 프로그램을 맡으면, 아주 빨라야 자정 즈음 퇴근해요. 회의까지 하면 새벽 1~2시를 훌쩍 넘기죠. 당연히 아이와 얼굴 마주할 시간도 줄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두 번 다신 오지 않을 딸의 성장기를 모두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스로 압박하며 살아온 시간의 끝에서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었어요.”

지독한 워커홀릭(Workaholic·일 중독)이던 그는 결국 지난 2015년 잠시 일을 접고 8개월간의 육아휴직을 가졌다. 장씨는 “처음으로 ‘쓸 데 있는 일’이 아닌 ‘쓸데없는 일’을 하며, 아이의 속도에 맞춰 아이 옆에서 천천히 걸어보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평소 ‘아이가 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육아휴직을 하지 않던 저 자신에 대해 돌아봤어요. 오랫동안 제가 얼마나 쓸모 있는 인간인지 증명하는 데만 골몰한 것 같았죠. 육아휴직은 아이를 위한 것도 있지만, 실은 저 때문에 결정한 것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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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세상이 요구하는 엄마에서 벗어나라
지금 장씨는 5살, 2살 난 두 딸의 엄마가 됐다. 그는 육아휴직 때부터 틈틈이 써온 지난 2년간의 글을 모아 최근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어크로스)’를 펴냈다. 임신을 축복이 아닌 ‘재앙’이라 여기던 그가 두 아이를 낳고 일을 잠시 접을 정도로 변하는 데 걸린 4년여 세월을 오롯이 책 속에 담았다. 장씨는 “아이를 키우면서 제 내면을 정리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 허덕이며 살았다. 어느 순간 더는 참을 수 없다고 느낄 때 이 같은 마음을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힘들까’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하면서 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됐다”고 털어놨다.

글을 쓰며 이 사회에서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다.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는 말을 두 딸을 키우며 몸소 경험하고 있어요. 출산과 육아로 커리어가 단절되는 것 같은 초조함을 경험하고,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해 고민하며 아이와 함께 제가 성장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이 같은 고민을 엄마에게만 짊어지게 하죠. 일례로 여성의 출산휴가는 대략 90일(3개월)인데, 남성은 최장 10일이에요. 결국 엄마는 아기 낳은 순간부터 남편이 아닌 산후도우미나 친정엄마 등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시스템이죠. 이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곤 하지만, 아직도 출산과 육아에 대한 부담을 여성에게만 부여하고 이를 당연시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장씨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엄마들에게 “사회가 요구하는 정형화된 엄마의 이미지에서 탈피해 각자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이 바라는 모성에 짓눌려 각자가 가진 개성을 잃지 말고, 당당히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엄마는 이렇다’라고들 쉽게 얘기하지만, 사실 ‘좋은 엄마’의 모습엔 정답이 없잖아요. 자식에게 헌신하며 자신을 희생하는 엄마는 과거 사람들이 정해 둔 정형화된 이미지일 뿐이죠. 이 같은 고정관념을 깨고 출산·육아·교육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엄마가 늘어난다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조금 더 풍요롭고 행복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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