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금·연말정산 하는 게 소원”…12월, 속 타는 취준생들
손현경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7.12.06 15:00

- 청년 10명 중 7명 ‘연말, 취업 스트레스’ 앓는다
- 전문가 “긍정적 마인드 위해 혼자 있기보다는 주변과 소통해야”

  • 취준생이 채용공고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조선일보 DB
    ▲ 취준생이 채용공고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조선일보 DB
    “대기업? 바라지도 않아요.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 적당한 곳에 취직해서 적금 10만원만 매달 넣어봤으면 좋겠어요.”

    “친구는 곧 연말정산해야 한다고 골치라는데…. 저도 한번 겪어 봤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청년실업률이 18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는 등 고용 한파가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연말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취업준비생(취준생)들의 마음은 더욱 춥기만 하다. 이들에게 구직자들의 연말정산·보너스 등과 같은 ‘연말 이슈’는 ‘남 일’과 같다.

    실제로 구직자 10명 중 7명은 연말 들어 더 극심한 취업스트레스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6일 취업포털 등에 따르면 ‘잡코리아’가 올해 구직활동 경험이 있는 직장인 및 대학생 1055명에게 ‘취업 스트레스’를 물은 결과 67.7%가 ‘연말 들어 특히 빨리 취업(또는 이직)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과 스트레스를 더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대학생의 경우 이 같은 응답을 한 이들의 비율이 71.8%에 달했다. 직장인도 54.4%로 절반을 웃돌았다.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로는 직장인과 대학생 모두 취업·이직 등 ‘당장의 진로(직장인 62.4%, 대학생 85.6%, 복수응답)’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그 밖에도 ‘낮은 연봉 등 경제적 어려움(직장인 40.5%)’, ‘졸업 후 미래에 대한 불안감(대학생 26.1%)’ 등이 꼽혔다. 연말 스트레스에 따라 우울하고 처지는 기분을 느끼는 이들도 늘어났다. 대학생의 39.9%, 직장인의 33.5%가 ‘연말이라 조금 우울하고 처지는 기분’이라고 답했다.

    ◇ “내 직장은 어디에…” 연말에 더 ‘취업 스트레스’ 받는 청년들

    올 연말에도 언론사 취업준비에 몰두할 예정인 대학원생 문별(30·여)씨는 이번 연말에는 이른바 ‘밥터디’라고 불리는 스터디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문씨는 “그나마 학부를 졸업하고 1·2년간은 연말에 지방에 계신 부모님을 보러 갔는데 몇 년 전부터는 가지 못하고 있다”면서 “가족들이 ‘다른 아들·딸들은 멀쩡한 직장 다니며 적금 붓고 있는데, 너는 뭐하고 다니느냐’는 소리까지 한다”며 “사실 취업 준비에 대한 스트레스보다는 (부모님이) 주변과 나를 비교하는 것에 대한 우울감이 더 크다”고 토로했다.

    지난 10월 취업 ‘3수’ 끝에 국내 중소 제약회사에 들어간 석수현(29·여)씨도 “취업에 줄줄이 낙방했던 지난 2년 동안 그야말로 ‘히키코모리’처럼 혼자 지냈다. 자존감 하락이 대인기피증으로 연결됐기 때문이다. 석씨는 “친구들을 만나기는커녕 부모님께 전화 한 통 제대로 걸어보지 않았다”면서 “불효 아닌 불효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연말에는 처음으로 받은 연말보너스와 함께 지방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갈 계획이다. 석씨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합격소식 속에 나 혼자 도태되는 것은 아닌지, 나를 걱정하는 가족들의 슬픔을 생각하면 연말의 즐거움은 정말 남의 얘기다. 그 무거움을 견뎌내야 하는 취준생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 청년 60% 취업우울증…여성이 남성보다 많아

    최악의 청년실업에 우울한 청년들도 늘어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삼성서울병원의 ‘정신건강실태역학조사’에 따르면 2016년 18~29세의 우울장애 1년 유병률은 3%로 1위를 차지했다. 2위인 70대 이상의 1.5%에 비해서도 2배나 높다. 가장 건강해야 할 20대가 우울증으로 신음하는 것이다. 특히 증가세가 위험한 수준이다. 복지부의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 19~29세 청년 중 우울 증상을 경험한 이들의 비중은 2007년 9.7%에서 2015년 14.9%로 5%포인트 이상 늘었다.

  • 취업 우울증은 여성이 남성보다 많이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일보 DB
    ▲ 취업 우울증은 여성이 남성보다 많이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일보 DB
    실제로 극심한 취업난에 구직자 10명 중 6명은 ‘취업 우울증’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람인'이 최근 구직자 425명을 대상으로 ‘취업우울증’에 대해 조사한 결과, 61.4%는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성별로 살펴보면, 여성(68.4%)이 남성(56.4%)보다 더 높았다. 취업 우울증이 나타난 이유는 ‘취업이 계속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으로 인해서’(73.9%, 복수응답)가 1위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52.5%), ‘나만 취업이 안 되는 것 같아서’(48.3%), ‘계속 탈락해서’(31%), ‘부모님 등 주위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29.5%)‘, ‘취업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게 너무 많아서’(26.1%), ‘주변 사람들은 취업을 잘해서’(22.2%) 등이 있었다.

    취업 우울증이 나타난 시기는 ‘면접에서 탈락할 때’(41.8%, 복수응답)라는 가장 응답이 많았다. 계속해서 ‘돈 때문에 제약을 받을 때’(39.8%), ‘합격을 예상했다가 떨어질 때’(39.8%), ‘서류전형에서 탈락할 때’(37.9%), ‘남들과 비교를 당했을 때’(28.4%), ‘지인들의 취업 소식을 들을 때’(23.4%), ‘부모님의 잔소리를 들을 때’(21.1%) 등의 순이었다. 취업 우울증이 미친 영향으로는 62.1%(복수응답)가 ‘집순이∙집돌이가 됐다’를 꼽았다. 이어 ‘부정적 생각이 늘어났다’(61.3%), ‘짜증이 늘었다’(51.3%), ‘취업을 포기하고 싶다’(43.3%), ‘취업준비에 집중을 못 한다’(34.1%), ‘눈물이 많아졌다’(24.5%) 등을 들었다.

    ◇ 전문가 “혼자면 고립감 더 심해… 주변 사람과 어울리며 ‘힐링’해야”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혼자 있기보다는 사람들과 함께 야외로 나가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백종우 경희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일조량이 짧은 겨울에는 뇌에서 정서를 관장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을 적게 생산해 우울해지므로 우울증 완화를 위해서는 일부러라도 햇볕을 맞는 게 좋다”며 “집에 혼자 있기보다는 간단한 산책이나 야외활동을 통해 우울한 생각을 줄이는 것이 방법“이라고 말했다.
  • 대학생들이 학내 스터디실에 모여 취업 스터디를 같이 하고있다. /조선일보 DB
    ▲ 대학생들이 학내 스터디실에 모여 취업 스터디를 같이 하고있다. /조선일보 DB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취준생들과의 정기적인 만남도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백 교수는 “취준생 마음은 취준생이 제일 잘 아는 법”이라며 “같은 고민을 겪는 사람들과 대화만큼 위안과 격려가 되는 것도 없다. 이럴 때일수록 움츠리지 말고 내년 상반기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생활형 스터디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오히려 이를 멀리하면 취업에 필요한 정보와도 소외될 것”이라고 했다.

    주변 사람들을 피하기보다는 직접 만나서 얘기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때로는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가족, 친구, 은사들에게 먼저 연락을 해보거나 만남을 통해 본인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하는 것도 힐링의 방식이다. 백 교수는 “물론,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소통이 한번 단절되면 그 고립감은 더 커지기 마련”이라며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남을 통해 힘들었던 올 한 해를 마무리 하는 것이 좋다”라고 강조했다.